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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목관아 영주협당(濟州牧官衙 瀛州協堂) - 사적 제380호
    국내 나들이/제주도(濟州道) 2016. 3. 4. 06:11

    제주목관아 영주협당(濟州牧官衙 瀛洲協堂) - 사적 제380호


    영주협당은 원래 군관(軍官)들이 근무하던 관청(官廳)이었다.

    창건년대(創建年代)는 확실하지 않으나 예전의 군관청(軍官廳)이 영·목(營·牧) 소속으로 분리될 때 영군관청(營軍官廳)이 되었다.

    군관의 수는 원래 15人이 있으나 효종(孝宗) 초기에 이경억(李慶億) 어사(御使)가 조정(朝廷)에 건의하여 10인으로 줄였다.

    군관들이 왕래할 때에는 항상 말(馬)이 지급(支給)되었으나 사사로이 말(馬)을 소지(所持)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1832년(純宗 32)에 한응호(韓應浩) 목사(牧使)에 의해 중건(重建)되면서 공제당(共濟堂)으로 이름이 개칭되었다.
    본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 가구는 1고주 5량구조, 공포는 초익공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면적은 107.7㎡(32.58평)이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관덕로 25 (심도이동) 제주목관아 =
















    사상한공응호거사대(使相韓公應浩去思臺)


    사상 한응호 비의 형태(形態)로는 제주 돌(石;석)로 비신(碑身)의 크기는 높이 104.0㎝, 너비 46.0㎝, 두께 12.0㎝,

    비신(碑身) 위쪽 반달모양인 둘레가 53.0㎝인 형태(形態)이다.

    비(碑)의 좌대(座臺)로는 좌・우쪽 69.5㎝, 앞・뒤쪽 38.0㎝, 땅 위쪽 높이가 10.0㎝인 제주돌로 제작되어 비석(碑石)을 받치고 있다.


    <전면 우>
    興;學課農 脚春一回(흥;학과농 각춘1회)
    해석 : 학문을 일으키고 농삿일에 힘써 따뜻한 봄날을 맞게 했으며


    <전면 좌>
    賑;歉;蘇;弊 口碑百世(진;겸;소;폐 구비백세)
    해석 : 흉년을 진휼하고 폐단을 구제한 일 오래도록 후세에 전하네.



    한응호 목사 겸 방어사는 1832년(순조 32년) 2월에 부임하고 1834년(순조 34년) 7월에 떠났다.

     1832년 연희각(延曦閣) 동남쪽에 공제당(共濟堂)을 중수하여 군관들이 거주하도록 하였다. 

    1833년 봄에는 오등촌에 남학당(南學堂)을 상가촌에 서학당(西學堂)을 개설하고 포정문(布政門) 밖에 하마비(下馬碑)를 개건하였으며,

    또 백성들에게 고구마를 심도록 권장하여 흉년에 대비함은 물론 도민의 기아를 구휼(救恤)하는데 노력하였다.
    제주시 오라2동 종합운동장 서쪽에 있는 것을 2003년 2월 제주목관아로 이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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