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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금강산 화암사(大韓佛敎曹溪宗 金剛山 禾巖寺)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8. 8. 25. 04:30
대한불교조계종 금강산 화암사(大韓佛敎曹溪宗 金剛山 禾巖寺)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로
769년(신라 혜공왕 5) 진표(眞表)가 창건하고 이름을 금강산 화엄사(華嚴寺)라 했다.
사적기에 의하면, 당시 금강산으로 들어온 진표는 금강산의 동쪽에는 발연사(鉢淵寺)를,
서쪽에는 장안사(長安寺)를, 남쪽에는 이 화엄사를 창건했는데,
화엄사라 한 까닭은 이 곳에서 “화엄경(華嚴經)”을 강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시 화엄경을 배운 제자 1백 명 가운데 31명은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갔으며,
나머지 69인은 무상대도(無上大道)를 깨달았다고 한다.
또 진표는 이 곳에서 지장보살을 친견하고 그 자리에 지장암(地藏庵)을 창건하여 이 절의 부속 암자로 삼았다 한다.
그 뒤 941년(고려 태조 24) 월영암(月影庵)을 창건했으며,
1401년(조선 태종 1) 지장암을 동쪽으로 옮기고 미타암(彌陀庵)으로 이름을 바꿨다.
1623년(인조 1) 불에 타서 1625년 중건했다.
1628년에는 광명(廣明)이 지장보살상을 조성했으며, 안양암(安養庵)을 창건했다.
그러나 1635년 산불이 일어나 다시 불 탔다.
이에 동쪽 20리 지점으로 임시 이전했다가 1644년(인조 22)에야 옛터에 중건했다.
1662년(현종 3)에도 화재가 있어 중건했고, 1716년(숙종 42)에는 산적들이 불 태워 버렸다.
이듬해 승려들은 동쪽으로 10리 가량 떨어진 무릉도(武陵島)에 초옥을 짓고 거주하다가,
1721년(경종 1) 옛 절터로 돌아와 중건했으며, 해성(海城)은 안양암을 중수했다.
1760년(영조 36) 화재로 대웅전과 향각(香閣), 승당이 불 타자 승려들이 협력하여
이듬해 승당을 세우고, 1762년 대웅전과 향각을 중건했다.
1794년(정조 18)에는 화성 도한(華城 道閑)이 약사전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를 주야 21일 동안 올렸는데
기도가 끝나자 방광(放光)이 뻗쳐 그 빛이 궁궐의 뜰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에 정조는 제조상궁(提調尙宮) 최(崔)씨를 이 절에 파견하여 도한을 궁궐로 데려오도록 했다.
도한으로부터 경위를 들은 정조는 크게 감격하여 이 절을 가순궁(嘉順宮)의 원당으로 삼고 요사채 2동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1796년에는 미타암의 화응전(華應殿)을 정조의 원당으로 정하여
관음보살상과 정조의 친필 병 6폭, 연(輦)을 하사하고, 절의 사방금표(四方禁標)를 정해 주었다.
이로써 이 절은 창건 이래 가장 큰 사역(寺域)을 형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1860년(철종 11) 산불로 암자까지 모조리 소실되었으며, 승려들은 춘담(春潭)을 중심으로 중건에 착수했다.
전국 여러 곳을 다니며 시주를 모으고 왕실의 도움을 받아 화엄사와 안양암을 중건했으며, 수봉(穗峰)은 탱화를 조성했다.
1864년(고종 1) 다시 산불로 소실되어 불 타지 않은 승당에 임시 법당을 마련하고 지내다가
1864년 지장탱화와 신중탱화, 현왕탱화를 조성 봉안했다.
그리고 화재를 면하고자 풍수지리에 입각해서 남쪽의 화기를 지닌 수암(秀巖)과
북쪽의 코끼리 바위의 맥이 상충하는 자리를 피하여 100m 아래에 절을 짓기로 했다.
1872년 수봉이 새 터에 법당, 영각(影閣), 누각, 요사채를 중건했으며,
1882년(고종 19) 자허(자虛)와 선월(船月)이 철원 장구사(長久寺)로부터
아미타여래좌상과 약사여래좌상을 모셔 봉안했다.
1893년 폭우로 인한 산사태로 안양암이 붕괴되었고, 1894년축성(竺星)이 중했으며,
1909년 영운(影雲)이 안양암에 칠성각을 건립했다.
1912년에는 사찰령에 따라 전국 31본산 중 건봉사(乾鳳寺)의 말사가 된 뒤부터
화암사라는 이름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했다. 1915년 9월 다시 불 타서 1917년 중건했다.
그러나 1950년 6.25전쟁 때 크게 파손되어 외채 1동만 남게 되었다.
1953년 휴전 뒤에 건봉사 극락암에 있던 한 비구니가 정착하여 머물렀다.
1986년에는 주지로 부임한 양설(良說)이 세계잼버리대회와 때를 맞추어
절을 중창함으로써 다시 큰 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잼버리로 163-100 (신평리)
일주문(一柱門)
화암사 입구에서부터 포장된 길을 따라 2.8km 들어가면 “금강산 화암사(金剛山 禾巖寺)”라는 현판이 걸린 일주문이 나온다.
이 일주문은 “금강산 화암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으며 중생과 부처가 하나이고 진(眞)과 속(俗)이 하나이며,
만법이 일심(一心)의 소현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문이다.
諸行無常 是生滅法(제행무상 시생멸법)
모든 현상은 한시도 고정됨이 없이 변한다는 것이 곧 생하고 멸하는 생멸의 법이니
生滅滅已 寂滅爲樂(생멸멸이 적멸위락)
이 생멸에 집착함을 놓으면 곧 고요한 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초전법륜이란
부처님께서는 깨달으신 후 한동안 보리수 아래 머물고 삼매에 들어 깨달음의 내용이 심오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더라도 이해되지 않을 것이라고 걱정하며 설하기를 주저하셨다.
이때 범천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부처님께 중생을 위해 설법해 주실 것을 세번이나 간청하였다.
마침내 부처님께서는 탐욕에 허덕이는 둥생을 지혜의 길로 이끌기 위해 진리의 수레바퀘를 굴리기로 결심하고 이렇게 선언 하신다.
'감로의 문은 열렸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려라.
부처님은 깨달음의 진리를 알 수 있는 사람으로 한 때 스승이었던
알라라 탈라마와 웃다카 라마 풋다를 생각하였지만 이미 그들이 세상을 떠난 것을 아시고
전에 함께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콘단냐,마하나마,바수파,아슈바치트.바디야)를 찾아 녹야원으로 갔다.
다섯 수행자는 멀리서 부처님이 오시는 것을 보고 아는 체하지 않기로 하였으나,
부처님께서 다가오자 그 위엄과 자비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절을 하고 자리를 권하였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서 중도와 사성제 팔정도를 내용으로 한 첫 설법을 시작하셨다.
이것을 최초의 설법인 초전법륜(初傳法輪)이라 한다,설법과 대화,토론을 통해
다섯 수행자 가운데 교진여(콘단냐)가 맨 먼저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되고
곧 나머지 수행자 모두 그 가르침을 이해하여 생사의 괴로움으로부터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들이 부처님의 최초의 제자로 비구(比丘)의 시초이다.
불기 2550년 4월 8일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유훈
너희들은 저마다 자신을 등불삼고 자기를 의지하여라.
또한 진리를 등불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이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되느니라.
모든 것은 덧없나니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범종루(梵鐘樓)
범종루 종각에는 “풍악제일루(楓嶽第一樓)”라는 현판이 쓰여 있으며 안에는 범종(梵鐘)이 매달려 있다.
이 범종은 주지 김문석 스님과 문창하(文昌廈) 신도회장(信徒會長) 외 30여 명의 시주와 성금으로
불기(佛紀) 2539년(乙亥年) 범종사(梵鍾社)에서 주조(鑄造)한 것이다.
옛날에는 용뉴 아래 부분이 주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지금은 볼트 모양의 인위적인 연결부가 종을 지탱하는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이 범종은 삼라만상이 깨어나는 시각 웅장하게 울려 퍼져 산사의 아침을 알린다.
범종소리는 지옥의 고통을 쉬게 하고 모든 번뇌를 소멸시키며 중생의 각성을 일깨우는 지혜의 소리이다.
이곳 범종루는 좋은 전망대이기도 하다. 범종루 앞에 서면 절벽 끝에 세워진 란야원이 시선을 자극하며
이 란야원 지붕위로는 저 멀리 끝없이 펼쳐지는 동해와 속초 시가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동해와 속초 시가지는 한가롭고 평화롭기 그지없다.
수바위(쌀바위)
금강산 화암사(金剛山 禾巖寺) 남쪽 300m 지점에는 수(穗)바위라는 왕관모양의 우람한 바위가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이 바위 밑에 위치한 화암사는 민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스님들이 시주를 청하기 어려웠는데,
어느 날 스님 두 분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수바위에 조그만 구멍이 있으니 그 곳을 찾아 끼니 때 마다 지팡이로 세 번 흔들라"고 얘기하자,
잠에서 깬 스님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수바위에 올라 노인이 시킨대로 했더니
신기하게도 두 사람 분의 쌀이 쏟아져 나왔고 그 이후로는 식량 걱정없이 편안히 불도에 열중하며 지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화암사를 찾게 된 한 객승이 화암사 스님들은 시주를 받지 않아도
‘수(穗)바위’에서 나오는 쌀로 걱정 없이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세 번 흔들어서 두 사람 분의 쌀이 나온다면
여섯 번 흔들면 네 사람 분의 쌀이 나올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에
다음날 날이 밝기를 기다려 아침 일찍 수바위로 달려가 지팡이를 넣고 여섯 번을 흔들었더니
쌀이 나왔던 구멍에서 피가 나왔고 객승의 욕심에 산신의 노여움 때문인지
그 후로 수바위에서는 쌀이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웅전(大雄殿)과 9층석탑(九層石塔)
화암사의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多包系) 겹처마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1991년 건립되었다.
대웅전에는 지혜의 제화갈라보살, 2m정도의 본존불인 석가모니불,
미륵보살이 온화한 모습으로 정좌하고 있는데, 이 순서는 법화경에 의한 것이다.
제화갈라보살은 과거불인 연등불이 부처가 되기 전의 이름이며,
석가가 과거세에서 선혜보살로 수행 중 일 때 연등불에게서 “다음 세상에서 여래가 되리라”는 수기를 받고 현재불이 되었고,
석가모니불은 미륵보살에게 미래에 미륵불이 되리라는 수기를 내렸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 수기를 주고받은 세분의 불· 보살을 모신 것을 삼세불 또는 수기삼존불이라고 한다.
삼존불 위의 보궁형(寶宮形) 닫집에는 구름 속을 노니는 두 마리의 용과 극락조(極樂鳥) 등이 조각되어 있다.
이 대웅전은 화강암으로 견고하게 쌓은 석단이 건물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건립된 지 얼마 안 된 건물이지만 꽃 문살과 단청이 매우 화려하면서도 정교하게 장식돼 있다.
대웅전 앞에는 구층석탑이 마주보고 자리해 있다. 화암사는 절터의 기운이 매우 센 곳이라 예부터 많은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이 탑은 주변의 이러한 센 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최근에 세운 비보성격의 탑이다.
명부전(冥府殿)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주심포 맞배지붕으로 구성된다.
내부에는 지장보살상과 지장보살의 협신인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비롯한 명부의 10대왕이 도열해 있다.
그리고 대왕을 대신하여 심판을 하는 판관과 기록 및 문서를 담당하는 녹사,
수명이 다한 사람을 잡아간다는 저승사자, 우두와 미두신이 있다.
수하항마(고행수도)상 - 樹下降魔(苦行修道)相
29세에 출가한 싯다르타는 구도자 보살(菩薩)로서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행의 삶이었다.
극도의 고행으로서 “위없는 깨달음(무상보리)”을 얻으려 무진 애를 썼다.
그러나 6년의 갖은 고행이 최상의 깨달음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6년 금식고행의 수행생활을 청산하고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으로 기운을 차리게 된다
이렇게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을 드신 보살은 넓은 그늘을 드리운 피팔라나무(Pippala:보리수)에 이르러
주위를 세 바퀴 돈 뒤 길상(吉相)이란 뜻의 이름을 가진 솟띠아로부터 길상초 받아 반석 위에 고르게 펴서 깔고
동쪽을 향해 몸을 바르게 세우고 호흡을 고른 후 보살은 맹세하였다.
“여기 이 자리에서 내 몸은 메말라 가죽과 뼈와 살이 다 없어져도 좋다.
저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이 자리에서 결코 일어나지 않으리라!”
갖은 마라(악마)의 유홋에도 굴하지 않고 깊은 명상에 들어,
칠 일째 동쪽의 새벽녘 샛별을 보고 드디어 보살은 모든 미혹의 번뇌를 일순간에 다 끊어버릴
“아뇩다라 삼먁삼보리” 무상보리의 정각(正覺)을 이루었다. 태자 나이 35세 때 12월 8일의 일이었다.
49일간 선정에 든 후 “내 이제 감로의 문을 여나니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낡은 믿음을 버리고...” 함께
고행을 닦았던 아야교진여 등 다섯 비구에게 처음으로 가르침을 설하는데
이를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하며 이들은 석가모니의 첫 제자가 되었다.
수하항마(樹下降魔)상 석가모니 부처님께 참배 드리고, 우리 모두 수행정진(修行精進)하여 성불(成佛)합시다.
오도송(悟道頌)
혜림(惠林) / 향곡(香谷) (1912~1978), 경북 영일 출신,
일생동안 참선 정진에만 전념한 눈 밝은 수행인 정진을 통해 몸안에 부처가 가부좌를 틀고 있음을 깨닫고 난 후
한번 할을 하면 백업 부처님이 쏟아지고 한 반 발길로 수미산을 거꾸로 뒤집는 힘을 가졌던 선지식.
忽然兩手全體活 (홀연양수전체활) 홀연히 두 손을 보니 전체가 살아났네
三世佛祖眼中花 (삼세불조안중화) 삼세의 불조는 눈 속의 꽃이요
天經萬論是何物 (천경만론시하물) 천경만론(天經萬論)이 무슨 물건인고?
從此佛祖總喪身 (종차불조총상신) 이로부터 불조들이 모두 몸을 잃었도다.
鳳巖一笑千古喜 (봉암일소천고희) 봉암사에서 한 번 웃음은 천고의 기쁨이요
曦陽數曲萬劫閑 (희양수곡만겁한) 희양산 굽이굽이 만겁토록 한가하네
來年更有一輪月 (내년갱유일륜월) 내년에도 또 있겠지 둥굴고 밝은 달
金風吹處鶴戾新 (금풍취처학려신) 가을 바람 부는 곳에 학의 울음 새롭구나.
화암사 내방시 사찰 전통국수 만발공양(무료)
매주 토,일요일 12:10~13:00 (화암사 대중공양실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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