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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영(統制營)의 객사(客舍), 세병관(洗兵館) - 국보 제305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7. 1. 16. 05:26
통제영(統制營)의 객사(客舍), 세병관(洗兵館) - 국보 제305호
지과문(止戈門)
"지과(止戈)"는 "창을 멈추다"라는 뜻으로 두 글자를 합하면 굳셀 무(武)를 상징하며,
전쟁이 없길 바라는 마음과 전쟁에 대비한다는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지과문을 통과하면 통제사가 제반 의전을 치르던 중심영역으로, 통제영 영역 내에서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곳을 통과하면 삼도수군통제영의 가장 핵심이 되는 세병관(洗兵館)이 있다.
세병관은 정면 9칸, 측면 5칸, 높이 약 14m에 달하며 50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공간으로 면적은 약 180평이다.
세병관 중앙 뒷면에 약 45cm 정도의 단을 설치하여 궐패(闕牌)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석인(石人)
숙종 27넌(1701년) 제77대 류성충(柳星樞) 통제사(統制使) 때 세병관 뜰에 액막이로 만든 석인으로 추측되며,
세병관 앞 장대석 석축 해체 과정에서 석인 5기가 발굴되어 현재의 위치에 설치하였다.
기삽석통(旗揷石桶)
세병관 앞뜰에 영기(令旗)와 장군기(將軍旗)를 세우기 위해 깃대를 고정하는 커다란 두 개의 돌기둥으로
정조 10년(1786년) 제142대 류진항(柳鎭恒) 통제사가 세웠다.
원래는 세병관 뜰 앞 좌우 양편으로 2기가 있었으나, 현재 세병관 앞뜰 담장 부근에 서족 1기만 남아있다.
통제영(統制營)의 객사(客舍), 세병관(洗兵館) - 국보 제305호(2002.10.14.지정)
세병관은 통제영(統制營)의 객사(客舍)로 제6대 통제사 이경준(李慶濬)이 이곳에 통제영을 옮겨온 이듬해인 1605년에 처음 세웠다.
제35대 통제사 김응해(金應海, 1588~1666)가 1646년 규모를 크게하여 다시 지었으며,
제194대 통제사 채동건(蔡東健)이 1872년에 다시 고쳐 지은 것이다. 정
면 9칸, 측면 5칸의 9량 구조 단층 팔각집으로 경복궁 경회루(국보 제224호), 여수 진남관(국보 제304호)과 더불어
지금 남아 있는 조선시대 건축물 가운데 바닥면적이 가장 넓은 건물 중 하나이다.
장대석 기단, 50개의 민흘림기둥, 2익공 양식에 벽체나 창호도 없이 통칸으로 트여 있으며,
질박하면서도 웅장한 위용이 통제영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우물마루(짧은 널빤지를 마루의 귀틀에 끼워서 '井'자 모양으로 만든 마루)에
연등천장(삿갓 천장의 하나, 서까래 사이의 개판 또는 앙토 밑이 그대로 치장이 되게한 천장)을 시설한 것이나,
안쪽의 중앙 3칸만은 한단을 올려 전패단(殿牌壇)을 만들고
상부를 소란반자(틀을 '井' 자 모양으로 짜고, 네모진 구명에 넓은 널빤지를 덮은 반자)로 꾸민 후
3면에 분합문을 두어 위계를 달리하였다.
세병이란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 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병기를 씻는다”는 뜻이다.
세병관(洗兵館)이라 크게 써서 걸어 놓은 현판은 제137대 통제사 서유대(徐有大)가 쓴 글씨이다.
경상남도 통영시 문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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