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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의 못자리, '여사울성지'
    국내 나들이/천주교(天主敎) 2018. 1. 4. 05:30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의 못자리, '여사울성지'

     

     

     

     

    내포(內浦)의 사도(使徒) 이존창. 루이 공사가 유적비(遺蹟碑)

     

     

     

     

    내포천주교복음첫터

     

    내포사도 순교자 이존창 생가지(內浦使徒 殉敎者 李存昌 生家址)

    여사울 성지(聖地)

     

     

     

    여사울 성지 기도문

     

    이 자리에서 내포 구원을 시작하신

    하느님은 찬미를 받으소서

     

    이 자리를 내포 복음화 샘으로 삼으신

    예수 그리스도님은 찬양 받으소서

     

    이 자리에서 내포 순교자 신앙을 키워내신

    성령님은 찬송 받으소서

     

    주님, 어둠과 유혹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저희도 목숨 바쳐 복음을 증거하게 하소서

    우리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성 홍병주 베드로와 홍영주 바오로님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와 김정득 베드로님

    복자 홍낙민 루카와 홍재명 프로타시오님

    복자 강완숙 골롬바와 홍필주 필립보님

    복자 김사집 프란치스코와 강희섭 프란치스코님

    복자 심조이 바르바라와 순교자 이존창 루도비코님

    여사울과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이여

     

     

     

     

     

    십자가의 길 14

     

     

     

     

     

     

     

     

     

     

     

     

     

     

     

     

     

     

     

     

     

     

     

     

     

    여사울성지 충청남도 기념물 제177

     

    여사울 성지는 한국 천주교회의 못자리이며 충청도에서 최초로 복음이 전해진 곳이다.

    내포의 사도라 불리는 이존창(1752~1801) 루도비꼬 곤자가(Louis de Gonzague)의 생가터로 알려져 있는 여사울은

    내포 천주교회의 심장이자, 신앙의 고향이며 천주교회 역사 안에서 순교자의 못자리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의미가 있다.

    내포(內浦)라 함은 충남 아산에서 태안까지의 평야지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충남 중서부 지역의 총칭으로 사용된다.

    이곳은 한국 천주교의 요람으로 신유(1801), 기해(1839), 병오(1846), 병인(1866)

    100여년에 걸친 4대 박해를 거치면서도 이 지역 신자들은 전국에 흩어져 복음을 전파한 것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여러 박해를 겪으면서 홍병주 베드로, 홍영주 바오로 두 분의 성인과

    두 분의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 김희성 프란치스코 등 많은 순교자를 탄생시킨 순교자의 못자리이다.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여사울길 22 (신종리) 여사울성지

     

    이존창(李存昌, 1752~1801)

    이존창은 서울에서 한국천주교 창설멤버였던 권일신(權日身) 신부에게 교리를 배웠으며,

    1786년 세례를 받고 평신도 사제직이라고 할 수 있는 가성직(假聖職) 신부로 임명됐다.

    이후 고향(예산)에 내려와 김대건(1821~1846)의 종조부 김종현, 조부 김택현을 비롯해 여사울 지역에 복음을 전했다.

    최양업(1821~1861) 신부 집안과도 혈맥관계여서 두 집안 뿐 아니라 풍산홍씨 집성촌인 여사울 지역에 활발히 복음을 전했다.

    1850년대 당시 한국 신자들은 대부분 이존창이 입교시킨 사람들의 후손들이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그의 전교상의 공헌은 지대하다.

    여사울에서는 성인 2, 복자 9, 순교자 12위가 나왔는데, 성인 반열에 오른 홍병주·영주 형제 등이 이존창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존창은 1791년 신해박해 때 모진 고문과 매질에 배교했으나, 다블뤼 주교는 루도비코는 1791년에 배교하긴 했지만,

    다시 열심히 신앙을 실천하고 새로 예비 신자의 수를 늘리는 데 힘썼다고 묘사하며 한순간의 실수를 너그러이 인정해줬다.

    이후 전교에 힘쓰다 1795년 다시 체포돼 공주감영에서 옥살이 하던 중 1801년 공주 황새바위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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