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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종과 정순왕후가 영영 이별한 곳, 영도교(永渡橋)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7. 2. 19. 21:30

    단종과 정순왕후가 영영 이별한 곳, 영도교(永渡橋)

     

     

     

     

     

     

     

     

     

     

     

     

     

     

     

    단종과 정순왕후가 영영 이별한 곳, 영도교(永渡橋)

     

    청계천 7가와 8가 중간, 즉 황학동에서 숭인동 숭신초등학교와 동묘로 나가는 교차로에 있는 다리이다.

    조선 초에는 왕심평대교(旺尋坪大橋)라고도 하였다.

    이 다리에는 단종(端宗, 1441~1457)에 얽힌 슬픈 이야기가 전한다.

    단종이 수양대군(首陽大君,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로 귀양갈 때

    단종비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가 이 다리까지 배웅 나와 이별하였는데

    이후 다시는 만나지 못하고 영영 이별하였다고 하여 영이별다리(永離別橋),영영건넌다리라고 불렀다.

    성종 때 이 다리를 보수하여 한자명으로 영도교(永渡橋)라고 하였다.

    그리고 영미동(永尾洞)에서 내려오는 하천 끝에 놓인 다리라는 의미와 창신동에 있던

    영미사(永尾寺) 승려들이 다리를 가설하였다고 하여 영미교(永尾橋) 혹은 영미다리라고도 불렀다.

    또한 안암동 영도사(永導寺)승려들이 다리를 놓았다고 하여 영도교(永導橋)라는 명칭이 붙었다고도 한다.

    고종 때는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다리의 석물을

    궁궐에 쓰는 석재로 징발함에 따라 나무다리로 바뀌었다.

    이 나무다리들이 장마 때마다 유실되곤 하여 띄엄띄엄 징검다리를 놓아

    건너다니면서 한때는 띄엄다리라는 명칭이 붙기도 하였다.

    1933년 나무다리를 헐고 콘크리트로 교체공사를 할 때

    교각 하부 구중(溝中)에서 관음보살목각좌상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2005년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새로 영도교가 가설되었다.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

    정순왕후 송씨(1440~1521)는 조선 단종의 정비이다.

    시호는 단량제경정순왕후(端良齊敬定順王后)이다.

    여량부원군 송현수(礪良府院君 宋玹壽)의 딸로,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김종서의 사후 1454년에 간택령에 따라 왕비교서를 받고, 즉위하였다.

    남편 단종이 강등되면서 군부인(郡夫人)으로 격하되었다가, 관비가 되었다.

    한때 신숙주가 그를 자신의 종으로 달라고 했다가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후 세조는 그를 노비이지만 아무도 범하지 못하도록 정업원(淨業院)으로 보냈다.

    이후 남편 노산군(魯山君)의 명복을 빌다가 사망하였으며,

    그녀의 능의 소나무는 동쪽 방향으로 굽는다는 전설이 있어 한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중종 때부터 복위가 거론되다가 송시열, 김수항의 거듭된 건의로

    1698(숙종 24)에 단종과 함께 복위되어 왕후로 추봉되었다.

    세종의 왕자 영응대군의 부인 대방군부인 송씨는 그녀의 고모이자 시숙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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