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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천, 이재현형제 추모상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6. 4. 16. 03:59

    이재천, 이재현형제 추모상


    역사속에 묻혀졌던 항일독립투사 우봉(牛峰) 이재천(李在天), 해평(海平) 이재현(李在賢)

    두 형제 지사(志士)의 뜻을 기르기 위해 2003년 경기도 안양시에서 건립한 동상.

    안양시 자유공원내에 건립한 두 형제지사의 동상(가로6.9m×세로6.9m, 높이 4m)은 입상형태로

    동상 양쪽에 추모비와 함께 이분들의 항일투쟁 활동이 담겨진 공적비가 있다.
    당시 경기도 시흥군 동면(현 안양시 석수동) 출신인 두 형제지사는 일찌기 중국 상해로 망명

    주로 김구 선생 밑에서 독립활동을 펼쳤으며 이로 인해 이재천 지사는 건국공로훈장 애국장,

    이재현 지사는 윤봉길 의사와 유관순에게 추서했던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이재천 지사(1913~ ?)


    당시 상해에 망명중인 독립운동가 이용환(李容煥)의 장남으로 1913년 5월10일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부친 따라 상해로 망명한 후 부친의 뜻을 계승하기로 결심,

    1929년 2월에 화랑제도를 본따 민족의식의 고취와 교양을 목적으로 조직된 ‘화랑사’에 입단해

    독립운동의 연락 업무와 임시정부 요인접대 등의 활동을 하였다.

    17세 때인 1930년 임시정부 국무위원 조소양 선생의 지도하에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국소년동맹을 조직, 위원장에 취임해 무력항일투쟁을 전개했다.

    한국소년동맹은 남·여 단원이 약 200여명으로 독립사상이 투철한 애국애족의 청년들로서 주로 김구선생의 지시를 받았다.

    이 지사는 당시 월간지 ‘새싹’을 발간, 상해는 물론 조선내 각지로 발송했으며

    3·1절 기념식에서 “3·1 기념식을 경축함“이라는 격문을 700~800매 인쇄·살포했다.

    1935년 남경에 있는 중국중앙군관학교 졸업한 후 그해 10월 임시정부의 밀명을 받고

    인천으로 입국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돼 다음해 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5년을 선고 받고 복역 하던 중

    1940년 6월27일 27세의 아까운 나이에 옥사했다.

    뜻을 기리기위해 정부에서 건국공로 대통령 표창과 건국공로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이재현 지사


    3살 때 부친과 형인 재천 지사와 함께 상해로 간 이지사는 상해 인성소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별훈련반에 입대한 후 백범 김구선생의 특명으로

    광주시 중산대학에 파견, 대학내의 한국인을 포섭 유인하는 공작임무를 수행했다.

    이때 안우생의 지도로 에스페란토의 말을 사사 받게되며

    그 후 37년 중산대학을 중퇴, 상해지하공작 지원차 홍콩에서 파견활동을 벌였다.

    1939년에는 중경에서 김구선생의 지도하에 한국청년 전지 공작대를 조직하여 선전반원을 담당했다.

    1940년 한국청년 전지 공작대 제1분대장에 임명돼 태행산 유격지구에서 활동을 했으며

    1944년에는 한국광복군 제2지대 한미합동 OSS 특별훈련반 조교로 활동했다.

    광복군 제2지대는 이범석 장군 지휘하에 본부를 성서성(장안)에 두고

    중·영·미 연합군과의 합동작전과 지하공작을 전개하는 본토(한국)상륙작전을 위한 정예부대이다.

    당시 이지사는 광복군 제2지대가를 직접 작사하기도 했다.

    해방후 1946년 귀국하여 에스페란토 보급과 교육에 힘썼으며 지난 83년 국어-에스페란토 사전을 편찬하기도 했다.

    항일투쟁 당시 “투사는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경구를 남긴 이재현 지사는 애국공적의 대가를 바라지 않은 채

    안양시 석수동에서 여생을 보내다 81세 되던 해인 지난 97년 2월 24일 생을 마감했다.

    1963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우봉(牛峰)과 해평(海平)을 그리며


     강 옆 비옥한 땅에 메마른 풀만 돋아나기에
     마음을 풀어 강물에 적셨더니 그리움만 묻어납니다.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우봉(牛峰)과 해평(海平)의 인생이 흘러갑니다.
    치떨리던 일제 36년의 세월을 온 몸 핏덩이 되어 견디어내던
     결의에 찼던 두 형제의 삶이 흘러갑니다.
    굴욕의 역사 속에서 모진 고문을 온 마음으로 끌어안은
     우봉(牛峰)의 스물 일곱 해 불꽃같던 인생이 흘러갑니다.
    그 순결했던 정신이 흘러갑니다.
    조국은 생명을 바칠만한 값어치가 있다는
     우리의 영혼을 울리던 해평(海平)의 말씀이 흘러갑니다.
    모든 살아 있는 자들이 살아 있음으로 해서 즐거움을 삼음에도
     살아 있는 자로서 죽음을 즐거움으로 삼았던 영혼의 사랑이 흘러갑니다.
    내 마음의 강으로 흘러갑니다.
    메마르고 갈라진 우리들의 마음으로 흘러옵니다.
    메마른 이 땅을 넘어 망각의 역사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잊었던 당신의 삶을 마음 깊이 새기며 이제야 가까스로 당신 앞에 섭니다.
    일제 36년 길었던 치욕의 역사, 친일의 역사, 대립과 증오의 역사를 넘어
     당신이 꿈꾸던 참 평화와 하나됨을 위해 부끄러움으로 당신 앞에 섭니다.
    이제 우리 하나되어 섭니다.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진정한 독립과 자유, 통일과 평화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수천 수만의 우봉(牛峰)과 해평(海平)으로 섭니다.
    당신의 죽음을 딛고 섭니다.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섭니다.


    여든 네 돌 삼일절 아침에 사람을 그리워하며... 최창남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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