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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인 고초골 공소(등록문화재 제708호) 및 고초골 피정의 집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8. 8. 27. 21:30

    용인 고초골 공소(등록문화재 제708호) 및 고초골 피정의 집



    고초골 공소는 건물 구조평면형식  건물 본래 모습  과거 용인 지역의 살림집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으며

    근대 천주교가 정착해 가는 과정에서 한옥이변모해 가는 시대적 상황도  보여주고 유산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천주교 수원교구 원삼본당이 관할하는 고초골 공소는 면적 120 수원교구 공소  가장 오래된 곳이다

    공소는 조선 박해 시기  형성된 고초골 교우촌에 1891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공소 신자가 1900 78명에서 1920년에는 230 명으로 늘어나는  근대 이후 신앙의 보금자리 역할을 해오고 있다

    고초골 출신 병인박해 순교자는 유군심(치릴로 5위가 있다.  




    고초골 지역은 이미 1866병인치명사적에서도 신자가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교우촌이다.

    대부분 박해를 피해 모여 가난했던 신자들은 이주국 장군 소유의 부속건물을 해체하면서 나온 자재를 활용해 공소를 지었다.




    고초골 지역 신자들은 1970년대까지도 고초골공소에서 공소예절을 바쳐왔지만,

    1980년대부터는 교통수단의 발달로 원삼본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본당은 공소의 가치를 살리기 위해 2003년 공소 인근 초가들을 리모델링해 피정의 집으로 활용하고,

    해마다 공소에서 고초골 메주만들기 축제도 열고 있다. 









    고초천주교회(枯草天主敎會)




    고초골 피정의 집 숙소





    고초골 피정의 집 숙소




    주교관


    2016년부터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가 공소 마을에서 지내게 되면서 지금은 ‘주교님과 신자가 함께 사는 마을 됐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며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을 오르신 고난의 길,

    우리는 그 길이 생명과 부활의 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말씀에 용기를 내어 따라 나섭니다.

    십자가의 길(14)을 따르며 바치는 이 기도만큼 예수님의 수난과 우리를 위한 죽음을 묵상하기에 좋은 방법도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 기도를 깊이 묵상하며 바치면,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교회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묵상하도록

    자주, 특히 사순시기에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칠 것을 권합니다.

    빌라도 법정에서부터 시작하여 돌무덤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을 따라 걸으며

    주님의 사랑 속에 깊이 빠져드시기 빕니다.


    너를 살리기 위하여 내가 죽었다,




    십자가의 길 14처


















    십자가의 길 기도를 마치며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예수님 묵상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는데도 붙잡혀 고통받고 소외당하며 억압받으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힘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군인들로부터 고문과 조롱, 모욕을 당하셨고

    극악무도한 죄수로 판결을 받고 십자가형으로 비참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시대의 가장 약한 사람들의 모습에서도 나타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약자들을 바라보고 챙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날도 한국사회와 사방에서 여기 예수님처럼 죄 없는 사람이 죽어가요하는데도,

    우리가 그 사람을 바라보고 돕지 않는다면,

    우리는 십자가의 예수님과도 무관한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2천 년 전에 빌라도의 법정에 서서 모든 인류를 대변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아무 죄도 없이모든 이를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게 인류를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영광스러운 부활은 우리에게 손짓합니다.

    당신을 따르라고!  





    용인 고초골 공소 - 등록문화재 제708


    현존 수원교구 공소 중 가장 오래된 고초골 공소는 현재 많이 님아있지 않은 한옥 공소를 대표한다.

    대 천주교 기능을 담아내기 위하여 민가 건축을 종교 건축으로 변화시킨 특징이 있고,

    천주교 선교활동을 하던 지역적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

    천주교 선교활동이 억압받던 1800년대 초부터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 지역을 근거지로 신앙생활을 하며 형성한 교우촌이 고초골 공소의 뿌리이다.

    고종 3(1866)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이곳 천주교인 대다수는

    한양과 해미에서 파견된 포졸들에게 붙잡혀가 순교하였고 미을 전체가 불에 탔다.

    고종 23(1886) 조선과 프랑스의 조약 체결 이후 천주교 선교가 허락되자 천주교인들이 다시 고초골에 모여들었고,

    교우촌을 재건하면서 공소를 건립하였다.

    고초골 공소는 인근 마을 문촌리의 이주국 장군 고택(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6)의 부속건물인 잠실(누에 기르던 집)을 옮겨 지었다.

    남아있는 상량묵서(上樑墨書)를 통해 1891년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공소(公所)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본당보다 작은 교회를 뜻한다.

    고초골 공소는 원삼성당 소속이며 지금까지 교인들이 사용하고 있다.


    상량묵서(上樑墨書)

    건물의 건립시기를 건물 내부 목재에 적어 두는 것으로

    辛卯三月十六日立柱上樑(신묘 316일 입주상량)으로 기록되어 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고초골로 15 (학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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