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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헌공 강감찬장군 동상(仁憲公 姜邯贊將軍 銅像)
    국내 나들이/동상(銅像),흉상(胸像),비(碑), 2017. 3. 5. 21:30

    인헌공 강감찬 장군(仁憲公 姜邯贊 將軍)

     

    인헌공 감감찬(仁憲公 姜邯贊, 948~1031), 본관은 금주(衿州:서울 관악구 봉천동),

    초명은 은천(殷川). 983(고려 성종 2)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예부시랑이 되었다.

    1010(현종 1) 거란의 성종이 40만 대군으로 침입하자, 조신(朝臣)들은 항복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반대하고 하공진(河拱辰)으로 하여금 적을 설득하여 물러가게 하였다.

    그 뒤 한림학사·승지· 중추원사(中樞院使이부상서· 서경유수· 내사시랑평장사를 역임하였다.

    1018년 거란의 소배압(蕭排押)10만 대군으로 침입해 오자 이듬해 서북면행영도통사로

    상원수(上元帥)가 되어 군사 208000명을 이끌고 흥화진(興化鎭)에서 적을 무찔렀다.

    그 위에 쫓겨가는 적을 귀주에서 크게 격파하고 개선할 때 영파역(迎波驛)에서 왕의 영접을 받았으며,

    검교태위(檢校太尉) 문하시랑동내사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內史門下平章事) 천수현개국남(天水縣開國男)

    식읍 3백호에 봉해지고 추충협모안국공신(推忠協謀安國功臣)의 호를 받았다.

    그 이듬해 벼슬을 사양하고 물러났다가 1030년 왕에게 청하여 성을 쌓고 문하시중이 되었으며,

    이듬해 특진검교태사시중 천수군개국후(天水郡開國侯)에 봉해졌다. 현종 묘정(廟庭)에 배향, 수태사 겸 중서령에 추증되었다.

    저서로는 낙도교거집(樂道郊居集)’, ‘구선집(求善集)’ 등이 있으며, 동상은 수원시 장안구 연무동 광교공원에 있다.

     

     

     

     

     

     

     

     

     

    인헌공 강감찬장군 동상(仁憲公 姜邯贊將軍 銅像)

     

    인현공 강감찬 장군은 고려시대의 대외항쟁사에 있어 가장 혁혁한 훈공을 세운 위대한 분이다.

    문무의 자질을 겸비한 공은 서기 948년에 지금의 서울 봉천동에서 탄생하여 1031년에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고려는 이웃 강국인 거란의 침공을 자주 받았는데 특히 현종 원년(1010)에 거란 임금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처들어왔다.  

    그때 조정 안에는 굴복하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공은 홀로 항전책을 주장하여

    마침내 적으로 하여금 무참한 실패를 맛보게 하고 크게 국위를 빛내었다.

    다시 현종 9년에는 10만의 거란군이 침입함에 공은 상원수로서 전군을 지휘하여

    앞뒤로 휘몰아쳐 도망하는 적군을 구주(구성)에서 거의 섬멸하고 역사적인 개선을 하였다.

    이 구주대첩이야말로 고려에 대한 거란의 끈덕진 야망을 꺾어 버린 것이다.

    그 거룩한 애국정신에 위대한 업적을 세운 공은 당시에도 세상 사람으로부터

    국가의 기둥처럼 추앙되었거니와 민족적 영웅이요 겨례의 자랑으로서 길이 청사에 빛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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