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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월미도 문화의 거리, 월미 테마파크
    국내 나들이/섬(島)으로 2018. 5. 6. 04:30

    월미도 문화의 거리, 월미 테마파크



    이별의 인천항


    작사 : 세고천, 작곡 : 전오승, 노래 : 박경원


    쌍고동이 울어대는 이별의 인천 항구

    갈매기도 슬피우는 이별의 인천 항구

    항구마다 울고가는 마도로스 사랑인가

    정들자 이별의 고동소리 목메여 운다


    등대마다 님을 두고 내일은 어느 항구

    쓴 웃음진 남아에도 순정은 있다

    항구마다 웃고 가는 마도로스 사랑인가

    작약도의 등대불만 가물거린다


    마도로스 수첩에는 이별도 많은데

    오늘밤도 글라스에 맺은 인연을

    항구마다 끊고가는 마도로스 사랑인가

    물새들도 눈물짓는 이별의 인천항구




    인천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은 북한군의 남침으로 발발한 1950년 6.25 한국전쟁의 전세 위기를 역전시켜 승리로 이끌었던 작전이다.

    미국 유엔군사령관 맥아더 장군(Douglas Mac Arthur)은 유엔군 병력지원의 한반도 상륙지점을 정하는데 있어서

    인천이 조수간만의 차가 크다는 지리적 약점과 성공확률 5000:1 이라는 불가능에도 불구하고

    인천을 기회로 보고 인천상륙작전을 단행하여 전세의 위기를 역전시켰다.





























    월미도 명칭 유래


    월미도(月尾島)명칭의 유래는 섬의 생김새가 반달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월미(月尾)라 이름 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월미도 명칭이 옛 지도에는 여러가지로 기록 되어 있다.

    17세기 초엽에 그려진 팔도지도(八道地圖)첩의 경기도 지도에는 월미도의 위치에 해당하는 섬에 제물(濟物)이라고 표기하였다.

    18세기 후기에 제작된 여지도(與地道)첩과 19세기 지도인 동국지도(東國地圖)에도 역시 제물이라고 표기하였다.

    1834년 김정호의 청구도(靑丘圖)에는 월성(月星)이라 표기 되어 있고

    1860년경 제작된 동여도(東與圖)와 그 외의 지도에는 월미로 표기되어 있다.(출처: 이희환, 문학으로 인천을 읽다.)

    월미도는 19506.25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의 거점이 된 이후 군사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1987년 월미도 문화의 거리가 조성되면서 인천을 대표하는 중구의 관광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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