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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미 채미정(龜尾 採薇亭) - 명승 제52호
    국내 나들이/명승(名勝) 2018. 11. 12. 04:30

    구미 채미정(龜尾 採薇亭) - 명승 제52


    이 건물은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영조(英祖) 44(1768)에 건립한 정자이다.

    재는 고려시대인 1386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성균관 박사를 거쳐 문하주서(門下注書)에 올랐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 왕조가 들어서면서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하여 벼슬을 사양하고 선산(善山)에 은거하면서 절의를 지켰다.

    '채미(採薇)'란 이름은 길재가 고려 왕조에 절의를 지킨 것을 중국의 충신 백이(伯夷), 숙제(叔齊)

    고사리를 캐던 고사에 비유하여 명명한 것이다.

    채미정은 흥기문(興起門)을 지나 우측에 있는 정면  3, 측면3칸 규모의 팔작집이다.

    뒤편에는 길재의 충절을 기린 숙종(肅宗)'어필오언구(御筆五言句)'가 있는

    경모각(敬慕閣)과 유허비각(遺墟碑閣)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경상북도 구미시 남통동 249

     




    하마비(下馬碑)




    懷古歌(회고가)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依舊) 하되 인걸(人傑)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야은 길재(冶隱 吉再, 1353~1419)





    채미정정화기념비(採薇亭淨化記念碑)




    흥기문(興起門)


    채미정 영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興起門(흥기문)이다.

    기문은 맹자(孟子)盡心章(진심장)에 나오는 문구로, 맹자(孟子)가 백이(伯夷)의 행동을

    '百世之下聞者 莫不興起也(백세지하문자 막부흥기야, 백대 후에도 듣는 이에게 감동을 일으키노라)'라고 한 문장에서 따온 이름이다.






    채미정(採薇亭) - 경상북도 기념물 제55 


    고려 말 학자 吉再(길재)의 충절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하여 영조 44(1768)에 창건되었다.

    중앙 1칸은 온돌방으로 꾸미고 사방 둘레에 모두 우물마루를 깔아 대청으로 꾸몄다.

    온돌방의 사면에는 각각 2분합 들문을 설치하였으며, 대청 사면이 벽체 없이 개방되어 있다.

    잘 다듬은 장대석 기단 위에 원통형으로 치석 한 화강석 주초를 놓고 원주를 세웠다.







    중류지주(中流砥柱)


    지주(砥柱)’는 중국의 황하(黃河) 중류(中流)의 하남삼문협(河南三門峽) 경내에 있는 높이 10여 미터의 산 모양의 바위이다.

    황하의 물결은 삼문협 일대에서 가장 세차게 흐르는데,

    여기에서 인문(人門), 신문(神門), 귀문(鬼門) 등의 세 갈래 급류가 형성되어 격랑을 일으키며 돌진한다.

    삼문협의 아래에는 산 모양의 지주가 삼문협을 통과한 급류를 막고 서 있는데,

    지주 아래로는 강폭이 넓어지고 물결도 평탄하게 흘러간다.

    이렇게 격랑을 일으키는 급류를 막고 서 있는 지주에서 유래하여,

    중류지주는 역경에도 의연히 버티는 용기를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 지주산처럼 세욕에 흔들리지 않고 굳게 절개를 지킨 길재(吉再)선생을 가리킨 것이다.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의연하게 버티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이나 그런 용기를 비유하는 말이다.









    구인재(求仁齋)


    구인재는 정면4칸 측면3칸의 건물로 근래에 만든 재사로

    1769(영조45)1771(영조47)의 년간에 선산부사 조재만이 건립하였으나

    1808(순조8)1881(순조11) 사이의 봄에 원인 모르게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으나

    인접해있던 채미정은 다행이 화재가 미치지 아니하였다.

    그후 후손들이 취의(聚議)하고, 개건통문(改建通文)을 돌려 경상감영및 선산부사 이지항의 도움으로,

    1809(순조9) 11월에 다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잇다.

    선산부사 서경순이 지은 "구인재 상량문"과 선산부사 이지항이 지은 "구인재 기문" 이 있다.

    ()의 명칭에 관하여 구인재 상량문에 의하면 구인(求仁)이란 두 글자는 공자의 말씀에서 취해왔다.

    즉 논어에 이르기를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인()을 구하여 인()을 얻었으니 어찌 후회가 있으리오라는 구절에서 나온 말이다.

    또한 기자(箕子)의 숭인전(崇仁殿)의 명칭과 부합되는 점이 있으니 실로 수절(守節)하는 본뜻을 표시했다고 하였다.




    구인재(求仁齋) - 지부홍세주근서(知府洪世周謹書)










    경모각(敬慕閣)







    肅宗御筆(숙종어필)


    左司諫吉再(좌사간길재)좌사간 길재

    歸臥烏山下(귀와오산하) 금오산 아래 돌아와 은거하니

    淸風比子陵(청풍비자릉)청렴한 기풍은 엄자릉에 비하리라.

    聖主成其美(성주성기미)성주께서 그 미덕을 찬양 하심은

    勸人節義興(권인절의흥) 후인들에 절의를 권장함일세.






    고려문하주서야은길선생유허비(高麗門下注書冶隱吉先生遺墟碑)

     






    바위솔(瓦松, 와송)


    다년생 초본으로 종자로 번식한다. 전국적으로 분포하며 산지의 바위 겉이나 지붕 위의 습한 기왓장에서 자란다.

    근생엽은 로제트형으로 퍼지고 원줄기에는 경생엽이 다닥다닥 달린다.

    잎은 잎자루가 없으며 육질의 피침형이고 녹색이지만 자주색과 분백색을 띤다.

    8~9월에 개화하며 길이 6~15cm 정도의 총상꽃차례에 화경이 없는 백색의 꽃이 밀착한다.

    둥근바위솔과 비슷하지만 잎 끝이 뾰족하여 굳어져서 가시처럼 되고 꽃밥은 암적자색이다. 관상용으로 이용한다.

    기와 위에서 자라는 소나무 같다고 하여 와송(瓦松)’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그 외 지붕지기, 지부지기, 집웅지기, 넓은잎지붕지기, 오송, 넓은잎바위솔, 지붕직이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간열, 간염, 강장, 소종, 습진, 옹종, 유방암, 이습지리, 자궁암, 종독, 지혈, 치창, 청열해독, 통경, 학질, 해열, 화상 등에 효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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