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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죽헌 율곡기념관(烏竹軒 栗谷紀念館)
    국내 나들이/기념관(記念館) 2017. 11. 26. 04:30

    오죽헌 율곡기념관(烏竹軒 栗谷紀念館)

     

    강릉 오죽헌 내 율곡기념관은 지하1층 지상1층 연면적 1,041규모로 건립되어

    전시관 360, 수장고 84의 시설을 갖추고 201210월 개관하였다.

    오죽헌을 소개하는 영상, 미디어 아트와 율곡이이와 신사임당과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 3139번길 24 (죽헌동)

     

     

     

     

     

    오죽헌(烏竹軒) 그 숨은 이야기

     

    신사임당(申師任堂)과 율곡 이이(栗谷 李珥)가 태어난 집

     

    오죽헌은 조선 초기에 병조참판을 지낸 최응현(崔應賢)의 집이였는데

    둘째 사위 이사온(李思溫)을 거쳐 이사온의 외동딸이자 사임당의 어머니인 용인 이씨의 소유가 되었다

    용인 이씨는 서울 사람 신명화(申命和)와 혼인하였다

    그러나 친정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강릉에 내려와 줄곧 오죽헌에 살았고 사임당도 외가인 오죽헌에서 태어나게 되었다

    사임당은 혼인한 후에 홀로 된 친정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한동안 오죽헌에서 지냈다

    그리고 몽룡실(夢龍室)에서 율곡 이이를 낳아 오죽헌은 우리 역사에 큰 궤적을 남긴 두 인물이 태어난 집이 된 것이다,

     

    용인 이씨는 생전에 다섯 딸에게 재산을 분배하면서 조상의 묘를 잘 돌보라는 조건으로

    오죽헌을 넷째 딸에게서 태어난 외손 권처균(權處均)에게 물려주었다

    외할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집 주위에 대나무가 많은 것을 보고 

    권처균은 자신의 호를 오죽헌이라 했는데 이것이 훗날 집 이름이 되었다

     

     

    오래된 우리나라 주거 건축

     

    오죽헌은 우리나라 주택 건물 가운데 그 역사가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다

    온돌방과 대청마루, 툇마루로 이루어진 정면 세칸, 측면 두 칸의 일자형 기와집으로

    공포가 새부리 모양을 한 익공양식(翼工樣式)으로 꾸며져 있다

    주심포양식(柱心包樣式)에서 익공양식으로 변해가는 건축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건물로 평가 받아

    1963 보물 제165호로 지정 되었다

     

     

     

    사임당의 태몽에 대한 일화

     

    사임당이 서른세 살 때 선녀가 동해 바다에서 살결이 백옥같이 흰 옥동자를 안고 나와서 

    품에 안겨주는 꿈을 꾸고 아이를 잉태하였다.

    그리고 검은 용이 바다로부터 날아와 침실 문머리에 서려있는 꿈을 꾼 다음날인

    1226 아기를 낳았다 그가 율곡 이이다.

     

     

     

    여성의 꿈을 그리다

    신사임당(申師任堂,1504~1551)

     

    조선 초기의 서화가로 호는 사임당(師任堂), 시임당(媤姙堂), 임사재(姙師齋)이다

    강릉 북평촌(北坪村), 지금의 오죽헌에서 신명화와 용인 이씨의 다섯 딸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이이가 선비행장(先妣行狀)’에서 어머니는 어렸을 때 경전을 통했고 글도 잘 지었으며 글씨도 잘 썼다,

    또한 바느질도 잘 하고 수놓기까지 정묘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중략)

    평소에 묵적이 뛰어났는데 7세 때 안견의 그림을 모방하여 산수도를 그린 것이 아주 절묘하다,

    또 포도를 그렸는데 세상에 시늉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기록할 만큼 재능이 뛰어 났다

     

    사임당은 산수, 영모(翎毛), 초충, 포도 등 다양한 소재의 그림뿐 아니라 글씨도 잘 썼으며 시문에도 능했다

    전하는 작품으로는 산수도, 초충도, 묵포도도, 묵매도, 노연도(鷺蓮圖), 노안도(蘆雁圖), 자리도(紫鯉圖) 등의 그림과

    초서, 전서와 같은 글씨, 그리고 친정어머니를 그리는 내용의 유대관령망친정(踰大關嶺望親庭), 사친(思親) 등의 한시가 있다

     

    사임당의 재능은 그 자녀들에게 이어져, 셋째 아들 이이(李珥)는 조선 최고의 유학자가 되었고

    맏딸 매창은 조선 중기의 묵매 양식을 잘 보여주는 묵매도를 남겼으며

    막내아들 이우(李瑀)는 활달한 필치를 보여주는 초서와 그림을 남겼다.

     

     

     

    수박과 석죽화 - 신사임당(右)

     

    선염(渲染)으로 화면을 가르고 중앙에 넝쿨을 뻗으며 익어가는 수박을 그렸다.

    무게를 견디지 못한 듯 수박 아래쪽에는 바랭이가 짓눌려 있다.

    수박 위로 석죽화(패랭이꽃)가 부챗살 펴지듯 피어 있으며, 벌과 나비가 꽃을 향해 몰려들고 있다.

    땅바닥에는 사마귀가 기어가고 있다.

     

     

    꽈리와 잠자리 - 신사임당(左)

     

    아래쪽에서 선염(渲染)으로 화면을 가르고 가운데 부분에 이끼점(苔點, 태점)을 찍어 땅바닥을 표현하였다.

    이끼점 위로 빨간 열매를 매단 꽈리와 꽃이 활짝 핀 쑥부쟁이를 그렸으며,

    벌 나비 고추잠자리 등의 날벌레와 땅바닥에 내려 앉은 여치를 그렸다.

    함께 장첩된 수박과 석죽화에 비해 공간 구성이 여유로운 편이다.

     

     

     

     

    물새

     

    왼쪽 아래에서 오른쪽 위로 뻗은 갈대 잎은 마른 붓질로 그리고, 그 옆의 새는 윤묵(潤墨)으로 그렸다.

    몸을 오른쪽으로 향한 채 머리만 왼쪽으로 돌리고 있는 새의 눈, 부리, 날개, 다리는 짙은 먹빛으로 그렸다.

    평면적으로 표현한 갈대 잎, 평행선으로 묘사된 물결, 이끼점(苔點)을 반복하여 표현한 물풀 등

    표현은 단조롭지만 서정성이 짙게 묻어난다.

     

    물소

     

    살찐 소가 자드락에서 몸을 굽혀 물을 먹고 있는 자세를 포착하였다.

    이런 종류의 그림은 조선 중기 김시(金褆)와 이경윤(李慶胤)의 집안에 의해 주로 그려졌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몸, X자형 콧구멍, 흰 테를 두른 듯한 눈, 짙은 먹빛으로 처리한 발굽 등

    소를 표현하는데 있어 몇 가지 양식화된 특징을 보인다.

     

     

     

    전서(篆書) -  신사임당

     

    비단 바탕에 먹으로 쓴 이 서체는 고문(古文)이라 불리는 옛 전서체로 필획이 구불구불한 것이 특징이다

    사임당의 전서로는 보(), (), (), (), (), (), () 자가 전한다,

    어떤 시문의 일부로 추정이 된다.

     

     

     

    초서(草書) - 신사임당

     

    중국 북송의 학자 소옹(邵雍, 1011~1077)의 시를 초서로 쓴 것이다.

     

    ...都是春 康節先生詩(도시춘 강절선생시)

    平生風雨時 每言名節難 窮冬百草(평생풍우시 매언명절난 궁동백초)...

    모두가 봄이로구나. 소강절 선생의 시

    평생에 비바람이 몰아칠 때 늘 말하였지

    명예와 절개를 지키기 어렵다고.

    겨울이 다하여 백초가...

     

     

     

    율곡전서(栗谷全書) - 1749

     

    1611년 발간된 "율곡집"에 누락된 것이 많아 1682년 박세채(朴世采)가 빠진 것들을 모아

    속집 4, 별집 4, 외집 2권을 편찬 간행하였다

    그 후 율곡의 시집, 문집, 속집, 외집, 별집을 한데 합하고 "성학집요", "격몽요걸" 등을 보태

    1749"율곡전서"라는 이름을 붙여 간행하였다.

     

     

     

    율곡선생집(栗谷先生集)

     

    1611년 발간된 "율곡집"  누락된 것이 많아 1682년 박세채(朴世采)가 빠진 것들을 모아

    속집 4, 별집 4, 외집 2권을 편찬 간행하였다.

    이 책은 "율곡선생별집", "율곡선생연보" 로 구분되며 "태극문답", "박순경록", "습유잡록", "연보" 등이 실려 있다.

     

     

     

    율곡선생연보(栗谷先生年譜)

     

    송시열의 "서문", "율곡이이선생 세계지도(栗谷李珥先生 世系之圖)", "율곡선생연보" 등이 실려 있다. 목판본이다.

     

     

     

    벼루(, ) - 강원도 유형문화제 제10

     

    이이가 어렸을 때 사용하던 벼루다.

    1788년 정조대왕이 친히 보고, 이이를 찬양한 글을 지어 벼루 뒷면에 새기게 하였다.

     

    涵婺池 象孔石 普厥施 龍歸洞 雲潑墨 文在玆(함무지 상공석 보궐시 룡귀동 운발묵 문재자)

    무원, 주자의 못에 적셔내어

    공자의 도를 본받아 널리 베풂이여

    율곡은 동천으로 돌아갔건만

    명성은 먹에 뿌려 학문은 여기에 남았도다.

     

     

    이이 수고본 격몽요결(李珥 手稿本 擊蒙要訣) - 조선(1577), 보물 제602

     

    이이가 초학자(初學者)들에게 학문의 방향을 제시해 주기 위하여 저술한 유학 입문서다

    "입지(立志)", "혁구습(革舊習)", "지신(持身)", "독서(讀書)", "사친(事親)", "상제(喪制)",

    "제례(祭禮)", "거가(居家)", "접인(接人)", "처세(處世)"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이가 직접 쓴 것으로 그의 친필을 감정하는데 표본이 된다.

     

     

     

    율곡친필 암석각자(栗谷親筆 巖石刻字)

     

    이이가 자신의 생애를 물고기나 새처럼 때 묻지 않은 자연에 비유하였다.

     

    性同鱗羽 愛止山壑(성동인우 애지산학)

    성은 물고기나 새와 같아 사랑은 산과 골짜기에 머무르리

     

     

     

    오만 원권

     

    오만 원권에는 신사임당 초상, 묵포도도와 자수초충도,월매도와 풍죽도가 디자인 돼 있다.

    묵포도도의 밑그림으로 옅게 깔린 것이 자수초중도 중 가지 그림이다.

    월매도와 풍죽도는 조선중기 매화 그림과 대나무 그림에 뛰어났던 어몽룡(魚夢龍)과 이정(李霆)의 작품이다.

     

     

     

    오천 원권

     

    이이는 1972년에 발행한 오천 원권의 화폐 인물로 선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통용되는 오천 원권에는 이이 초상, 오죽헌, 오죽, 사임당이 그림 초충도(수박. 맨드라미)가 디자인 돼 있다.

    수박은 다산, 맨드라미는 벼슬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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