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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최초의 성당 북수동성당(北水洞聖堂)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7. 8. 19. 05:30
수원 최초의 성당 북수동성당(北水洞聖堂)
수원 화성의 중심부인 장안문 인근에 있는 북수동성당(구 수원성당)은 수원 시내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본당으로
과거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하다 치명한 중영(中營, 摠理營)인 포도청 터와
그리고 수원 최대의 부잣집들이 모였던 팔부자의 집터와 일부 겹쳐지는 공간으로
2000년 천주교 수원성지로 선포한 역사와 종교의 숨결이 깃든 근대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북수동성당은 1890년 왕림성당의 수원공소로 출발해 1904년부터는 남수리 황학정 정자와그 대지 800평을 사들여 공소 강당과 화양학교를 개설하여, 남녀 아동 200여 명을 교육하다가
1906년 북수리(현 북수동 성당 자리)의 세칭 팔부자 집이라 불리운 기와집 두 채와 행랑채를 매수하여
본당 창설 기지를 삼아 1923년 11월 23일 수원성당 본당으로 독립한다.
1932년 11월 13일 수원 최초의 고딕식 성당이며 근대식 건축물인 성당을 건립하였다.옛 성당은 1978년 철거되고 1979년 4월 현재의 성당이 건립되었다.
1930년 북수동성당 4대 주임으로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심응영-폴리(Polly, 沈應榮, 1884~1950, 데시데라토) 신부가부임하고 나서부터 재임 18년간 수원의 천주교회는 크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는데
그는 6.25 때 몸을 피하지 않고 의연히 성당 안에서 기도하던 중 인민군에게 끌려가 순교하였다.
심 신부는 수원 화성의 거룩한 순교를 기념하고 미신을 타파하기 위해 일제강점기인 1932년 파리외방전교회의 원조와그의 모친이 삯바느질로 모아서 보내 준 돈으로 기와집 성당을 헐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고용하여
고딕식 성당(75평)을 신축하였는데 이는 수원 최초의 고딕식 성당이며 근대식 건축물이다.
1934년 학술 강습회 소화학원을 개설하였고, 해방 후인 1946년에는 소화국민학교를 인가받아성당안에 개교하였는데 수원시민들이 가장 보내고 싶은 사립학교였다.
1976년 구식의 석조 사제관을 헐고 다목적 사제관을 다시 건립하고, 1979년 4월 5일에는 40년 묵은옛 고딕 성당을 철거하고 연건평 236평의 주교관(主敎冠) 모양으로 된 현재의 새 성당을 준공 축성하였다.
현재 성지 마당에는 정약용이 설계한 봉화대 보양의 묵주 알고 버드나무 형태로 성곽 둘레를 축소한로사리오의 화단이 조성되어 우리 꽃, 야생화 1천여 종이 심어진 방화수주길을 이루고 있다.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 842(북수동) 천주교 북수동성당
북수동성당이 수원성지가 된 배경
정조대왕이 49세에 갑자기 의문사하자 이듬해인 1801년(신유박해)부터 전국적으로 천주교 박해가 시작된다.
수원 지역에는 신유박해를 계기로 서울, 광주, 내포 등지로부터 신자들이 숨어들어 공동체를 형성하자한강 이남을 비롯하여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체포된 천주교인들은 수원유수부(水原留守府) 관할하던
정조의 정치 무대였던 수원화성으로 압송되어 갖은 고문과 박해를 겪는다.
수원에서의 순교는 병인박해(1866~1871) 때 집중되는데 수원 화성에서 취조와 고문을 당한 후옥사, 장하치명, 백지사형, 참수형, 미루나무에 교수형, 아사형, 장살형 등 다양한 형태로 순교를 당한다.
파악된 기록에 의하면 수원에서 처형된 순교자는 83위이며 대부분이 병인박해 당시 순교한 것으로 밝혀졌고
이 외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고 기록 없이 순교한 분들이 수천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순교지로 밝혀진 곳은 ‘화성행궁’, ‘화청관 이아’, ‘중영’, ‘동남각루’, ‘남암문’, ‘형옥’, ‘팔달문 밖 장터’와 ‘장안문 밖 장터’이며그 외에도 ‘종로 사거리’, ‘화령전과 화서문 사이 사형터’, ‘동장대’, ‘토포청’, ‘방화수류정’, ‘화홍문’ 등도
순교지로 추정돼 수원 화성 성곽 전체나 다름없다.
수원성지에서는 박해 시대에 수원 화성에서 순교한 78분(『치명일기』)과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순교 정신을 기리고 있는데특별히 그 가운데 지 다두를 비롯한 수원 성지 순교자 8분의 시복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한편 수원 화성(華城)은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의 명을 받아 다산 정약용(요한) 선생이 설계, 시공한 성으로1794년(정조 18년) 1월 착공하여 2년 9개월 뒤인 1796년(정조 20년) 9월에 완성된 둘레 총길이 5.743m의 성곽이다.
화성은 다산 선생의 천주교 신앙을 뿌리로 하여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실용적인 구조로 설계되었는데,성벽은 외측만 쌓고 내측은 자연 지세를 이용해 흙을 돋우어 메운 축성술뿐 아니라
성곽 곳곳에 천주교를 상징하는 십자가 형태 양식이 가미되는 등 신앙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룬 수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다산 선생이 수원8경 중의 하나인 화홍문과 그 위쪽에 방화수류정을 세웠는데화홍문은 아름다운 무지개 문이란 뜻으로 하느님께서 노아와 맺은 구약의 계약을 상징하고,
화홍문을 떠받치고 있는 7개의 수문은 예수님께서 인간과 맺은 신약의 계약인 7성사를 상징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방화수류정은 “꽃을 쫓고 버드나무 길을 따라가는 아름다운 정자”란 의미이다.서쪽 벽에 십자가 문양이 86개(기둥 때문에 5개는 반쪽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데,
당시 천주학이 서양의 학문인 서학이라 하여 서쪽 벽에 새겨 넣었고,
해가 져 어두워질 무렵에 십자가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이 나도록 만들었다.
이는 세상 어둠이 드리우는 곳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광명의 빛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하겠다.
지붕도 8각을 기본으로 남북에 합각을 더 세워 십자(十)형으로 되어 있고
방화수류정 안으로 올라서서 위를 바라보면 천정을 받치고 있는 서까래들이 십자가형으로 되어 있다.
이에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원 화성은 2000년 대희년에수원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에 의해 천주교 성지로 선포됐다.
수원화성의 박해지는 수원성(화성) 곳곳에 거쳐 산재해 있다.
- 화성행궁 : 정조대왕이 부친 사도세자의 융능참배 행차시 처소. 양반 교인을 심문한 곳
- 이아(화청관) : 지방행정업무를 담당했던 관아. 중인이하 일반인, 천민들이 심문을 받던 곳
- 중영(토포청) : 지방포도청, 치안 및 검찰청. 비공개적으로 백지사형과 교수형이 집행된 곳
- 동남각루 : 동남쪽의 보초경계지. 천주교인을 참수형에 처해 몸을 성밖으로 내던진 곳
- 남암문(시구문) : 화성 남쪽 팔달문 동편의 비상문. 참수된 천주교인 목을 매달아 놓았던 곳
- 형옥(초혹) : 6칸으로 된 형무소 감옥. 현재도 옥거리라 부름. 비공개 아사형이 집행된 곳
- 팔달문(남문) 밖 장터 :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천주교인의 장살형(몽둥이)이 집행된 곳
- 장안문(북문) 박 장터 :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천주교인의 장살형(몽둥이)이 집행된 곳
- 사형터 : 화령전과 화서문 사이의 사형터. 천주교신자들도 일반죄수들과 함께 처형된 곳으로 추정됨
- 종로사거리 : 행궁앞 광장사거리. 왕래가 빈번한 종로에서 교인들이 공개적으로 처형된 곳으로 추정됨
- 동장대 : 서장대와 함께 군사훈련장. 군사 제식행사 중에 교인들이 공개적으로 처형된 곳으로 추정됨
-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 다산 정약용(요한)의 깊은 신심표출. 7성사수문, 십자가지붕, 서벽에 십자가 문양 새김
출처 : '한국 천주교 성지순례' - 한국천주교주교회의著 외수원순교성지(水原殉敎聖地) - 주교관(主敎冠) 모양의 북수동성당
수원시 팔달구 북수동 316번지 천주교 수원교구 북수동성당은 수원의 순교성지(殉敎聖地)이다.
수원지방의 순교자들은 천주교 제8대 조선교구장인 뮈델(Journal de Mgr. Mutel:閔德孝)주교의 "치명일기"에 의하면
33명 이상이고, 병인박해(丙寅迫害:1866년,고종 3년) 순교자 증언록에 나오는 순교자만 해도 64명이다.
이들 중 중복되지 않고 순수하게 기록에 남은 병인박해 순교자가 77명,
그리고 1817년 샘골의 순교자 이용빈을 합쳐서 최대 78명이다.
순교 형태도 옥사, 장하치명, 백지사, 참수, 교수형 등 다양하다.
2000년 대희년에 수원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는 수원 화성의 중심인
북수동 성당(구 수원 성당)을 수원 화성에서 주님을 위해 목숨을 바친 78위의 순교자들과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성지로 선포하였다.
북수동 성당은 수원 시내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본당이며,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하다 치명한 중영(中營, 摠理營)과 일부 겹쳐진다.
수원 지역에는 1801년 이전에 복음의 씨가 뿌려져 1801년 신유박해를 계기로
서울, 광주, 내포 등지로부터 신자들이 숨어들어 공동체를 형성하였고,
병인박해 때 집중적으로 순교자를 배출하였다.
수원의 순교지는 북수동 성당 자리가 포함된 중영, 이아(貳衙, 화청관), 감옥, 동남각루,
남암문, 팔달문(남문) 밖 장터, 장안문(북문) 밖 장터 등 7~8군데로 확인되고 있고
그 외에도 사형터(화령전과 화서문 사이), 종로 사거리,
동장대(군사 훈련장)에서도 공개 처형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04년부터는 남수리 황학정 정자와 그 대지 800평을 사들여 공소 강당과 화양학교를 개설하여,
남녀 아동 200여 명을 교육하다가 1906년 북수리(현 북수동 성당 자리)의
세칭 팔부자집이라 불리운 기와집 두 채와 행랑채를 매수하여 본당 창설 기지를 삼았다.
1930년 폴리(Polly, 沈應榮, 1884~1950, 데시데라토) 신부가 부임하고 나서부터재임 18년간 수원의 천주교회는 크게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1933년에 심 신부는 파리외방전교회의 원조와 그의 모친이 삯바느질로 모아서 보내 준 돈으로
기와집 성당을 헐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고용하여 고딕식 성당(75평)을 신축하였다.
1934년 학술 강습회 소화학원을 개설하였고, 해방 후 1946년 소화국민학교로 인가를 받아 개교하였다.1976년 구식의 석조 사제관을 헐고 다목적 사제관을 다시 건립하고,
1979년 4월 5일에는 40년 묵은 옛 고딕 성당을 철거하고 연건평 236평의
주교관(主敎冠) 모양으로 된 새 성당을 준공 축성하였다.
토비아의 길동무 라파엘 대천사
가브리엘 대천사의 구세주 탄생예고
심데시데라또신부 기념비
하느님의 종, 심 데시데라또(심응영, 沈應榮, 1884~1950) 폴리(Polly) 신부는
북수동성당(구 수원 성당)의 제4대 주임신부(재임기간 1931. 5 ~ 1948. 8)로 수원 최초의 근대 건물인
고딕 양식의 옛 수원 성당을 건립했고, 6.25 때 대전에서 성당을 지키다가 인민군에 의해 피살되어 순교했다.
수원성지 돌형구
이 돌(가로 84cm×세로 68cm×폭 24cm)는 수원화성 안의 골동품 가게에서 발견되었는데,
정조대왕 사후 천주교 대박해가 시작되면서 수원화성 안으로 연행된 천주교인들을 심문했던 돌형구이다.
돌형구
이 돌(70cm×50cm×51cm)은 정조대왕 사후 천주교 대박해가 시작되면서
천주교인들 중 평민이하 천민들을 심문했던 이아(貳衙, 화청관)터에서 발견된 형구이다.
뒷면 그림의 구멍이 크게 뚫린 쪽에 천주교인들의 목을 놓고 밧줄을 목에 건 다음,
앞면 그림의 구멍이 작게 뚫린 쪽에서 밧줄을 잡아 당긴 것으로 보인다.
수원성지 돌형구
이 돌(가로 61cm×세로 42cm×폭 27cm)는 수원화성 근교 개인집 철거 때 발견되었는데,
정조대왕 사후 천주교 대박해 당시 수원화성에서 천주교인들을 심문할 때 사용되었다가
그 이후 개인집의 모퉁이 돌로 쓰인 것으로 보인다.
구멍이 크게 뚫린 앞 쪽에 천주교인들의 목을 놓고 밧줄을 목에 건 다음,
구멍이 작게 뚫린 뒷쪽에서 밧줄을 잡아 당겨 목을 조이는 형구이다.
수원화성 로사리오의 길
순교자들의 모후이신 성모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다산 정약용(요한)선생께서 설계하신 수원화성 봉화대 형태를 응용,
둘레 5,743m의 세계문화유산 화성 순교지 300분의 1 축소형의 둘레 191m 길이로
자연친화적인 침목을 활용하여 봉주로사리오의 길을 세움.
봉주의 아래쪽에는 형구와 성체를 상징하는 홀을 뚫고 수원화성의 순교와
기쁜소식을 희망의 연기로 만방에 전하는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표현함.
국내 엄정석을 봉주석으로 사용하고 백색과 적색 사철장미를 심고 수중용 완전방수 조명기구를 설치함.
2007. 6. 24
수원대리구장 최재용(바르톨로메오) 신부 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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