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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과 힐링을 위한 공간, 만해마을(강원도 인제)국내 나들이/기념관(記念館) 2017. 8. 17. 05:30
휴식과 힐링을 위한 공간, 만해마을(강원도 인제)
설악산과 속초시를 근거리에 두고 있는 만해마을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수행공간이자 시집 '님의 침묵'을 집필한
백담사를 배경으로 선생의 사상을 높이 기리고 계승 발전하기 위해 설립된 시설이다.
만해마을은 '동국대캠퍼스 만해마을'이라 불렸는데 재단법인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2003년 설립된
만해마을의 건물과 부대시설 일체를 동국대학교에 기부했다.
이에 따라 만해마을은 동국대 서울캠퍼스 부속시설로 편입돼 ‘동국대 인제 만해마을 캠퍼스’로 불리게 된 것이다이곳에는 문인의 집을 비롯해 만해기념관(박물관), 만해학교(교육시설), 서원보전(사찰), 만해수련원, 청소년수련원 등
건물 6개동과 종각, 님의침묵 광장 등 부대시설로 이뤄져 있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만해로 91(용대리) 동국대학교 만해마을
평화의 시벽
이 시벽은 2005년 세계평화 시인대회에 참가한 29개국 55명의 외국시인과 255명의 한국시인 작품 등
310편의 시를 동판에 담아 평화를 희구하는 세계시인들의 염원을 영구히 기념하고자 조성되었습니다.
서원보전(법당)
만해 한용운 선생의 "조선불교유신론"을 계승하고 "반야경"의 무소유 정신을 담은 서원보전
소나무 숲이 후불탱화가 되어 자연과 인간이 공생하는 현대적 개념의 법당으로사찰체험, 발우공양, 참선 드을 통하여 참나(眞我)를 찾는 자리이다.
神光不昧萬古徽猷(신광불매 만고휘유) 부처님의 밝은 광명은 만고불변의 진리니
入此門來幕存知解(입차문래 막존지해) 아는 것 다 놓고 이 문으로 들어오라
만해평화지종 (萬海平和之鐘)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의 통일과 만민의 평화안녕이라는 염원을 담아 울리는
법전사물(法殿四物)인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있는 범종루.
보통 사찰의 범종루라면 전통양식의 지붕과 단청, 누각의 모습을 갖추고 있지만,만해평화지종 범종루는 파격적으로 좌우기둥과 최소한의 비가름을 하는 지붕만 있고 벽이 없다.
그야말로 열린 공간의 법정사물소리와 함께 산을 울리고, 개울을 울린다.
목어
목어는 나무로 만든 물고기이다.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밤에도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참선하는 수행자로 하여금 항상 깨어 정진하라는 뜻을 담고 있어
게으른 수행자를 질책하는 의미로도 사용한다. 목탁(木鐸)은 이것의 변용이다.
운판
운판은 청동이나 쇠로 만든 구름 모양의 넓은 판이다.그 소리는 날아다니는 조류와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구제한다고 하며, 본래 대중에게 공양 시간을 알리기 위해 사용하였다.
범종
범종은 사찰에서 대중을 모이게 하거나 때를 알리기 위해 치는 큰 종을 말한다.이것은 신성한 불음(佛音)을 내서 고통받는 중생으로 하여금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게 해주며,
지옥에 있는 중생의 영혼까지도 제도한다고 한다.
범종은 사물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힌다.
법고
법고는 말 그대로 법을 전하는 북으로서, 축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법고는 불변의 진리인 법(法)을 통하여 축생과 땅에 사는 모든 중생의 마음을 울려 어리석음을 깨우쳐 준다.
잠 없는 꿈
나는 어느날 밤에 잠 없는 꿈을 꾸었습니다.
‘나의 님은 어데 있어요, 나는 님을 보러 가겠습니다. 님에게 가는 길을 가져다가 나에게 주셔요, 검이여.’
‘너의 가려는 길은 너의 님의 오려는 길이다. 그 길을 가져다 너에게 주면 너의 님은 올 수가 없다.’
‘내가 가기만 하면 님은 아니 와도 관계가 없습니다.’
‘너의 님의 오려는 길을 너에게 갖다 주면 너의 님은 다른 길로 오게 된다. 네가 간대도 너의 님을 만날 수가 없다.’
‘그러면 그 길을 가져다가 나의 님에게 주셔요.’
‘너의 님에게 주는 것이 너에게 주는 것과 같다. 사람마다 저의 길이 각각 있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야 이별한 님을 만나보겠습니까.’
‘네가 너를 가져다가 너의 가려는 길에 주어라. 그러하고 쉬지 말고 가거라.’
‘그리할 마음은 있지마는 그 길에는 고개도 많고 물도 많습니다. 갈 수가 없습니다.’
검은 ‘그러면 너의 님을 가슴에 안겨 주마’ 하고 나의 님을 나에게 안겨 주었습니다.
나는 나의 님을 힘껏 껴안았습니다.
나의 팔이 나의 가슴을 아프도록 다칠 때에 나의 두 팔에 베어진 허공은 나의 팔을 뒤에 두고 이어졌습니다.
설악관 - 만해마을 청소년수련원 생활관 (숙소, 강당, 식당)
청소년수련활동 및 기관, 단체, 기업체, 학교 등의 연수, 세미나, MT를 위한 숙소와 강당을 이용할 수 있다.
만해문학박물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선생을 만나게 되는 만해문학박물관이 있는 건물이다
만해의 저서, 유품, 연대·주제별로 본 만해 한용운 일대기 전시전시장으로
미술, 사진, 시화, 공예 등 문예작품 기획 및 초대전, 세미나실이 있다.
무고무금선창(無古無今禪窓)
만해 한용운상(萬海 韓龍雲像)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1879~1944)
본관 청주(淸州), 법명 용운(龍雲) 호 만해(萬海·卍海), 속명 유천(裕天), 자 정옥(貞玉), 계명 봉완(奉玩)이다.
1879년 8월 29일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동학농민운동에 가담했으나 실패하자 1896년(건양 1) 설악산 오세암(五歲庵)에 들어갔다.
그 뒤 1905년(광무 9) 인제의 백담사(百潭寺)에 가서 연곡(連谷)을 스승으로 승려가 되고 만화(萬化)에게서 법을 받았다.
1908년(융희 2) 전국 사찰대표 52인의 한 사람으로
원흥사(元興寺)에서 원종종무원(圓宗宗務院)을 설립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명을 시찰했다.
1910년 국권이 피탈되자 중국에 가서 독립군 군관학교를 방문,
이를 격려하고 만주·시베리아 등지를 방랑하다가 1913년 귀국, 불교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범어사(梵魚寺)에 들어가 ‘불교대전(佛敎大典)’을 저술, 대승불교의 반야사상(般若思想)에 입각하여
종래의 무능한 불교를 개혁하고 불교의 현실참여를 주장하였다.
1916년 서울 계동(桂洞)에서 월간지 ‘유심(唯心)’을 발간,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의 한 사람으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1926년 시집 ‘님의 침묵(沈默)’을 출판하여 저항문학에 앞장섰고,
이듬해 신간회(新幹會)에 가입하여 중앙집행위원이 되어 경성지회장(京城支會長)의 일을 맡았다.
1931년 조선불교청년회를 조선불교청년동맹으로 개칭, 불교를 통한 청년운동을 강화하고
이해 월간지 ‘불교(佛敎)’를 인수, 이후 많은 논문을 발표하여 불교의 대중화와 독립사상 고취에 힘썼다.
1935년 첫 장편소설 ‘흑풍(黑風)’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였고,
1937년 불교관계 항일단체인 만당사건(卍黨事件)의 배후자로 검거되었다.
그 후에도 불교의 혁신과 작품활동을 계속하다가 서울 성북동(城北洞)에서 중풍으로 입적하였다.
시에 있어 퇴폐적인 서정성을 배격하고 불교적인 ‘님’을 자연(自然)으로 형상화했으며,
고도의 은유법을 구사하여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과 불교에 의한 중생제도(衆生濟度)를 노래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大韓民國章)이 추서되었다.
작품으로는 상기 장편 외에 장편소설인 ‘박명(薄命)’이 있고, 저서로는 시집 ‘님의 침묵’을 비롯하여‘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 ‘불교대전’, ‘불교와 고려제왕(高麗諸王)’ 등이 있다.
1973년 ‘한용운전집’(6권)이 간행되었다.
님의 침묵 광장
공연 및 시낭송회, 연극 등이 가능한 노천극장이다.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문인의 집
문인의집은 2003년 시인, 소설가 등 작가와 문인들의 창작 활동을 위한 전용 공간으로 건축되어,
수많은 문인과 작가들이 이곳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 오다.
2013년 5월 일반에 개방되어 지금은 누구나 예약을 통해 숙박을 할 수 있다.
47개의 객실, 문인홀 강당, 식당을 갖추고 있어 가족단위 여행과 휴식,
각종 단체의 세미나, 워크숍, MT 등의 행사에 적합한 공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객실(강방향)에서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북천과 설악 풍경이 환상적이다.
문인홀 강당 무대 뒤편이 투명한 유리벽으로 되어 있어 유리벽을 통해 보이는
우람한 소나무 모습 또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만해마을만의 특색이다.
로비와 복도에는 각종 문인과 작가 및 만해대상 수상자들의 휘호와 글을 담은 액자들이 걸려 있어
방문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으며, 로비에 앉아 책장에 꽂혀 있는 문학잡지와 책을 보며
잠시나마 힐링시간을 가질 수 있다. 숙소와 식당. 강당이 있는 건물이다
뺨의 도둑
나는 그녀의 분홍 뺨에 난 창을 열고 손을 넣어 자물쇠를 풀고 땅거미와 함께 들어가
가슴을 훔치고 심장을 훔치고 허벅지와 도톰한 아랫배를 훔치고 불두덩을 훔치고 간과 허파를 훔쳤다.
허나 날이 새는데도 너무 많이 훔치는 바람에 그만 다 지고 나올 수가 없었다
이번엔 그녀가 나의 붉은 뺨을 열고 들어왔다 봄비처럼 그녀의 손이 쓰윽 들어왔다
나는 두 다리가 모두 풀려 연못물이 되어 그녀의 뺨이나 비추며 고요히 고요히 파문을 기다렸다
낙화(洛花)
詩 萬海 韓龍雲(시 만해 한용운)
畵 瑞齋 宣學均(화 서재 선학균)
떨어진 꽃이 힘없이 大地(대지)의 품에 안길 때
애처로운 남은 香氣(향기)가 어대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가는 바람이 적은 풀과 속삭이는 곳으로 가는 줄을 안다.
떨어진 꽃이 굴러서 알지도 못하는 집의 울타리 새이로 들어갈 때에,
쇠잔한 붉은 빛이 어대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떨어진 꽃이 날려서 적은 언덕을 넘어갈 때에,
가엾은 그림자가 어대로 가는 줄을 나는 안다.
봄을 빼앗아 가는 惡魔(악마)의 발밑으로 사라지는 줄을 안다.복종(服從) 한용운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만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염부단금(閻浮檀金)
염부수(閻浮樹) 숲 속을 흐르는 강바닥에서 나는 사금(砂金)
적황색에 자줏빛을 띠고 있어서 가장 고귀한 황금으로 평가된다는 금
백담사 비경(百潭寺 祕境) 최인철
산(山) 그림자 길게 자리한
백담계곡 들어서면
신선이 지나간 흔적
체온 묻어 있어 뭉클하다
섬섬옥수 펼쳐진
천년 빼어난 비경은
손 내밀어 가는 발길 잡고
눈길 머물게 한다
백담사 비경에 묻혀
민족의 스승 만해선사(卍海禪師)도
티 없이 맑은 시어(詩語)로 영혼 구했나
감로수 한 잔 취기 오르는데
물 안개에 갈증 풀어본다
IQ 150 이상 문제
다음과 같은 구조의 감옥 안에 4명의 죄수가 갇혀있다.
벽을 사이에 두고 죄수 A, B, C, D 는 앞만 바라볼 수 있다.
교도관이 그림과 같이 죄수들에게 자신의 모자가 어떤 것인지 모르게 나누어 주었고,
자신이 쓰고 있는 모자의 색을 4명 중 단 한명이라도 맞추면 전원 석방해 준다고 하였다.
죄수들은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고, 뒤로 돌 수 없으며, 모자를 벗거나 바꾸거나 위치를 바꿀 수 없다.
단 흰색모자 2개, 검은색 모자 2개라는 사실만 죄수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렇다면 4명 중 자신의 모자색을 알 수 있는 사람은 단 1명뿐이다.
A, B, C, D의 죄수 중 어떤 죄수가 정답을 말 할 수 있는지? 물론 벽을 관통해 볼 수는 없다.
어느 죄수가 답을 맞힐 수 있을까?
정답: C
C: B와 나(C)의 모자 색깔이 같다면, D가 정답을 말했을텐데,
D가 정답을 말하지 못하고 있는걸 보니, 내 모자 색깔은 (B의 흰색과 다른) 검은색이다.
정답을 맞히기 까지의 과정
1. 일단 A,B 는 결코 정답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즉, 답을 맞출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것은 C,D 뿐이다.
2. D의 시점이 되어 생각해 보자.
검은색2개, 흰색2개라는 사전 정보가 있으며, 눈앞에는 검은색1개, 흰색1개의 모자가 보인다.
내 모자의 색깔은 검은색 또는 흰색 일 것이다. (답을 말할 수 없다)
3. C의 시점이 되어 생각해보자.
검은색2개, 흰색2개라는 사전 정보가 있으며, 눈앞에는 흰색1개의 모자가 보인다.
만약 내 모자도 흰색이라면, D가 자신의 모자 색깔이 검은색이라고 답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내 모자가 검은색이라면, D는 자신의 모자 색깔의 답을 맞출 수 없을 것이다.
즉, D가 정답을 말하지 못한다는 것은 나의 모자가 검은색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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