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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제3관(嶺南第三關), 문경관문 조령관(聞慶關門 鳥嶺關) - 사적 제147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8. 10. 3. 22:30
영남제3관(嶺南第三關), 문경관문 조령관(聞慶關門 鳥嶺關) - 사적 제147호
이 관문은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경주(慶州) 순행차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을 지날 때
성주(城主) 홍달(洪達)이 세 아들을 차례로 보내어 귀순하였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 관문은 영남지방과 서울 간의 관문이며, 또한 군사적 요새지(要塞地)이다.
삼국시대에는 이보다 동쪽의 계립령(雞立嶺)이 중요한 곳이었는데 고려 초부터는
이곳 초참(草站)을 혹은 새재라고 하므로 조령(鳥嶺)이라 이름하고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하였다.
조선(朝鮮) 선조(宣祖)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장 고니시 유끼나가(小西行長)가 경주에서 북상해오는
카토오 키요마사(加藤淸正)의 군사와 이곳 조령에서 합류했을 정도로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이곳을 지킬 것이라 생각했지만 신립 장군은 때가 늦었으므로 충주로 후퇴하였다.
그 후 충주에서 일어난 의병장 신충원(辛忠元)이 오늘날의 제2관문에 성을 쌓고 교통을 차단하며 왜병을 기습하였다.
이곳의 군사적 중요성이 재확인되자 군사시설을 서둘러 숙종(肅宗) 34년(1708)에 이르러서야 삼중(三重)의 관문을 완성하였다.
문경에서 괴산, 충주로 통하는 제1관문을 주흘관(主屹關), 제2관문을 조동문(鳥東門) 혹은 조곡관(鳥谷關),
제3관문을 조령관(鳥嶺關)이라 이름한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상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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