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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 수정전(景福宮 修政殿)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7. 5. 31. 21:11

    경복궁 수정전(景福宮 修政殿)

     

      경복궁 근정전 서쪽에 있는 수정전(修政殿)  넓은 월대(月臺) 위에 세워진 목조건축물이다.

       정면 10, 측면 4칸의 익공식(翼工式) 팔작 기와지붕으로 지붕 마루에는 취두(鷲頭용두(龍頭잡상(雜像)이 얹혀 있다.
       세종 때 집현전(集賢殿)으로 사용하였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867(고종 4)에 재건하였다.

       재건 당시에는 주변에 약 200칸의 행각(行閣)과 전각(殿閣)이 있었는데, 1910년 이후 일본인에 의해 모두 헐렸다.

       수정전은 국왕이 일상적으로 기거하는 곳, 혹은 편전 등의 용도로 쓰였던 건물이다.

    세종 때는 집현전을 설치하여 세종 28(1446) 9월 이곳에서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되기도 한다.
       세조 때는 예문관(藝文館)으로도 쓰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고종 4(1867) 재건된 후

    군국기무소(軍國機務所)   내각(內閣) 청사로 쓰이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일제 때에는 박람회장으로 쓰이는 수모를 겪다가, 196610월 이곳에

       현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신인 '민속관(民俗館)'을 우리 손으로 개관하기도 했었다.

       현재 수정전 건물과 월대만 남아 있지만, 1908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북궐도형>에 의하면

    수정전 주변이  행각으로 둘러 싸여 있었고, 수정전 건물의 좌우측으로 다시 복도를 내어

    수정전 주변 행각과 바로 연결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수정전 주위 행각은 사정전 천추전 방향의 행각과 복도로 연결했음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제시기에 들어와 일제는 수정전 주위의 행각을 모두 철거하고 만다.
       현재는 수정전 건물 좌우측에는 당시에 복도를 연결했던 흔적만 남아 있다.

    한편 수정전은 건물의 간수(間數)로 따졌을 때,  현존하는 경복궁 내 전각 중 규모가 큰 건물에 해당한다.

    '수정(修政)'은 정사를 잘 수행함을 의미하며, 현판의 글씨는 중건 당시 도승지까지 오른 조선 후기의 문신인 조석원이 썼다.

     

     

     

     

     

     

     

    노둣돌

     

    월대의 중앙계단과 동쪽계단 사이틈에 사각의 돌이 놓여있다.

    노둣돌은 말()에서 내려오기 쉽게한 용도로 쓰였으며, 입궐하는 관리들을 위한 노둣돌은 대개 궐밖에 두었다고 한다.

    현재 창덕궁 낙선재, 연경당에서도 노둣돌을 확인할 수 있다.

     

     

     

     

     

    장영실(蔣英實) 선생이 자격루(自擊漏)를 세웠던 곳


    조선 세종(1418~1450) 때의 관노 출신의 걸출한 과학자 장영실(?~1442) 선생이

    자격루(自擊漏, 자동 시보장치가 붙은 궁중표준 물시계)를 발명하여 설치했던 보루각(報漏閣)의 옛터이다.

    장영실 선생은 세계 최초의 측우기(測雨器, 1441)를 비롯하여 간의(簡儀, 천체관측기), 혼천의(渾天儀, 천문시계),

    규표(圭表, 태양고도측정기) 등을 만들어 조선시대 과학기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향상시킨 위대한 과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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