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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4.3 성산읍희생자위령비(濟州四.三 城山邑犧牲者慰靈碑)
    국내 나들이/제주도(濟州道) 2017. 1. 18. 22:30

    제주4.3유적지

    제주4.3 성산읍희생자위령비(濟州四.三 城山邑犧牲者慰靈碑)


    제주 4·3 사건은 제주도 전역에 영향을 미치며 많은 인명희생을 몰고 왔다.

    특히 군부대가 주둔한 인근은 일상적인 학살터가 되기 일쑤였다.

    서귀포시 성산읍에 위치한 속칭 ‘터진목’도 성산읍 관내 주민들이 많이 희생당한 희생터이다.

    당시 성산국민학교에는 서북청년회 단원으로 편성된 특별중대가 주둔하고 있었고

    바로 앞 주정공장 창고에는 갖가지 구실로 붙잡혀 온 주민들로 가득 찼다.

    군인들은 끌려온 주민들에게 온갖 폭행과 고문을 가했고, 이들 대부분은 터진목에서 총살됐던 것이다.

    이외에도 인근 구좌면 세화·하도·종달리 등에서도 붙잡혀온 주민들이 이곳에서 희생된 경우도 많았다.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에 위치하며 고성리에서 성산일출봉으로 1.5㎞ 쯤 가다 보면

    우측에 조그만 소나무 군락너머 모래사장에 암반이 드러난 속칭 ‘광치기여’ 인근이 터진목이다.

    특별한 형태를 띤 구조물이 아니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해안 모래사장이다.
    ‘터진목’이란 지명은 터진 길목이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실제 194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성산일출봉이 있는 성산리는 물때에 따라 육지길이 열리고 닫혔었다.

    이후 주민과 행정당국이 공사를 벌여 육지와 완전히 이어지게 됐는데 지금도 이 일대를 ‘터진목’이라 한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지형이기 때문에 제주 4·3 사건 당시와 큰 변화는 없고 학살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성산일출봉의 위용을 남동쪽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이어서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다.

    2010년 11월 5일 성산읍 4·3 희생자 유족회 주최로 추모위령제를 지내고 ‘제주 4·3 성산읍희생자위령비’를 세웠다.






    제주4.3 성산읍희생자위령비(濟州四.三 城山邑犧牲者慰靈碑)







    섬의 우수 - 강중훈

     

    여기 가을 햇살이

    예순 두해 전 일들을 기억하는 그 햇살이

    그때 핏덩이 던 할아비의 주름진 앞이마와

    죽은 자의 등에 업혀 목숨건진

    수수깡 같은 노파의 잔등위로 무진장 쏟아지네

    거북이 등짝 같은 눈을 가진 무리들이 바라보네

    성산포 '앞바르 터진목'

    바다 물살 파랗게 질려

    아직도 파들파들 파들파들 떨고 있는데

    숨비기나무 줄기 끝에

    철지난 꽃잎 몇 조각

    핏빛 태양 속으로 목숨 걸듯 숨어드는데

    섬의 우수 들불처럼 번지는데

    성산포 4.3 희생자위령제단 위로

    뉘 집 혼백인양 바다갈매기 하얗게 사라지네.




    섬의 우수

     

    섬에는 우수가 있다. 이게 어디서 나오는지는 알 수 없다. 그것이 마음 갑갑하게 만드는 이유다.

    오늘날 제주에는 달콤함과 떪음.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있다.

    초록과 검정. 섬의 우수. 우리는 동쪽 끝 성산 일출봉 즉 '새벽 바위'라 불리는 이곳에서 느낄 수 있다.
    바위는 떠오르는 태양과 마주한 검은 절벽이다. 한국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첫 해돋이의 마술적인 광경의 축제에 참석하러 오는 곳이 바로 여기다.

    1948925일 아침에 군인들이 성산포 사람들을 총살하기 위하여

    트럭에서 해변으로 내리게 했을 때 그들의 눈앞에 보였던 게 이 바위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에 느꼈을. 새벽의 노르스름한 빛이 하늘을 비추는 동안에

    해안선에 우뚝 서 있는 바위의 친숙한 모습으로 향한 그들의 눈길을 상상할 수 있다.
    냉전의 가장 삭막한 한 대목이 펼쳐진 곳이 여기 일출봉 앞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은 194843일에 제주에서 군대와 경찰이 양민학살 (인구의 10분의 1)을 자행한 진부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오늘날 이 잔인한 전쟁의 기억은 지워지고 있다.

    아이들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자신들 부모의 피를 마신 모래에서 논다.

    매일 아침 휴가를 맞은 여행객들은 가족들과 함께 바위 너머로 솟는 일출을 보러 이바위를 오른다.
    숙청 때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을 잃은 시인 강중훈씨 조차 시간의 흐름에 굴복했다.

    그가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 그의 시 한편 한편이 그 925일의 끔찍한 흔적을 지니고 있다.

     - 그걸 뛰어넘을 필요성도 알고 있다.


    유럽 최대잡지 (GEO) 20093월호 게재된 제주기행문중에서
    J.M.G Le Clezio - 2008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프랑스)




    추모공원조성기념비


    과거를 잊고 산다는 것은 곧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제주4.3의 아픈 역사속에서도 꼭 잊지 말아야 할, 그래서 더욱 보존해야 할,

    이곳 성산을 4.3희생자 학살 현장을 추모공원으로 조성하고자 뜻을 모았다.

    우리의 아픈 과거를 극복하고 미래를 기약하고자 함이다.

    우리 유족들은 물론 우리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로부터 한푼 두푼 모아진 단성은

    급기야 이곳에 조그만 추모공원을 조성하는데 큰힘이 되어 주었다.


    성산읍 4.3희생자 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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