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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천 생활의 "절두산 꾸르실료교육관"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6. 11. 15. 23:00

    크리스천 생활의 "절두산 꾸르실료교육관"



    바오로 사도의 영적 투쟁 (에페 6.10~18)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십시오.

    진리로 허리에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굳건히 서십시오. 발에는 평화의 복음을 위한 준비의 신을 신으십시오.

    믿음의 방패를 잡으십시오. 여러분은 악한 자가 쏘는 불화살을 그 방패로 막아서 끌 수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투구를 받아쓰고 성령의 칼을 받아 쥐십시오. 성령의 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르실료(Cursillo) 심벌의 의미


    타이슬링, 길잡이, 실천표 등 꾸르실료의 상징하는 모든 것에 포함되어 있는 꾸르실료의 심벌!
    꾸르실료 심벌은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칼’을 의미합니다.
    이는 꾸르실료 운동의 주보성인인 바오로 사도의 서간(에페 6,10-18)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칼 문양에 새겨진 I·S·C는 꾸르실료 운동의 덕목인  I (Ideal : 이상),  S (Submission : 순종), C (Charity : 사랑)을 의미합니다.

    DE COLORES라고 씌어진 것은 두루마리로 3박4일 꾸르실료의 중심이 되는 롤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꾸르실료(Cursillo)란?
     
    1. 어원과 목적
    '꾸르실료(Cursillo)'의 어원은 스페인 'Curso' 즉 영어의 'Course'이며

    'Cursillo'는 '작은 Curso' 즉 'Little Course'단기과정」이란 뜻이다.

    꾸르실료는 식어가는 크리스찬 생활을 초대교회의 그 정열적인 신앙으로 불타게 만들기 위한 단기간의 강습회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꾸르실료 운동은「 참된 크리스찬 생활을 구축(structiuring of christian life)하기 위하여 일하는 운동이며,

    이 운동을 하는 이로 하여금 참된 크리스찬의 기본이 되는 것을 생활화하게 하는 방법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상, 순종, 사랑의 정신으로 신앙을 쇄신하여 크리스찬을 생활화하고, 평신도의 지도적 역할을 다하기 위한 교육이 바로 꾸르실료이다.
    그리스도인이 삶을 통해 자긱가 살고있는 공동체의 사고 방식 습관 등, 자기 환경과 문화를 복음화 하는 것,
    즉 그리스도적 삶을 살고 나누게 하는데 목적이 있다.


    2. 꾸르실료 운동의 본질
    꾸르실료 운동은 교구의 사도직 활동의 일환으로 교구장 산하에 있는 공인된 교회 운동이며, 하나의 방법이다.
    3박 4일의 꾸르실료에서 그리스도와 접촉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다른 형제들과 결합하고,

    그리스도께 헌신하며, 참다운 크리스찬이 되기로 결심한다.

    또한 꾸르실료는 크리스찬의 기본을 생활화하게 하는 것이다. 진솔한 회개와 회심을 통해 하느님과 만나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친교를 나누며, 이웃과의 만남으로 모든 형제, 자매가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 형제애를 나누게 한다.



    3. 꾸르실료 운동의 역사


    가. 발생
    꾸르실료 운동은 1940년대 스페인에서 시작되었다.

    19세기에 있었던 3차례의 스페인 내전은 스페인 전역을 혼란과 무질서로 만들고 가치관의 혼돈과, 무신론적 사고, 이념주의,

    즉 좌익 혁명노선 등 혼란 속에 가톨릭교회 일각에서 교회의 강하고 신앙으로 가득찼던 전쟁 전의 모습을 되찾고자

    스페인과 라틴 아메리카 젊은이들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대대적인 순례를 시행하기로 했다.

    모든 교구에서 순례자를 위한 꾸르실료를 실시했으며 마료르카 교구는 순례지도자를 위한 꾸르실료를 처음으로 시작하여

    1949년 1월 7일 마요르카에서 실시한 꾸르실료를 제 1차 꾸르실료라 명명하였다.


    나. 우리나라의 도입
    1966년 미국인 주한 평화 봉사단장 캐빈 오도넬(Kevin O' Donnell)은 한국의 토속신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무렵 필립핀에서는 꾸르실료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으며 필립핀의 꾸르실료 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던

    에드문도 카이모(Edmund F. Kaimo)씨가 사업차 서울 방문 중 오도넬씨와 만나는 계기가 있어

    한국 교회에 꾸르실료를 전래 시키는데 뜻을 같이하였다.

    1966년 9월 혜화동 본당의 유수철 주임신부와 청파동 본당 김정수 주임신부 그리고 몇몇 신자와 함께

    수차의 회합을 갖고 필립핀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꾸르실료를 실시하기로 했다.

     

    다. 꾸르실료의 시작
    꾸르실료의 실시를 위하여 서울 교구장 서리 윤공희 주교의 승인을 얻었으며

    윤공희 주교는 서울 교구장의 명으로 필립핀 마닐라 교구장에게 꾸르실료 지도 요청을 하여

    1967년 5월 4일-7일 성수동 본당에서 한국 최초의 꾸르실료가 영어로 실시되었다.

    사업가인 에드문도 카이모씨가 경비를 조달하였으며 12명의 필리핀 봉사자와 윤공희 주교를 비롯하여

    메리놀회, 가달루페회, 예수고난회, 골롬반회 소속 신부6명이 지도신부와 강의를 맡았다.

    1967년 8월 17일 서울 정동 명도원에서 제2차 꾸르실료가 예수고난회 박도세 신부의 지도로

    필리핀 형제들과 1차를 수료한 형제들이 함께 실시하며 우리말 꾸르실료를 준비하였다.

    1967년 8월 24일 서울 정동 명도원에서 최초의 우리말 꾸르실료가 실시되었으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제3차 우리말 꾸르실료는 한국 꾸르실료 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한국 꾸르실료 도입은 성령의 역사하심과 필립핀 형제들의 헌신적인 노력,

    그리고 주교로서는 처음으로 수원교구 제1차 꾸르실료 지도신부를 맡은 윤공희 주교의 각별한 관심과

    몇몇 사제와 신도들의 열정으로 뿌리가 내려졌으며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4. 꾸르실료 운동의 정의
    [꾸르실료 운동의 기본사상] 이라는 책에 꾸르실료는"꾸르실료가 지닌 방법에 의해서 사람들이 크리스찬으로서

    기본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함께 나누며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교회 운동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꾸르실료는"꾸르실리스따인 우리들 각자가 우리들의 소명을 알아내어 완수하도록 도와주고
    복음으로 그들의 환경을 누룩처럼 변화시킬 핵심적인 크리스찬 그룹의 탄생을 촉진한다"라고도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꾸르실료는 꾸르실리스따가 지닌 고유한 카리스마에 합당한 방식으로 교회의 사도적 사명에 동참하고자 하기 때문에

    분명 사도적 영성을 나누고 있고 그럼으로 꾸르실료 영성은 사도적 영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꾸르실료의 귀납법적 사고방식이 강조되는 것은 꾸르실료가 어떤 이론이나 논리보다도

    삶이 먼저이어야 함이 강조되는 것이기에 꾸르실료는 바로 삶이다.
    꾸르실료 운동의 이념적 핵심은 크리스찬적 삶이다. 그것은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생활로 체험하는 것이고

    거기에는 막연한 어떤 관념이 아니라 실제적 신념이 포함되어야 하며 생활이 바로 신앙적 표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크리스찬으로 활동하는 것" 보다는"크리스찬인 것"에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꾸르실료 운동의 창시자들은 50여년 전 그리스도교 사회인 스페인에서 사람들은 이미 크리스찬 생활을 포기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가 현실 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이 거의 없어졌으며 하느님과 그리스도와 교회에 등을 돌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스스로 "우리는 그리스도인 인가?" 라고 질문을 했고 그 질문에 선듯 그리스도인 이라고 답변할 수 없었던 현실을 인식했다.

    그들이 그들 자신에게 질문했던"우리는 그리스도인 인가?" 나는 누구인가? 세속이 만든 환상에 억매임에서 깨어나려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은 회심의 출발이고 회심은 바로 꾸르실료의 지향이며 영원한 목표라고 했다.

    또한 회심은 하느님 자비에 대한 진실한 인간의 응답이기도 하고 꾸르실료의 영성이기도 하다.


    1930년대 이전 교회는 교계 중심적이고 권위적인 교회 이였으며, 양들은 목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야 하는 그런 시대였으나

    1930년대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있기 바로 전 1960년대 초까지의 시대는 변혁의 기운이 일던 때로

    세계 제 1,2차 대전과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고 스페인에서도 1932년경부터 경직된 사회를 변혁시켜야 한다는 움직임이

    특별히 청소년 활동 단체를 중심으로 일고 있었으나 1936∼1939년 스페인 내전으로 주춤했다가 종전 후 변혁의 물결이 다시 일기 시작했다.

    사실 꾸르실료 운동은 그 당시 창시자들이 본 시대의 현실이 비 그리스도 화된 세상, 더 이상 크리스찬 사회로 볼 수 없는 그런사회,

    스스로 크리스찬이기를 포기한 사회로 되어 버렸다는 현실에 대한 깊은 인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세상은 부분적이거나 개인적인 해결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에 영향을 주는

    환경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였고 세상은 밑바닥에서부터 재건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야만스러운 것에서 인간다운 것으로 변해야 하고 인간다운 것에서 성스러운 것으로 변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크리스찬 사회이기를 포기한 사회를 다시 크리스찬 사회로 바꾸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드러낸 역사적 상황은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구가 창시자들로 하여금 여러가지 선택을 하도록 했으며

    두가 같은 사고방식 속에서 그 정신(사고방식)이 생활로 실천됨으로써 하나의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 운동은 점차 스스로 처방했고(방법), 지향했고(목적), 정의하려고(본질) 노력 했다.

    이렇게 하여 꾸르실료 운동은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독특하고 독창적인 기여를 하게 되었다.

     

    꾸르실료 운동을 탄생케 한 정신 즉 사고방식은 또한 어떤 경우에도 그 속에 뿌리 깊이 숨겨진 핵심

    원천과 근원이 되는 것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궁극적으로 원초적인 카리스마로서 정체성을 갖는 정신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새로운 역사적 필연성을 창출하는 상황 속에서 즉시 새로운 결단을 하게 하고

    그 신원적 정체성 즉 꾸르실료의 성격을 형성시켜 준 기준과 꾸르실료 운동을 탄생케 한 영감을 얻게 하고

    크리스찬적 신념과 그 신념들이 기본적인 자세 속에 구체화되어 특별한 사목적 선택으로 나타났다.

    사고방식은 꾸르실료 운동의 정체성의 근원이며 동시에 꾸르실료 운동을 발전시키는 근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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