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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의 대표적 누정, 제주 관덕정(濟州 觀德亭) - 보물 제322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6. 2. 22. 05:30

    제주의 대표적 누정, 제주 관덕정(濟州 觀德亭) - 보물 제322호


    관덕정(觀德亭)은 1448년(세종 30) 안무사(安撫使) 신숙청(辛淑晴)이 창건한 후

    1480년(성종 11)에 목사 양찬에 의해서 중수되었다.

    이 때 쓴 서거정(徐居正)의 중수기에 의하면 관덕정은

    "이 정(亭)을 만든 것은 놀이나 관광이 아니라 본래 설치함이 무열(武閱)을 위한 것인 즉,

    지금부터 제주의 사람은 날마다 이에 사습(射習)하되 과녁을 쏠 뿐만 아니라 기사(騎射)를 익힐 것이요,

    기사 뿐만 아니라 전진법(戰陣法)을 익힘으로써 적변(賊變)이 있을 때는

    삼읍 백성들이 상산지세(常山之勢)로 수군, 육군, 보병,기병이 각각 나와서 사력을 다하여 싸워

    적군의 목을 베어 이로써 부모처자를 구하고, 이로써 한 고을을 보전하며,

    이로써 나라의 간성이 되어 역사에 공명(功名)을 세운다면 어찌 다행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여

    그 세운 바를 펼쳐 보였다.

    그 후 1599년(명종 14), 1690년(숙종 16), 1753년(영종 29), 1779년(정조 2), 1833년(순조 33),

    1851(철종 2), 1882년(고종 19)방어사 박선양에 의해 보수되는 등 총 7차에 걸쳐 중수하였고,

    이후 1924년 일본인 島司 前田善次가 보수하면서 15척이나 되는 곡선의 처마를 2척이나 줄여 보수하니 전통적인 멋은 사라졌으며,

    1969년에 10번째 중수시 대대적으로 해체하여 새로 보수하고 주위에 문을 달아 흰페인트칠을 하여 관덕정의 위용은 사라져 버렸다.

    해방후 1948년 9월에 관덕정은 제주도의 임시도청으로, 1952년도에는 도의회 의사당으로, 북제주군청의 임시청사로,

    그리고 1956년에는 미공보원 상설 문화원으로 사용되는 등 참으로 순탄치 못한 역정을 견디어 오다가

    1959년 국보 제478호로 지정되었다가 1963년 보물 제322호로 재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덕정 내부에는 관덕정과 탐라형승, 호남제일정의 현판이 걸려 있다.

    실내 벽면에 그려져 있는 벽화는 작자 미상이나, 상당히 격조 높은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내용은 두보(杜甫)의 취과양주귤만교(醉過楊州橘滿轎)ㆍ상산사호(商山四皓)ㆍ적벽대첩도(赤壁大捷圖)ㆍ

    대수렵도(大狩獵圖)ㆍ진중서성탄금도(陣中西城彈琴圖)ㆍ홍문연(鴻門宴)ㆍ십장생도(十長生圖) 등이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덕로 25 (삼도이동) =







    관덕정(觀德亭)


    관덕정기에 의하면 안평대군의 글씨로 적혀 있다.

    그러나 1601년(선조 34)안무어사 김상헌의 일기인 남사록에는 안평대군의 편액은 불에 없어지고

    지금 걸고 있는 것은 아계(李山海)의 글씨이다 하였다.

    서예가들의 견해도 역시 안평대군의 필적이 아니라 이산해의 필적이 틀림 없다고 말한다.









    탐라형승(耽羅形勝)


    중앙 천정 서쪽에 동쪽을 향하여 걸려있는 편액인데,

    이는 1778년 12월부터 1781년 3월까지 재임한 방어사 김영수(金永綏)의 글씨이다.



    호남제일정(湖南第一亭)

    1882년(고종 19) 방어사 박선양(朴善楊)이 중수하면서 쓴 글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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