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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헌 이석형선생 묘(樗軒 李石亨先生 墓)
    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6. 11. 26. 22:30

    저헌 이석형선생 묘(樗軒 李石亨先生 墓)




    묘역에는 높이 2.5m, 지름 6m의 봉분을 비롯하여

    묘비와 문인석 4기, 향로석, 상석, 주전석(酒煎石), 혼유석(魂遊石) 등이 있다.
    이석형 선생은 정몽주 선생의 증손녀 사위이다.






    "有明朝鮮佐理功臣行判中樞府事延城府院君贈諡文康李公石亨之墓(유명조선좌리공신행판중추부사연성부원군증시문강이공석형지묘)
    贈貞敬夫人延日鄭氏之墓(증정경부인연일정씨지묘)"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다.


    "유명조선(有明鮮)"은 무슨 의미인가 ?

    조선시대 비문은 의례히 유명조선으로 시작된다. 이 구절의 의미는 여러 견해가 있다.

    '광명한 조선'으로 풀이하지만 대개 명나라(1368∼1644)와 관련된다. 

    당대 최고 강대국인 명(明)의 눈치를 보는 약소국의 비애로 생각된다.

    그후 1637년 병자호란의 수치를 당하고, 특히 명나라가 청나라에 패한 이후에도 관행은 지속된다.

    "우리는 오랑캐 나라 청의 신하가 아니라 명의 신하다."라는

    심한 숭명사상(崇明思想)은 조선 식자층의 정신적인 한계를 보는듯 하다.












    저헌 이석형선생 묘(樗軒 李石亨先生 墓)


    경기도 지방문화재 제171호


    이석형(1415-1477)선생은 조선조 때 명재상(名宰相)이며, 본관은 연안(延安)으로

    대호군(大護軍) 중 좌의정(左議政) 회림(懷林)의 아들로서 자(字)는 백옥(伯玉),호는 저헌(樗軒),시호(諡號)는 문강(文康)이다.
    세종(世宗) 23년 진사(進士), 생원(生員), 문과(文科)에 연달아 삼장원(三壯元)하여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시작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문과중시(文科重試)에 급제하고 진관사(津寬寺)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의 혜택을 받았다.
    세조(世祖) 1년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使), 이어 전라도관찰사(全羅道觀察使) 때

    익산(益山) 동헌(東軒)에 사육신(死六臣)의 절의(節義)를 상징하는 글을 남겨 모함(謀陷)을 받았으나

    선생의 학문을 아끼는 세조는 예조참의(禮曹參議)로 체직, 판공주목사(判公州牧使), 한성부윤(漢城府尹)을 거쳐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가 되어 모든 정사(政事)를 반듯이 처리함에

    세조는 "경은 나의 서도(西道)의 주인(主人)이다"라고 칭송 하였다.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 경기도관찰사(京畿道觀察使), 호조참판(戶曹參判)에 이어

    판한성부사(判漢城府使)를 7년 연임하고 팔도도체찰사(八道都體察使)로 호패법(號牌法)을 정착 시켰다.
    세조 승하(昇遐)후 고부청승습사(告訃請承襲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정1품)가 되고

    순성명량경제홍화좌리공신(純誠明亮經濟弘化佐理功臣)에 책록 연성부원군(延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선생은 학문(學問)의 거봉(巨峰)으로 도덕(道德)을 숭상(崇尙)한 유학자(儒學者)이며, 고려사(高麗史)를 편찬하였고

    치평요람(治平要覽), 역대병요(歷代兵要), 대학연의집략(大學衍義輯略), 저헌집(樗軒集) 등 저서가 많다.
    신도비(神道碑)는 4대손 문충공 월사 이정귀(李廷龜) 대제학(大提學)이 찬하였는데 본래 묘소 앞에 있었으나

    비각을 세으면서 아래 연안이씨 비각공원에 이전 보존하고 있다.
    선생의 성품은 온유순후(溫柔淳厚)하여 항상 불우한 민생을 도왔으며,

    만년(晩年)에는 집터(연지도 서울대 병원자리) 연못에 계일정(戒溢亭)을 지어

    자손들을 훈육(訓育)하고 시선(詩仙)으로 지내더니 모두 신선(神仙) 같다고 하였다.
    계일정신(戒溢精神: 분에 넘침을 경계함)은 후손들이 그 유지(遺志)를 받들어 가문훈(家門訓)으로 이어져 오고 있으며,

    후예번성(後裔繁盛)하고 훈공(勳功)에 빛나는 인물(人物)이 배출되어 대표적인 명문(名門)으로 평판 받아왔다.
    이는 선생의 검소하고 겸손한 계일정신의 훈육(訓育) 때문이며, 현세에도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龜鑑)이 되고 있다.


    =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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