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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포(木浦) 유달산(儒達山)
    국내 나들이/산(山)으로 2018. 3. 13. 20:20

    목포(木浦) 유달산(儒達山)

     

    유달산은 예부터 영혼이 거쳐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이라 불렸다.

    동쪽에서 해가 떠오를 때 그 햇빛을 받아 봉우리가 마치 쇠가 녹아내리는 듯한 색으로 변한다 하여 유달산(鍮達山)이라 하였다.

    이후 구한말 대학자인 무정정만조가 유배되었다가 돌아오는 길에 유달산에서 시회를 열자 자극을 받은 지방 선비들이

    유달정(儒達亭) 건립을 논의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산 이름도 유달산(儒達山)이 되었다.

    노령 산맥의 맨 마지막 봉우리이자 다도해로 이어지는 서남단의 땅 끝에 자리한 산으로 해발 228m이다.

    산정이 가파르고 기암절벽이 첩첩이 쌓여 있어 호남의 개골산(皆骨山)으로도 불린다.

     

     

     

     

     

     

     

     

    충무공 이순신장군 동상

     

     

     

     

     

    유달산(儒達山) 이야기


    목포의 상징으로 높이는 228m.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으로 이어지는 영산기맥의 시작점이자 종착지이다.

    유달산의 이름은 옛 문헌에 대부분 놋쇠 유()로 등장하지만 구한말에 선비 유()로 바뀌었다.

    조선시대 산 정상 부근에 봉수대가 있었고, 이순신 장군의 전설이 서린 노적봉 등 많은 문화유적이 산재해있다.

    유달산은 신선이 춤을 추는 듯한 모양을 갖추고 있고,

    바닷가에 위치하며 영혼이 거쳐 가는 곳이라 하여 일찍부터 사람들이 우러러 보았다.

     

    옛날부터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유달산 일등바위에서심판을 받은 뒤 이등바위로 옮겨서 대기하다

    극락세계로 가게 되면 3마리의 학이나 고하도 용머리의 용에 실려 떠나고,

    용궁으로 가게 되면 거북섬으로 가 거북이 등에 실려 떠난다는 전설이 있다.

     

     

     

     

     

    목포의 눈물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아씨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유달산 바람도 영산강을 안으니 님 그려 우는 마음 목포의 사랑

    깊은밤 조각달은 흘러가는데 어찌타 옛 상처가 새로워진아

    못 오는 님이면 이 마음도 보낼 것을 항구에 맺은 절개 목포의 사랑

     

     

     

     

     

     

    대학루(待鶴樓)

     

    유달산 제일 아래 초입에 위치한 누각은 학()을 기다린다 하여 대학루(待鶴樓)라 한다.  

    1984년에 시민의 휴식처로 세워졌는데 대학루는 유달산의 누정중 삼학도를 가장 근접한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지금은 육지가 되어버린 세 개의 섬 삼학도와 관련된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가 이곳에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 유달산에는 무예를 익이던 한 장사가 있었다.

    근처에는 세 처녀가 살고 있었는데 장사의 늠름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를 눈치 챈 장사는 세 처녀를 불러 무예 정진에 방해가 되므로

    수업이 끝날 때까지 멀리 떨어진 섬에서 기다려 줄 것을 요청했다.  

    세 처녀는 장사의 말대로 멀리 떨어져 기다리기로 하고 돛단배에 몸을 실었으나  

    장사는 차마 이들을 떠나 보낼 수 없어 이들이 탄 배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이윽고 배는 두동강이 나 가라앉고 그 자리에서 세 마리의 학이 솟아오르더니 

    구슬픈 울음을 남기면서 다시 가라 앉아, 그 자리에서 세개의 섬이 솟아 올랐다.이 세개의 섬이 삼학도다.  

    지금의 삼학도는 60년대 개발의 힘에 밀려 흔적만 남고 단지 이 얘기만이 전할 뿐이다.

     

     

     

     

     

     

    달선각(達仙閣)

     

     

     

     

     

     

     

     

     

     

     

     

     

    일제의 잔재 부동명왕상과 홍법대사상

     

    유달산의 상징인 일등바위 아래에 새겨진 부동명왕은 일본불교의 힘으로 영원한 조선 지배를 획책하기 위해 조각됐다

    일본 불교 부흥을 위해 1920년대 일본인에 의해 조각된 것으로 전해진다.

     

    부동명왕(不動明王)

    부동여래사자(不動如來使者)라고도 한다. 원명은 아시알라(Acāla)라하는데, 힌두교 시바신의

    이명을 불교가 그대로 채택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 명왕에게 사자의 성격을 부여하였다.

    후에는 대일여래(大日如來)의 사자로써 번뇌의 악마를 응징하고 밀교 수행자들을 보호하는 왕으로 간주되었다.

    오른손에 검을 쥐고 왼손에는 삭()을 쥐었으며,

    부릅뜬 눈과 뾰족한 어금니에 윗입술을 깨문 무서운 분노신(忿恕身)을 하고 있다.

    맹염(猛炎)이 몸을 감싸고 있는 것은 악마를 박멸하는 위력을 나타낸 것이고,

    동자형(童子形)의 몸의 모양은 여래의 동복(童僕)이 되어 밀교 수행자들의 봉사자가 되려는 서원(誓願)에 따른 것이다.

    조상(造像)은 히말라야 산록을 뛰어다니는 목동을 모델로 했는데, 불상 중에서 가장 인도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현재 명왕부(明王部)의 대표격으로서, 7세기 후반 대일경(大日經)이 성립되자

    밀교 오대명왕(五大明王)의 주존(主尊)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였다.

     

    홍법대사(弘法大師, 774~835)

    부동명왕상에서 우측으로 50m쯤 바위에 새겨진 조각상이다.

    일본 진언종의 개조로 20세에 출가하였고 중국 당나라에 건너가 수행하였다.

    806년에 귀국하여 불법을 전했다. 진언종은 주문 등의 신비한 언어와 의식,

    죽은 조상을 위한 제사 등을 강조하며 현세이익을 추구하는 종파이다.

     

     

     

     

     

     

     

     

     

     

     

     

     

    유선각(儒仙閣)

     

    유선각은 목포개항 3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하나로 시민의 뜻을 모아 1932101일 목조로 처음 건립했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부분보수와 전면 중수를 거쳤으나 흐르는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현재는 철근 콘크리트로 개축하여 청호(靑湖)의 정경(情景)을 돋보이게 했다.

    197381

     

     

     

     

     

     

     

     

     

     

     

    노적봉 여자나무(女人木) - 팽나무속 폭나무

     

    노적봉 여자나무에는 다산(多産)을 이루게 한다는 전설과 함께 또 하나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명을 받은 아낙네들이 봉우리에 이엉을 덮고 군량미로 위장하던 중

    생리현상을 급히 해결하고자 바위 밑에서 볼일을 보는데 이곳을 염탐하러 온 왜군이

    여자의 자태에 눈이 팔려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고 되돌아갔으며,

    이를 후세에 알리고자 이 나무가 노적봉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한편 폭나무는 낙엽활엽소교목으로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 많이 자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적봉(露積峰)

     

    이순신 장군의 호국 전설이 담긴 곳이다.

    봉우리에 노적을 덮어 멀리서 보면 마치 군량미(軍糧米)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게 하자,

    해상에서 이를 본 왜적들은 저렇게 많은 군량을 쌓아두었으니 군사는 얼마나 많겠느냐며 놀라 도망쳤다고 한다.

    유달산 등구에 노적봉을 지키는 노인암이 있고, 시민의 종 뒤편에는 노적봉을 염탐하는 도적암이 있다.

    이와 같은 내용은 1897년 오힝묵 지도군수가 기록한 지도군총쇄록에 남아있다.

     

     

     

    역사골목여행 목포 물장수 옥단이 길소개

     

    옥단이 길은 목원동 역사골목 탐방로이다.

    옥단이는 목포 원도심의 골목을 누비며 물장수로 살았던 실존인물로 차범석의 희곡 옥단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목원동은 목포역과 유달산 자락 사이에 형성된 근대도시 목포의 심장이자, 예향의 뿌리이다.

    상가와 주거지를 연결하는 작은 골목길이 마치 심장의 형관처럼 얽혀있고, 그 안에는 다양한 근대역사유적이 남아있다.

    옥단이 길을 따라 걷다보면 1897년 개항 이후 조선인들이 이룩한 근대도시 목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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