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덕수궁(德壽宮)의 상징스런 건물, 준명당(浚眀堂)과 즉조당(卽阼堂)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7. 5. 24. 05:30

    덕수궁(德壽宮)의 상징스런 건물, 준명당(浚眀堂)과 즉조당(卽阼堂)

     

     

    덕수궁(德壽宮) 준명당(浚眀堂)과 즉조당(卽阼堂)

     

     

     

     

    덕수궁 준명당(德壽宮 浚眀堂)

     

    덕수궁 준명당(德壽宮 浚眀堂)은 고종이 러시아공관(俄館)으로부터 경운궁(慶雲宮, 현 덕수궁)으로

    거처를 옮기기 위하여 많은 건물을 중건하였던 1897년에 새로 지었다.

    내전(內殿)의 하나로 외국사신을 접견하던 곳이다.

    건물은 정면6, 측면4칸의 팔작지붕건물로 서쪽과 북쪽으로 가퇴(假退)를 덧달아 내놓았으며,

    뒤쪽에 온돌방 4칸을 덧붙여 전체적으로 자모양 평면을 이루고 있다.

    왼쪽으로부터 2·3·4번째 칸은 대청으로 통하는 현관으로 개방하였으며,

    대청은 침전에서 흔히 쓰는 3칸대청이 아닌 2칸 대청이다.

    대청 오른쪽에 온돌방을 두고 다시 그 옆 한 칸은 누마루로 구성하여

    즉조당(卽阼堂)의 누마루와 구성상 대칭을 이루고 있다.

    경효전(景孝殿)과 흠문각(欽文閣)에 모셔져 있던 고종과 순종의 어진(御眞)을 화재로 준명전(濬明殿)

    그 서행각(西行閣)에 옮겼다는 기록으로 보아 준명당은 불타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해왔다.

    그러나 이는 준명전과 준명당을 같은 건물로 착각한 데서 온 잘못된 판단이며,

    경운궁중건도감의궤(慶運宮重建都監儀軌)를 보면 현재의 준명당은 1904년에 중건된 것임이 분명하다.

    후원에는 나지막한 언덕이 있고 거기에 벽돌로 쌓아 만든 굴뚝이 남아 있어

    당시의 후원 조경방법을 일부나마 전해 주고 있다.

     

     

     

    덕수궁 즉조당(德壽宮 卽阼堂)

     

    덕수궁 즉조당(德壽宮 卽阼堂)은 임진왜란으로 의주까지 피난 갔던 선조가

    난이 수습된 뒤에 돌아와 시어소(時御所)로 사용하였던 건물로서,

    1623(인조 즉위년)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가 즉위한 뒤부터 즉조당(卽阼堂)이라 불렀다.

    현재 즉조당에는 고종이 손수 쓴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1897년 고종이 경운궁(慶雲宮, 현 덕수궁)으로 옮겨온 뒤 정전(正殿)으로 사용되었고,

    한때 태극전(太極殿중화전(中和殿) 등으로 이름이 바뀌기도 하였다.

    1902년 정전인 중화전이 건립된 뒤부터는 다시 즉조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고종이 상왕이 된 뒤 거처하던 궁궐로서 궁명(宮名)을 덕수궁으로 바꾼 뒤인

    1907년부터 1911년까지는 후비인 엄비(嚴妃)가 이곳에 거처하였다.

    건물의 위치는 임금이 거처하는 궁전인 대내(大內) 중앙 북쪽 경사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중화전의 바로 뒤에 높은 돌기단을 쌓고 세웠다.

    정면을 기준으로 평면구성을 보면 준명당(浚明堂)과 복도 및 난간으로 연결되어 복합적인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건물의 오른쪽과 뒤쪽에 각각 가퇴(假退)를 덧달아 내놓아 평면을 확장시키는 수법을 쓰고,

    맨 오른쪽 한 칸은 한 단 높게 구성된 누마루이며, 오른쪽 두 칸은 방과 방에 부속된 퇴이고,

    그 옆은 대청과 개방된 현관, 맨 왼쪽 한 칸은 방이다.

    한편, 현관 앞 처마 밑에는 즉조당(卽阼堂)’, 대청 앞 기둥 위쪽에는 경운궁(慶運宮)’이라고 쓴 현판을 걸어놓았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7,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기단은 긴 댓돌을 바른켜쌓기로 쌓은 높은 기단으로,

    윗면에는 네모 전돌을 깔았으며 대청에 맞추어 기단 앞쪽에 3줄의 계단을 배열하였다.

    이 건물의 전체적인 구성은 복도와 난간으로 연결된 준명당과 함께 계획된 것이며,

    후원에 남아 있는 굴뚝은 주변의 풍치를 더하여 주고 있다.

     

     

     

     

    준명당 편액(浚明堂 扁額)

     

    준명당의 한자는 '깊을 준()' '밝을 명()'이므로 직역하면 깊고 밝은 집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편액의 명()자는 日月이 아닌  目月로 씌여 있다.

    원래 날 일(,)과 달 월()이 합쳐진 눈목()한자라고 한다.
    덕수궁 준명당 편액판의 ''자가 ''이 아닌 '+'인 것은 단순한 오자가 아닌

     '눈을 크게 뜨고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뜻이라는 해석도 있다.

     

     

     

     

     

     

     

     

     

     

    아름다운 굴뚝 연가(煙家)

     

    준명당과 즉조당 후원에는 벽돌로 쌓아 연가(煙家)얹어 장식한 아름다운 굴뚝이 있다.

    연가(煙家) : 한옥의 부속구조물인 굴뚝 머리 위에 본체와 걸맞게 기와를 얹은 집 모양의 굴뚝)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