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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우정총국(郵政總局)과 체신기념관(遞信記念館)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7. 3. 18. 05:02

    서울 우정총국(郵政總局)과 체신기념관(遞信記念館)

     

     

     

     

     

     

     

     

     

     

     

    초대 우정총판, 홍영식(洪英植 : 1855~1884)


    홍영식은 우리나라 근대 우편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그는 1855년 홍순목의 둘째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홍순목은 헌종 때 과거에 급제하여 영의정까지 지낸 유학의 대가였다.

    홍영식은 어려서부터 무척 총명하여 24세 때인 1879년(고종 16년)에 문과에 급제한 뒤 승지(承旨)를 역임하고 참판(參判)이 되었다.
    1880년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가게 되었을 때 약 4개월간 일본을 방문하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이때 홍영식은 우리나라보다 10년 앞서 시행되던 일본의 우편제도를 상세히 검토했을 뿐 아니라,

    당시 일본인들이 부산에서 멋대로 우편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데 대해 엄중하게 항의하여

    훗날 조선이 우편제도를 시행하게 되면 조선의 제도에 따르겠다는 약속을 일본으로부터 받아냈다고 한다.

    홍영식은 근대적인 우편제도를 주장하여 우정총국을 설치하게 한 뒤 초대 우정총판으로 임명되었다.

    1884년 우정총국이 개국될 당시, 조선은 은퇴했던 대원군이 임오군란으로 재집권했다가

    청나라 군대에 의해 민씨 일파가 다시 정권을 잡는 등 극도로 혼란한 상황이었다.

    특히 청나라 군대의 힘을 빌려 재집권한 민씨 일파는 초기의 개혁적인 정책을 버리고

    청나라에 대한 사대주의로 일관하는 등 매우 수구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에 홍영식, 박영효, 김옥균, 서재필, 이상재 등이 독립당을 결성하고 집권 사대당을 처단한 뒤 새로운 정부를 세우기로 하였다.

    1884년 우정총국 완공식이 개최된 음력 10월 17일 독립당은 계획대로 개화파에 의한 쿠데타를 단행한 뒤,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 사건이 갑신정변이다.

    하지만 급하게 이루어진 갑신정변은 10월19일 청나라 군대가 창덕궁에 난입하고

    개화파를 지키던 일본 군대가 패하는 바람에 사흘 만에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이 일로 인해 홍영식은 피신하다가 창덕궁에서 청나라 병사에게 피살되고 말았다.

    이때 홍영식의 나이는 30세에 불과했다.

     


     

     

     

     

     

     

    우리나라 근대 우정의 시작

     

    1876년 강화도조약을 시작으로 세계 각국에 문호를 개방하면서 우편사업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1884(고종21) 422(음력 327) 우정총국이 설치되고 우정총판에 임명된 홍영식이 개국준비에 착수했다.

    같은 해 5월에 일본, 영국, 미국 공관에 우정총국 설립사실을 통고하고,

    68일에는 우정총국 신설에 따른 개략장정(槪略章程)을 국왕에게 보고하였다.

    곧 이어 직원 인선작업에 착수하여 71일 일본인 2명을 고용하기에 이른다.

    109일에는 이상재, 남궁 억, 신낙균 등 14명이, 1021일에는 성익영이 우정총국 사사로 임명되었다.

    1029일 각종 우정규칙과 장정에 대해 국왕이 재가하고, 1117일에는 업무분장 및 입직절차를 정했으며

    11185분과 102종의 우표를 발행하면서 한성-인천 간의 우정업무가 시작되었다.

     

     

     

    우정총국(郵政總局)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인 우정총국은 1884422일 고종의 왕명으로 개설하여,

    그해 1118일부터 근대 우정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같은 해 124일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일어난 갑신정변으로 우정총국이 폐지되고 우편업무가 중단되었다.

    이후 이 사적은 한어학교, 중동학교 등으로 사용되다가 해방 후 적산가옥으로 분류되어

    철거될 위기에서 1956년 체신부가 매입하였다.

    197010월 현존 최고의 궁외건물과 애국운동 장소로서의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사적 제213호로 지정되었으며,

    128년 만인 2012828일 우편업무를 다시 시작하고 사료를 전시하는 등 우정문화의 상징적 장소로 새롭게 태어났다.

     

     

     

    서울 우정총국(郵政總局)

     

    우정총국은 근대적인 우편업무가 시작된 관청으로 18844월 일본과 미국에서

    신식 우편제도를 시찰하고 돌아온 홍영식(洪英植, 1855~1884)의 건의로 만들어졌다.

    이 건물은 188411월에 전의감(典醫監)의 부속건물을 수리하여 만든 우정총국 청사이다.

    그해 124일 우정총국의 개업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이

    민씨 정권을 제거하고 신정부를 조직하는 갑신정변(甲申政變)을 일으켰다.

    이때 본채를 제외한 부속건물은 모두 불에 탔고, 우정총국의 우편업무도 중단되었다.

    1893년에야 전우총국(電郵總局)이란 이름으로 우편업무를 다시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본에 통신권을 빼앗긴 1905년 이후에는 한어학교, 중동야학교, 경성 중앙우체국장 관사 등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에는 개인주택이었다가 1972년부터 체신기념관이 되었다.

    우정총국은 19701029일 사적 제213호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견지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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