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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지공원(熟知公園)과 숙지산(熟知山)
    수원사랑/숙지산(熟知山) 2018. 2. 3. 04:30

    숙지공원(熟知公園)과 숙지산(熟知山)

     

     

     

     

     

     

     

     

     

     

     

     

     

     

     

     

     

     

     

     

     

     

     

     

     

     

     

     

     

     

     

     

     

     

     

     

     

     

     

     

     

     

     

     

     

     

     

     

     

     

     

     

     

    숙지산 정상

     

    화성축성시 처음 고유제를 지냈던 곳, 숙지산(熟知山

    숙지산은 해발 123m의 야트막한 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위해 찾는 도심속의 휴식처이다.

    숙지산은 조선 정조 때에는 행정구역이 공석면(空石面)이었는데,

    숙지(熟知)의 뜻은 신령이 (돌을) 숙지하고 있다는 말이고, 공석(空石)돌이 비워진다란 뜻이다.

     이는 바로 신령께서 돌이 있음을 숙지하고 있다가 (그 돌을 사용함으로써) 마침내 돌을 비울 것이란 뜻인 것이다.

     숙지산은 수원화성이 위치한 팔달산과 가장 가까이 있으며,

    화성축성시 제일 처음 고유제를 지내고 돌을 가져갔던 곳이다.

     

     

     

     

     

     

     

     

     

     

    숙지공원 내에 조성중인 꿈꾸는 숲속 놀이터

     

     

     

     

    숙지공원(熟知公園)

     

    도시근린공원인 숙지공원(熟知公園)200412월에 조성됐다.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이 소재한 팔달산 서쪽 숙지산에 자리한 위치한 숙지공원은

     이름 그대로 조선시대 정조대왕이 수원행차시  팔달산(화성장대)에 올라 숙지산쪽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산이니 숙지산(熟知山)이라고 부르라고 한 데서 유래된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숙지공원(熟知公園)282800 다목적체육관, 축구장과 2002년 월드컵 기념조형물과 벽화,

    계단식 잔디 객석을 갖춘 반원형 야외공연장산책로와 등산로 및 각종 생활체육시설 등이 있다.

     

     

     

     

    숙지공원 월드컵기념 조형물

     

    2002 FIFA 월드컵 4강 신화를 기념하는 뜻에서 월드컵기념 조형물을 2004년에 설치하였다.

    조형물은 축구공을 들레로 32개 참가국을 표현하여 32개의 선()이 한 곳으로 모여

    5대양 6대주, 전 세계 인류인의 화합과 번영을 상징하고 있다.

     

     

     

     

    화서다산도서관(華西茶山圖書館)

     

    숙지공원내에 위치한 화서다산도서관은 수원화성을 과학적인 공법으로 축성한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선생의 업적을 기리고 실학정신을 계승하고자 과학을 테마로 건립했다.

    건축연면적 3,611, 지상 3층 규모로 2016630일 개관한 화서다산도서관은

    어린이자료실, 영유아자료실, 주민커뮤니티 공간, 정보통신실, 열람실 등을 갖췄다.

    도서관 옥상에도 꽃뫼마루 쉼터를 만들어 도서관 이용자들에게 휴식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화성 축성(華城 築城)에 사용한 돌은 무게 때문에 멀리서 운반하지 못하고 인근의 숙지산(熟知山),여기산(麗妓山),

    팔달산(八達山),권동(勸洞, 서호방죽 주변의 앵봉산鶯峰山이나 동말 주변으로 추정)에서 채취해 사용했는데

    숙지산이 있는 곳의 옛 지명은 공석면(空石面)인데 이곳에 돌이 많다는 채제공의 보고를 받은 정조대왕이

    1796124일 수원에서 환궁하는 길에 오늘 갑자기 단단한 돌이 셀 수 없이 발견되어 성 쌓는 용도로 사용됨으로써

    돌이 비워지게(空石) 될지 누가알았겠는가(熟知)?.

    암묵(暗黙)중에 미리 정함이 있으니 기이하지 아니한가?”라고 감탄하게 된다. 

    각 부석소(浮石所)에서 캐낸 양은 숙지산 81,100덩어리, 여기산 62,400덩어리,

    권동 32,000덩어리, 팔달산 13,900덩어리 등 189,400덩어리였다.

     

     

     

     

     

     

    숙지산(熟知山)

     

    숙지산(熟知山, 옛지명은 孰知山)이 있는 곳의 지명은 공석면(空石面)인데

    이곳에 돌이 많다는 채제공의 보고를 받은 정조임금은

    1796년 1월 24일 수원에서 환궁하는 길에

    "오늘 갑자기 단단한 돌이 셀 수 없이 발견되어 성 쌓는 용도로 사용됨으로써

    돌이 비워지게(空石) 될지 누가 알았겠는가(孰知)? 암묵(暗默) 중에

    미리 정함이 있으니 기이하지 아니한가?"라고 감탄하게 된다.

    공석면 숙지산은 지금의 영복여고 뒷산이니 화서동 숙지산을 일컫는 것이다.

    지금도 숙지산과 팔달산 곳곳에는 돌을 뜬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산들의 돌을 뜨는 자리를 부석소(浮石所)라고 했는데,

    팔달산 1군데, 숙지산 2군데, 여기산 2군데,

    권동(서호방죽 주변의 앵봉산鶯峰山이나 동말 주변으로 추정) 1군데가 설치되었고,

    각 부석소에서 캐낸 양은 팔달산 13,900덩어리, 숙지산 81,100덩어리,

    여기산 62,400덩어리, 권동 32,000덩어리 등 189,400덩어리였다.

    부석소에서 떠낸 돌은 치석소로 보내어 일정한 규격으로 다듬어

    소가 모는 대거(大車 : 소 40마리가 끄는 수레), 평거(平車 : 소 4~8마리가 끄는 수레),

    발거(發車 : 소 1마리가 끄는 수레)와 사람이 끄는 동거(童車 : 장정 4인이 끄는 수레) 등

    수레를 이용해 정조임금의 지시대로 닦은 ‘화살 같이 쭉 곧고 숫돌처럼 평평한’

    치도(治道)를 통해 축성 현장으로 옮겨와 성곽을 쌓았다.

     

     

     

     

    부석소(浮石所)

     

    숙지산(熟知山)은 화성을 축성(1794.1~1796.9)할 때 대부분의 돌을 조달했던 곳이다.

    지금도 바위 군데군데에 돌을 자르기 위해 쐐기를 박았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을 사용해 돌에 구멍을 판 뒤, 그 속에 물푸레나무나 밤나무 등을 박고 물을 부어 팽창하는 힘으로 돌을 잘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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