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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우당고택(海愚堂古宅)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5. 12. 14. 05:25

    해우당고택(海愚堂古宅)

     

    이 건물은 선성김씨(宣城金氏) 입향조 김대(金臺)의 셋째집 손자 영각(永珏, 1809~1876)이 1830년에 건립하였고,

    고종(高宗) 때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를 지낸 영각의 아들 해우당(海愚堂) 김낙풍(金樂灃, 1825~1900)이 1879년에 중수(重修)하였다.

    건물의 평면구성은 전면의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큰사랑과 아랫사랑을 두었는데,

    특히 우측의 큰사랑은 지반을 높여 원주(圓柱)에 난간을 돌려 누마루를 꾸몄다.

    정면 5칸의 안채에는 대청마루 좌우로 상방과 안방을 두고 부엌과 고방으로 좌.우익사(左.右翼舍)를 구성하였다.

    안대청의 상부는 판대공에 첨자를 삽입하여 종도리를 받게 한 것이 독특하다.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자형 가옥의 평면구성을 잘 갖추고 있고, 수도리(水島里)에서 규모가 가장 큰 집이다.

    사랑채에 걸려있는 해우당의 편액(扁額)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친필이다.

    해우당고택은 경상북도 민속문속문화재 제92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무섬로 238-2 (수도리) =

     

     

    해우당(海愚堂)은 의금부도사를 지낸 김낙풍(金樂灃)선생의 당호(堂號)이고,

    자(字)는 성발(聖潑), 정자(亭子)는 대은정(大隱亭)이며 호(號)는 소하(小下)이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몸가짐이 의젓해 의리를 좋아하고, 행실이 돈독하고 출중했다.

    특히 형제간의 우애와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정성이었다.

    청수한 몸매에 기국(器局)이 뛰어나 초연히 티끌세상을 벗어난 듯한 기상이 있었다.

    평생을 서울에서 지냈으나 벼슬을 구하지 않았으며 사귄 이들이 모두 명류들이었다.

    특히 흥선대원군이 정권을 잡기 이전부터 막역지우로 지내면서 그와 두터운 우정을 나누웠고

    대원군 집권 후에도 정치적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감내한다.

    하지만 벼슬에 급급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의 이치에 순응하며

    당대의 명사들과 넓게 교류하며 지내다가 60이 되어서 의금부도사를 지냈다.

    해우당(海愚堂)은 해동우부(海東愚愚夫)에서 딴 당호(堂號)로

    동해바닷가에 사는 어리석고 바보스러운 지아비란 뜻이고 자신을 겸양한 뜻이기도 하다.

    호는 소하(小下)인데 역시 작고 낮은 사람이란 뜻과 소백산 아래 사람이란 뜻도 된다.

    항상 남을 위하고 자신을 낮추는 덕목을 엿볼 수 있다.

    해우당(海愚堂), 대은정(大隱亭), 소하산방(小下山房) 등의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편액을 하였다.

    유품으로는 친구간의 사귐과 우정을 표현한 삼화계서가 있으니, 김낙풍 선생의 선비적 삶과 정신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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