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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령 기독교역사관(白翎 基督敎歷史館)
    국내 나들이/기독교(基督敎) 2018. 11. 9. 18:26

    백령 기독교역사관(白翎 基督敎歷史館)
























    백령 기독교역사관(白翎 基督敎歷史館)


    백령도는 이 땅에 복음이 전래된 최초의 선택받은 땅 중에 한 곳으로, 한국 기독교의 현장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지역이다.

    백령도에 설립된 기독교역사관은 30평 규모의 현대식 건물로 외부 시설보다 초기 중화동교회 모습, 최초 백령도 복음전파 장면,

    서양선교사 성경전달 재현, 토마스 선교사 방문 모습, 언더우드 선교사 세례 집례 등 내부 전시물에 비중을 두었다.

    이 외에도 중화동교회 설립사, 역대 성직자 사진, 언더우드 목사 기념비 등 기독교 역사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옹진군에서는 총신대 양지캠퍼스 소래교회, 화성군 제암리교회 등에 직원을 파견, 현지조사를 통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미흡한 점을 보완하여 이번 기독교역사관을 개관하였다.

    이렇듯 백령도 기독교역사관은 군()과 교회가 조화를 이뤄 설립했다. 백령도는 단순한 섬이 아니라

    19세기 한국 역사의 중요한 무대였으며, 더불어 초기 기독교 선교의 생생한 현장이었음을 알 수가 있다.

    한국 기독교 초기 선교는 백령도를 근거지로 전개되었다.


    1816년 중국 대사를 수송하던 영국 함대가 서해안에서 해로탐사를 하며 접근했던 곳이 바로 백령도다.

    기독교 복음전파의 시작인 셈이었다. 이후 영국 런던선교회 파송 선교사인 귀츨라프가 동인도회사 소속의 함선을 타고 들어와

    통상에 실패하고 백령도에 들러 복음을 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귀츨라프는 백령도 이외에도 고대도 원산 등을 돌며 쪽복음을 전했다.

    1865년에는 토마스 선교사가 서북해안을 찾아와 백령도를 비롯 황해와 평안도를 순회하며 전도를 했다.

    이듬해 토마스 선교사는 제너럴 셔먼호를 타고 백령도를 거쳐 평양에 들어갔다가 순교했다.

    토마스는 이 땅에 복음을 들고 찾아와 순교당한 첫 번째 선교사였다.

    1884년 황해도 송천에 최초의 자생교회인 소래교회를 세운 서경조 형제가

    1898년 중화동교회 설립예배에 참석하여 예배를 인도했던 것도 소중한 역사다

    중화동교회는 18988 25(음력) 중화동의 한문서당에서

    많은 주민들이 참여한 가운데 서경조 장로의 집전으로 설립예배를 드리게 됐다.

    백령도는 이 중화동교회를 중심으로 기독교가 급속하게 발전하게 됐으며,

    지금은 해병대 백령교회 등 군부대교회를 비롯하여 10개 교회가 백령도 복음화에 힘쓰고 있다.

    백령도 교회들은 힘을 모아 중화동교회 옆에 백령 기독교역사관을 설립하였으며,

    이 역사관은 백령 중화동교회 설립사와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 소재 교회와 교역자, 장로 소개,

    한국을 찾은 최초의 선교사인 귀츨라프(곽식렵) 선교사와 한국 기독교 최초의 순교자인 토머스(최난헌) 선교사 등

    백령도 기독교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해 놓았다.

    우리나라 교회사에서 두 번째로 1898년에 설립된 중화동교회는

    역사적 가치가 큰 성지로 교회 발전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교회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중화길 230-7 (연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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