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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임금이 승하한 유서깊은 건물, 덕수궁 석어당(德壽宮 昔御堂)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7. 5. 21. 19:30
선조임금이 승하한 유서깊은 건물, 덕수궁 석어당(德壽宮 昔御堂)
덕수궁의 중화전 뒤 동북쪽 방향에 있는 1층은 정면 8칸, 측면 3칸, 2층은 정면 6칸, 측면 1칸의 굴도리집 목조 건물이다.
임진왜란으로 의주까지 피난 갔던 선조(宣祖)가 환도해 1593년부터 임시 어소(時御所,시어소)로 사용한 건물이다.
선조는 임진왜란으로 파괴된 경복궁, 창덕궁 등을 중건하지 못한 채 이 곳에서 16년을 지내다 1608년(재위 41) 승하했다.
훗날 임금들은 임진왜란을 상기하며 이곳에서 선조를 추모했다.
석어당은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 김씨(仁穆王后 金氏)가 10년간 감금생활을 했던 곳이다.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후 자신의 왕위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형제들을 차레로 제거하고 인목대비를 폐위시켜 경운궁에 유폐했다.
이때 경운궁은 서궁으로 불렸다. 서궁유폐는 결국 반정을 일으키는 구실이 되었다.
인조반정에 성공한 능양군(綾陽君, 인조)은 경운궁으로 인목대비를 찾아가 정통성을 인정받고 여기서 즉위한다.
유폐의 한이 맺혀있던 인목대비는 석어당 앞마당에 광해군을 꿇어 앉히고
36조의 죄를 물은후 능양군에게 옥새(玉璽)를 전하였다.
원래 건물은 1904년 덕수궁 대화재로 소실됐고, 지금 건물은 같은 해에 중건한 것이다.덕수궁에 있는 유일한 2층 목조 건물로, 1층에는 방과 대청이 있고, 2층은 칸막이 없이 마루를 깔았다.
궁궐 안 건물임에도 단청을 하지 않았다.
‘석어(昔御)’는 ‘옛날에 임어(臨御)하였다’, 즉 옛날 임금이 머물렀다는 의미다.
옛날 임금은 임진왜란으로 이 곳에 처음 머물렀던 선조를 말한다.
석어당 주련(昔御堂 柱聯)
海屋籌添壽八百(해옥주첨수일백)
해옥(海屋)에 산가지 더하니 수명은 팔백 세요,瑤池桃熟歲三千(요지도숙세삼천)
요지(瑤池)에 복숭아 익으니 나이는 삼천 년일세.석어당에 거처하는 임금의 장수를 기원한 시(詩)다.
‘해옥주첨(海屋籌添)’은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바닷가 신선이 바다가 뽕나무 밭이 될 때마다 나뭇가지를 하나씩 놓았는데,
세월이 지나 그 나뭇가지가 열 칸의 집에 가득 채울 때까지 살았다고 전한다.
‘요지(瑤池)’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곤륜산(崑崙山)의 연못 이름이다.
불사약(不死藥)을 가진 신녀(神女) 서왕모(西王母)가 이 연못에 살며 복숭아를 심었는데,
열매가 익으려면 3천년이 걸린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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