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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濟州海女抗日運動紀念塔)
    국내 나들이/제주도(濟州道) 2016. 7. 7. 22:30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濟州海女抗日運動紀念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2004년 12월 9일 지정)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탑은 1931년 6월부터 야학에서 민족의식을 키워온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등 구좌읍, 성산읍, 우도면 해녀들이 일제의 극심한 수탈에 항거,

    1932년1월까지 연인된 1만7천여명에 이르는 여성주도의 독보적 항일투쟁을 기리기 위하여 1998년8월15일 건립한 것이다.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 =















    해녀 노래 (康寬順 지음)

     

    一. 우리들은 제주도의 가이 없는 해녀들

         비참한 살림살이 세상이 알아

         추운 날 더운 날 비가 오는 날에도

         저 바다 물결 위에 시달리는 몸

     

    二. 아침 일찍 집을 떠나 황혼되면 돌아와

         어린 아이 젖먹이며 저녁밥 짓는다

         하루 종일 일했으나 번 것은 기막혀

         살자하니 한숨으로 잠 못 이룬다

     

    三. 이른 봄 고향산천 부모형제 이별코

          온 가족 생명줄을 등에다 지고

          파도 세고 무서운 저 바다를 건너서

          조선 각처 대마도로 돈벌이 간다

     

    四. 배움없는 우리 해녀 가는 곳마다

         저 놈들의 착취기관 설치해 놓고

         우리들의 피와 땀을 착취해 간다

         가이 없는 우리 해녀 어디로 갈까

     




    제주도연안과 동북아시아일대의 거친 바다를 일터로 삼아 해산물을 캐는 제주해녀는

    불가사의한 기량과 강인불굴의 제주민의 정신을 자랑스럽게 표상하므로 온 세계에서 주목한다.

    더욱이나 1931~1932년 두해에 걸쳐 구좌읍, 성산읍, 우도면 해녀들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제의 극심한 수탈에 한사코 항거했던

    제주해녀항일운동은 어민, 특히 여성집단에서 주도한 최대 규모의 투쟁이었다는 점에서 영원히 우러러 칭송할 만하다.
    예전보다도 무참히 짓밟히는 해녀들의 권익과 수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김태호(金泰鎬) 등 제주 유지들은

    1920년 제주도해녀어업조합 설립을 관철하였으나, 그 조합장을 일본인 도사(島司)가 겸임했으므로

    조합은 악랄한 식민지 수탈기구로 전락했고, 야학에서 민족의식을 키운 해녀들의 항일의식은 점차 드높아갔다.

    드디어 1931년 여름의 구좌읍 하도리 항쟁에 이어서 1932년 1월 12일 제주해녀의 역사적인 항일봉기는 세화리에서 대규모로 감행된다.

    그곳에 나타난 다구치(田口禎熹) 도사에게 죽음으로써 대항하면서 여러 마을에서

    구름떼처럼 몰려든 해녀들의 치열한 절규와 투쟁은 제주도 온 섬을 뒤흔들었으니 실로 국가적 차원의 항일투쟁이었다.

    잇따라 숱한 애국청년들과 함께 부춘화(夫春花), 김옥련(金玉蓮), 부덕량(夫德良) 등 해녀 대표들은 감금되고,

    가혹한 고문을 받았으나 무자비한 일제에 끝내 굽히지 않았다.

    제주해녀의 결사적 항일운동은 단순한 생존권투쟁을 뛰어넘어 일제강점기 한국의 항일운동사상 연인원 1만 7천여명에 이르는

    여성주도의 독보적 일제항거라는 점에서 천추만대에 길이 찬양할만한 그 역사적 의미가 찬연하다.


    1998년 8월 15일
    북제주군, 제주해녀항일운동기념사업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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