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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기념관(秋史 記念館) - 충남 예산국내 나들이/기념관(記念館) 2017. 5. 17. 05:53
추사기념관(秋史 記念館) - 충남 예산
추사기념관은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선생의 드높은 서예정신과
위대한 업적을 세롭게 조명하고 후세에 남긴 작품을 체계적으로 보존,전시하여
추사선생의 다양한 면모와 그 위상을 재정립 하기 위하여 2008년에 건립 하였다.
김정희는 유배전이나 이후에나 늘 마음을 다해 자신에 대한 신의를 버리지 않은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으로 그림을 그려 그에게 주고자 했다.
당대 학예 연찬의 중심에 있다가 찾아오는 이 하나없는 쓸쓸하고 초라한 유배객이 되어버린
김정희 자신의 처지와 스승이 처한 정치적 상황이 달라졌어도 시류에 흔들리지 않은
이상적인 송백과 같은 의리를 그림에 담아 굳세고 골기있는 구양순체의 해서로 쓴 발문에서
김정희는 논어의 《자한》편중 『겨울이 되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 게 된다』라는
구절을 언급한 ‘세한도(歲寒圖)’를 탄생 시켰다.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추사기념관
화법유장강만리(畵法有長江萬里) 화법(畵法)에는 장강(長江) 만리(萬里)가 들어 있고,
서세여고송일지(書勢如孤松一枝) 서세(書勢)는 외로운 소나무 한 가지와 같다.
토위단록지영(吐爲丹菉芝英) 붉고 푸른 지초 꽃망울이 터져서
결성주광검기(結成珠光劒氣) 옥빛 검기(강한 기운)를 만들었네.
세한도(歲寒圖)
고택 사랑채에 걸려있는 세한도는 1844년 완당(추사) 나이 59세 때 제주도에서 귀양살이 하는 동안에
제자인 우선 이상적(藕船 李尙適)이 청나라 연경(燕京, 북경의 옛 이름)에서 구해온 책을 보내주는 등
변함없이 사제의 의리를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세한송(歲寒松)에 비유하여 그려준 그림으로,
완당 생애 최고의 명작이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 금석학자, 고증학자, 화가, 실학자이다.
북학파(北學派)의 한 사람으로, 조선의 실학(實學)과 청의 학풍을 융화시켜
경학·금석학·불교학 등 다방면에 걸친 학문 체계를 수립했다.
서예에도 능하여 추사체를 창안했으며, 그림에서는 문기(文氣)를 중시하는
문인화풍을 강조하여 조선 말기 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본관은 경주. 자는 원춘(元春), 호는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
과파(果坡)·노과(老果)·보담재(寶覃齋)·담연재(覃硏齋).
추사 영정(秋史 影幀)
김정희(金正喜)는 1856년 10월 10일 과천 과지초당에서 생을 마쳤다.
이에 절친한 친구이던 권돈인(權敦仁 1793~1859)은 이듬해 초여름
관복을 입은 추사를 이한철(李漢喆 1808~80)에게 그리게 하고,
이를 예산 추사고택 뒤편에 세운 사당에 봉안했다.
권돈인은 ‘추사영실(秋史影室)’이란 현판을 썼고 화상찬(畵像贊)도 짓고 썼다.
이 영정은 19세기 중엽을 대표하는 문신 초상으로 봉황의 눈에 미간을 넓게 하여 후덕한 인상을 준다.
추사고택(秋史古宅)
竹爐之室(죽로지실)
‘차를 끓이는 죽로(겉을 뜨겁지 않게 대나무로 감싸서 만든 화로)가 있는 방’ 란 뜻으로 ,
추사가 친구인 황상(黃裳)에게 써준 다실(茶室) 이름이다.
예서(隸書), 전서(篆書)의 형을 살리어 그림을 피하는 듯하여 지나치게 교(巧)를 부린 작품이다.
추사의 글씨를 평하여 일반적으로 졸(拙)한 것이 그의 특징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으나,
실은 추사의 글씨는 교(巧)하지 않은 것이 거의 없다.
다만, 그의 교(巧)는 이 작품에서 보는 것과 같은 정교(精巧)에 속한 것이 아니요,
불균형적(不均衡的)인 표현으로 나타내는 교(巧)를 의미하는 것인데,
이런 점으로 보아 이 작품은 예외가 될 것이다.
무량수(無量壽)
'한없는 수명'이란 뜻으로, 불교의 윤회설(輪迴說)에 입각하여 쓴 글이다.
부처님의 법신(法身)은 삼세(三世) 고금(古今)을 통하여 항상 존재하여 멸하지 않으므로,
그 수명이 실로 무량하여 한이 없기 때문에 무량수라 하였다.
왼쪽의 승련노인(勝蓮老人)은 추사선생의 호(號)이다.
新安舊家(신안구가)
추사 50대 중기작으로 보이는 新安舊家(신안구가)는 ‘신안의 옛집’이란 뜻으로
주자성리학의 시조인 주희(朱熹)가 중국 송나라 신안인이므로
‘朱子性理學者(주자성리학자)의 전통을 가진 집’이라는 뜻이다.
'家(가)'자의 윗부분 점을 둥글게 처리한 것이 눈길을 사로잡고,
'新(신)'자의 가로획을 촘촘히 붙여서 쓴 것과 세로획에 변화를 준 부분이 눈에 띤다.
추사의 조형감각을 느끼게 되는 작품이다.
유복량수(有福量壽) - 승련노인(勝蓮老人)
원래는 “유대복무량수(有大福無量壽)”라 써서 방문 윗벽에 붙여 있었던 것인데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바탕지는 낡아 없어진 것을 1976년 고택정화사업 때 떼어서 표구한 것이다.
이 글씨는 “많은 복과 한없는 수명”이란 뜻으로 추사 선생이 회갑(回甲)때 쓴 것이다.
승련노인(勝蓮老人) 은 김정희(金正喜)선생의 호(號)다.
유대복무량수(有大福無量壽)은 불경중 극락왕생론(極樂往生論)에서 따온 것이다.
왕생(往生)은 불교에서 말하는, 이승을 떠나 저승에 다시 태어남을 말한다.
즉 이 사파(裟婆) 세상을 떠나 정토(淨土)에 가서 새로이 태어나는 것이다.
왕생극락(往生極樂)이나 왕생안락(安樂)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왕생사상은 “왕생론(往生論)” 일명 “왕생정토론(往生淨土論)”이라는
5언 96구의 게송(偈頌)으로 되어있는 책에 적혀있다.
“달아 멀리 서쪽까지 가서 무량수부처 앞에 일러라.
신앙 깊은 존(尊)을 우러러 두 손 모아 원왕생(願往生)을 바라는 사람이 있다고 일러라”
내용은 위와 같은 뜻인데, 무량수(無量壽)는 한없이 오랜 수명을 뜻하는 무량상수(無量上壽)를 말한다.
또한 불교에서는 아미타불(阿彌陀佛) 및 그 땅의 백성의 수명이 한량(限量)이 없음을 말한다.
계산무진 (谿山無盡)
추사의 ‘계산무진’은 68세 전후의 만년 작품으로 계산(溪山) 김수근(金洙根)에게 써 준 글이다.
“계곡과 산은 끝이 없다”라는 뜻으로 추사의 작품 중 균형미가 탁월하고 조형성이 매우 뛰어나다는평가를 받고 있다.
김수근은 안동 사람으로 호는 계산초로(溪山樵老)로 목사 김인순의 아들이다.
벼슬은 이조판서, 동생 문근은 철종의 장인 영은부원군이다.
당대 세도가의 출신으로 아들 병학, 병국 모두 정승 반열에 올랐다.
‘계(溪)와 ’산(山)’에 변화를 주었다. ‘복잡한 획 계(溪)는 음·뜻이 같은 ‘谿’로 바꾸고 ‘爪(조)’를 떼어내 단순화시켰다.
나머지 직선 획은 곡선으로 처리해 물이 흘러가는 형세를 취했다.
‘山’은 가운데 획을 세 획의 산모양세로 나머지 두 획과 달리 처리했다.
‘무진(無盡)’에서 ‘無’자의 아래 4점을 제외한 획과 점들은
‘谿’의 왼쪽 둥근 획과는 달리 무겁고 뚝심있게 직선으로만 처리했다.
山은 위쪽에 ‘谿’는 중간에 ‘無盡’ 두 획은 세로로 배치했다.
단순한 획의 글자는 위에, 복잡한 획의 글자는 아래쪽에 앉혔다.
기운 듯 기울지 않고 기울지 않은 듯 기운 신묘한 공간 배치이다. 추사의 파격, 절묘한 글자
黙笑居士 自讚(묵소거사 자찬) 김유근 짓고, 김정희 글씀
當默而墨 近乎時 當笑而笑 近乎中(당묵이묵 근호시 당소이소 근호중)
마땅히 침묵할 때 침묵하는 것이 시의에 맞는 것이고,
마땅히 웃어야 할 때 웃는 것이 ‘치우치지 않음’에 맞는 것이다.
周旋可否之間 屈伸消長之際 動而不悖 於天理 靜而不拂 乎人情
(주선가부지간 굴신소장지제 동이불패 어천리 정이불불 호인정)
옳고 그름에 응하는 때, 굽히고 펴거나 더하고 빼는 때, 움직이되 천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고, 고요히 있으되 인정에 어긋나지 않도록 한다.
黙笑之義 大矣哉(묵소지의 대의재)
침묵과 웃음의 뜻은 크도다.
不言而喩 何傷乎黙 得中而發 何患乎笑(불언이유 하상호묵 득중이발 하환호소)
말하지 않아도 깨우치면 어찌 침묵하여 다칠 것이며,
지나치거나 모자람 없이 발하면 어찌 웃음에 염려하겠는가
勉之哉 吾惟自況而 知其 免夫矣(면지재 오유자황이 지기 면부의)
이를 힘쓸지니, 나는 오로지 스스로 비교하여 그 면함을 아느니라.
김정희가 스스로 `묵소거사` 라는 호를 짓고 글을 쓴 것으로 알려졌으나
인장을 분석한 결과 `묵소거사`는 그의 절친한 벗 김유근의 호로서
김유근이 이 글을 지었고, 추사가 그를 위해 써 준 것으로 밝혀졌다.
大烹豆腐瓜薑菜(대팽두부과강채) 가장 좋은 반찬은 두부,오이,생강,나물이고,
高會夫妻兒女孫(고회부처아녀손) 가장 훌륭한 모임은 부부 아들딸 손자의 모임이다.
春風大雅能容物(춘풍대아능용물) 봄 바람처럼 큰 아량은 만물을 용납하고
秋水文章不染塵(추수문장불염진) 가을물 같이 맑은 문장은 티끌에 물들지 않는다.
且呼明月成三友(차호명월성삼우) 밝은 달을 불러 세 벗(청풍,명월,작자)을 이루고
好共梅花住一山(호공매화주일산) 즐겁게 매화와 함께 한 산에 머물다.
畵法有長江萬里(화법유장강만리) 그림 그리는 법은 장강 만리와 같은 유장함이 있고
書勢如孤松一枝(서세여고송일지) 글씨 쓰는 법은 외로운 소나무 한 가지와 같다.
고사소요 (高士逍遙)
추사의 제주도 유배시절의 그림이다.
나무의 묘사나 바싹마른 먹선이 세한도와 비슷한 시기에 작품으로 추정된다.
추사의 문인화 중 인물이 그려진 유일한 그림이며.
뜻 높은 선비가 사색에 잠긴채 오솔길을 거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인천안목난맹첩(人天眼目蘭盟帖)
사람과 하늘이 살펴주어 뜻과 같이 잘되어 질지어다.
염화취실난맹첩 (廉華就實蘭盟帖)
추사의 난맹첩 상권 아홉째 폭에 실린 난으로 꽃을 거두고 열매를 맺은 난을 그린 것이다.
"내 글씨는 비록 말할 것도 못되지만 나는 70평생에 벼루 열 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비록 9999분에 이르렀다 하여도 그 나머지 1분을 원만하게 성취하기가 가장 어렵다.
9999분은 거의 다 가능하겠지만, 이 1분은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또 사람의 힘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가슴속에 오천 권의 문자가 있어야만 비로소 붓을 들 수 있다.
팔뚝 밑에 309개의 옛 비문 글씨가 들어있지 않으면 또한 하루아침 사이에 아주 쉽게 나오기가 어려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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