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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위인의 나라 - 제주 미니랜드
    국내 나들이/제주도(濟州道) 2018. 11. 26. 05:30

    세계 위인의 나라 - 제주 미니랜드


    세계적으로 훌륭한 위인을 부조상으로 조성해 놓았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비자림로 606 (교래리) 제주 미니랜드




    석가모니(Sakyamuni, 釋迦牟尼, 기원전 624년 ? ~ 기원전 544년 ?)


    불교의 교조로서 석가(釋迦)는 부족명으로 능하고 어질다라는 뜻이고, 모니(牟尼)성자라는 뜻이다.

    다른 호칭으로는 세존 · 석존 ·  · 여래 등의 10가지 존칭과 아명인 싯다르타 고타마(悉達多 喬達摩)가 있으며,

    서양에서는 흔히 고타마 붓다(Gautama Buddha)라고 칭한다.

    샤카족의 중심지인 카필라 왕국(현재의 네팔)에서 국왕 슈도다나(Suddhodana, 정반왕) 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인간의 삶이 생로병사가 윤회하는 고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자각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29세 때 출가하였다.

    처음에는 다른 수행자의 수행법을 따라하거나 고행을 하였으나 이는 무의미하고 중도가 긴요함을 알았다.

    부다가야의 보리수 밑에서 선정을 수행하여 35세에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고 부처(Buddha, 佛陀)가 되었다.

    이후 인도의 여러 지방을 편력하며, 포교와 교화에 힘썼고, 쿠시나가라에서 80세로 입멸하였다.

    석가모니가 비록 네팔에서 출생 하였지만, 깨달음을 얻은 후 주로 인구와 영토 크기가 네팔에 비해서

    절대적으로 큰 인도(인디아) 지역에서 포교활동을 하였기에, 석가모니를 인도인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국적을 기준하는 것은 출생지를 근거로 하므로, 석가모니는 엄밀히는 네팔인이다.




    공자(孔子, BC 551~ BC 479)


    본명은 공구(孔丘), 춘추전국시대 중국 산동성(노나라) 사람으로 사상가이자 정치가, 철학가.

    일찍 학문에 눈을 떠 많은 제자들을 길렀으며, 50세 때 잠시 관직에 있다가 그만두고 천하를 주유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고향에 돌아와 후학 양성과 고전 정리 작업에 힘썼으며, 그의 말을 모아 제자들이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중 유명한 것으로는 논어(論語), 시경(詩經), 서경(書經), 주역(周易), 춘추(春秋) 등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Jesus Christ, BC6~ AD 30)


    그리스도교의 창시자, 이름은 예수 Jesus of Galilee, Jesus of Nazareth라고도 함.

    그리스도(Christo)란 히브리어로 메시야(Mashiach)"를 뜻하는 그리스어이다.

    그후 그리스도는 영어권으로 전해지면서 그리스도(Christ)로 바뀌어 기름부음 받은 자”, “메시야즉 예수를 칭하개 되었다.

    예수의 행적과 메시지들은 신약성서에 기록되어 있다.

    예수에 대한 초기 교회의 신앙에는 신학적 동기와 전제가 들어 있기 때문에 예수의 진정한 생애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예수에 대한 많은 자료에는 예수가 BC 7~6년경에 베들레헴 혹은 나사렛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예수의 탄생에 대해서는 동정녀 마리아의 탄생설이 유력한데,

    예수는 육적인 아버지가 없고 성령의 능력으로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정통 그리스도교의 근본 교리이다.

    예수의 가족으로는 어머니 마리아(미리암)와 목수인 아버지 요셉, 형제 야고보(야곱요셉·유다·시몬(구약 족장의 이름들) 등이 있는데,

    그의 가족에 대해서는 마르코의 복음서6장에 언급되어 있다.

    예수는 다가오는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했고 백성들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쳤다.

    예수의 설교 안에 있는 모든 이념과 이미지는 하느님 자신이 그의 통치를 이루기 위해

    매우 가까이 있고 그 모습을 드러낸다는 하나의 사상으로 집약된다.

    예수는 결국 정치적 반란자로서 로마법에 따라 형을 선고받았고,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세종대왕(世宗大王, 13971450, 조선 제4대 왕)


    세종은 1397(태조 6)에 태종(太宗)과 원경왕후 민씨(元敬王后 閔氏)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도(), 자는 원정(元正)이다. 비는 심온(沈溫)의 딸 소헌왕후(昭憲王后)이다.

    위로는 14년간 세자의 자리에 있다가 폐위된 양녕대군(讓寧大君)과 세종의 세자 책봉 후

    불가에 귀의한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있으며, 아래로 성령대군(誠寧大君)이 있다.

    세종은 1418(태종 18) 6월에 양녕대군을 대신해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두 달 뒤 태종의 선위로 왕위에 올랐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면에 훌륭한 치적을 쌓아 민족문화의 창달과 조선왕조의 기틀을 튼튼히 하였다.




    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 1545~1598)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해전에서 왜군을 격파하여 승리로 이끈 조선의 명장.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여해(汝諧), 시호는 충무공(忠武公)으로

    아버지는 이정(李貞)이며, 어머니는 초계 변씨(草溪卞氏)로 변수림(卞守琳)의 딸이다.

    서울 건천동(乾川洞: 지금의 중구 인현동 부근)에서 출생하였다.

    양반가에서 태어나 22세에 무예를 배우기 시작해 1576년 봄 무과에 급제했다.

    1591년 전라좌도 수군절도사가 된 후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여 거북선을 건조하고 군사를 조련했다.

    1592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5월에 옥포 앞바다에서 첫 승리를 거둔 이후

    한산도대첩(閑山島大捷)에서 적선을 크게 격퇴하여 왜군의 전의를 상실시켰다.

    1595년 왜군의 간계와 조정의 모함으로 백의종군 처분을 받았으나 곧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했고,

    13척의 배로 300여 척의 왜군을 격파한 명량대첩(鳴梁大捷)을 이끌어 왜군의 서해 진출을 저지했다.

    마지막 전투였던 노량해전(露梁海戰)에서 왼쪽 가슴에 탄환을 맞아 전사했다.

    진중에서 기록한 난중일기(亂中日記)’가 전해지고 있다.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1917~1963)


    미국 제35대 대통령(재임 1961~1963).

    뉴프런티어 정책하에 인종차별의 철폐, 복지증진, 고도성장을 도모하고

    대외적으로 진보를 위한 동맹정책에 착수하여 강대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공존외교를 추진하였다.

    재임중 쿠바 사태, 베를린 봉쇄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위기를 맞았으며 핵실험금지조약의 체결과 '진보동맹' 결성 등의 업적을 남겼다.

    1960, 케네디는 공화당 대통령후보인 리처드 M.닉슨을 가까스로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미국 역사상 최연소이자 최초의 로마 가톨릭교도였다.

    케네디는 당선되자마자 여러 외교 문제에 봉착했지만, 이를 담력있게 대처했다.

    재선을 앞둔 1963, 그는 텍사스 주를 순회하는 일정을 잡고,

    댈러스 시 중심가에서 카 퍼레이드를 벌이다가 오즈월드에게 저격당해 숨졌다.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아인슈타인은 1879314일 독일의 다뉴브 강 상류에 있는 울름(Ulm)에서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태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평생을 두고 아인슈타인을 괴롭혔다. 뮌헨의 국민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가톨릭 신자인 선생님이 큰 못을 하나 가지고 교실로 들어와 이 못이 바로

    유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 때부터 아인슈타인과 그 밖의 유태인 아이들은 같은 반

    아이들로부터 떨어져 겉돌게 되었고 손가락질을 받게 되었다.

    아인슈타인은 20세기초 15년 동안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를 단언하고

    공간·시간·중력에 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제안한 일련의 이론들을 내놓았다.

    그의 상대성 원리와 중력에 관한 이론들은 뉴턴 물리학을 넘어서는 심오한 진전이었고

    과학적 탐구와 철학적 탐구에 혁명을 일으켰으며, 1921년 광전효과(光電效果)에 관한 기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00년 봄, 취리히연방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베른에 있는 스위스 특허 사무소 심사관으로 채용되었다.

    1905물리학 연보4개의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인간의 우주에 대한 견해를 영구히 바꾸어버린 상대성이론이 포함되어 있었다.

    1945년 원자폭탄을 만들어 2차대전 비극의 막을 내리게 했다.

    그는 히틀러가 독일을 집권한 후 미국 프린스턴으로 옯겨 죽을 때까지 살았다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


    미국 제16대 대통령. 1860년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여 18631119, 미국 남북전쟁의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의 전사한 장병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식전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미국의 건국신조의 존속을 위한 싸움에서 병사들이 목숨을 바쳤던 위대한 목적에 대해,

    살아남은 사람들이 한결 더 헌신할 것을 결심해야 한다고 말하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를 지상에서 소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그 목적이라고 연설을 했다.

    또한 노예제도에 반대하여 남북전쟁의 불씨를 키웠고, 결국 그의 임기 중에 남부연합이 떨어져 나가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1865414, 저녁 워싱턴의 포드극장에서 존 윌크스 부스에게 저격당해 사망했다.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 BC 100~44)


    로마의 정치가, 명문 출신으로 BC 60년 크리수스와 폼페이우스와 더불어 제1차 삼두정치에 참여하였다.

    민심파악의 지혜가 풍부하였으며, 그의 저서 갈리아 전기는 라틴문학의 걸작으로 꼽힌다.




    슈바이처(Albert Schweitzer, 1875~1965)


    독일의 신학자, 철학자, 전도사, 음악가, 의사.

    적도 아프리카에 파견된 선교의사였던 그는 '인류의 형제애'를 위한 노력으로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루터교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나 스트라스부르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이곳에서 1899년 철학박사학위, 그 이듬해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893년 스트라스부르에서 오르간 연주자로 활동하기 시작해 곧 능숙한 음악가가 되었다.

    1905년 박애사업에 헌신하기 위해 선교의사가 되겠다는 결심을 발표했고 1913년 의학박사가 되었다.

    그를 돕기 위해 간호사 훈련을 받은 아내 헬레네 브레슬라우와 함께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의 가봉에 있는 랑바레네로 출발, 평생을 봉사했다.

    자신의 사상과 신앙을 실천하여 아프리카의 미개자에 병원을 설립하여 원주민의 구제에 생애를 바쳤으며,

    밀림의 성자라고 일컬어져 세인의 존경을 받았다.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독일 작곡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과도기의 주요 인물로 최초의 직업적인 음악가였다.

    그의 음악세계는 하이든, 모차르트의 고전주의 전통에 입각했고,

    문학계의 동시대 작가 괴테와 실러의 작품에 표현된 새로운 시대정신을 포괄했으며,

    인간의 자유와 존엄을 열정적으로 부르짖던 프랑스 혁명의 이상을 좇았다.

    그는 이전의 어떤 작곡가들보다도 생생하게 삶의 철학을 대사 없는 음악으로만 표현해 음악의 위력을 드러냈다.

    그의 몇몇 작품들에서는 인간의 의지에 대한 확신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그 자신은 낭만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그를 따르는 여러 낭만주의자들의 작품들에 대해 사고의 원천이 되었다.

    음악 형식에서도 위대한 혁신가였으며,

    특히 교향곡 9번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었던 성악과 기악을 한데 결합시켰다.

    그는 청력을 잃은 뒤에도 작품활동을 이어가 그의 중요작품들 중 일부를 마지막 10년간 작곡했다.

    대표작으로 운명, 영웅, 전원 교향곡이 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e Bonaparte, 1769~1821)


    프랑스 제1공화국의 군인이자 프랑스 제1제국의 황제.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 나폴레옹은 이 말로 잘 설명된다.

    나폴레옹은 프랑스령의 외딴 섬 코르시카 출신으로 가난과 설움 속에서

    군사학교를 졸업하고 뛰어난 능력으로 프랑스 구국의 영웅이 되었다.

    30대 초반에 프랑스 황제로 등극해 유럽의 절반을 제패하고,

    교육, 종교, 문화, 법률 등 오늘날 프랑스의 초석을 남긴 인물이다.

    지난 세기 프랑스 위인열전에서 항상 1등의 자리를 고수한 위대한 인물이다.




    에디슨(Thomas Alva Edison, 1847~1931)


    미국의 발명가로서 저압의 전류를 발생시키는 원시적인 전지가 유일한 전원이던 전기산업의 초창기인

    1863년에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하여 1931년 죽기 전까지 전기시대를 여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축음기, 현대 전화기의 전신인 탄소송화기, 백열전구, 가장 효율적인 혁신적 발전기,

    최초로 상업화된 전등과 전력 체계, 실험적 전기철도, 가정용 영사기 등을 발명했다.

    개인적으로 또는 공동으로 1,093개의 특허를 얻어 세계기록을 세웠을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공업용 실험실을 세웠다.

    어렸을 때 청각장애를 일으켰는데, 청각장애는 그의 활동과 작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그가 많은 발명품을 만들게 된 동기가 되었다.

    그의 후기 발명품들은 초기의 것들만큼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80세에 이르러 웨스트오렌지에서 사망할 때까지 발명을 계속했다.

    토머스 에디슨은 후에 제너럴 일렉트릭을 건립하였다.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 1475~1564)


    이탈리아의 조각가, 건축가, 화가, 시인으로 피렌체 근교 카프레제에서 출생하여

    처음에는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의 공방(工房) 도제(徒弟)가 되었고,

    14세 때부터 메디치 가문의 보호를 받으며 베르트르드 디 조반니를 통하여 도나텔로 작풍을 배웠다.

    또 고대 조각도 연구하고, '계단의 성모', '라피타이족의 싸움', 을 제작했다.

    1496년 로마로 가서 1499년 성 베드로 대성당의 '피에타'를 완성했다.

    1501년 피렌체로 돌아와 '다비드'를 제작하고 팔라초 베키오 대평의회 회의실 벽화를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경작의 형태로 위촉 받아 '카시나의 전투'의 바탕그림 소묘를 그렸으나 미완성하였다.

    1505년 로마에 가서 교황 율리우스 2세의 묘묘(廟墓)의 주문을 받아,

    3층 건조물에 40체의 조상을 배치하는 장대한 계획을 구상하고 조상제작에 착수하였으나,

    율리우스 2세로부터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화 '창세기'(1508~12) 제작을 명받고 중단하였으며,

    피렌체에서는 산 로렌초 성당의 메디치가 묘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내의 '피에타' ,

    로마에서는 '모세'(성 베드로 인 빈콜리 성당)'노예'(루브르 박물관),

    다시 만년에 '론다니니의 피에타'(밀라노, 스포르차 미술관) 등을 제작하였다.

    화가로서 시스티나 예배당 정면벽화 '최후의 심판'(1536~41),

    바티칸 궁전 파올리나 예배당의 벽화 '바올의 개종''베드로의 순교'(1542~49)를 완성했다.

    건축가로서는 피렌체의 산 로렌초 성당 부속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설계(1524년 이후),

    로마의 카피톨리노 언덕의 정비 계획(1537년 이후), 성베드로 대성당 건조(1546년 이후) 등의 역사(役事)에 종사하였다.  

    미켈란젤로의 양식은 조각, 회화, 건축 각 분야에 걸쳐서 르네상스의 고전주의 완성에 기여하는 동시에,

    특히 후반생(後半生)에 있어서는, 내면적 정념 표출을 강조하는 육체 표현과 복잡한 구성으로, 마니에리슴, 바로크를 예고하고 있다.

    젊을 때, 사보나롤라의 사상과 피렌체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1530년대 이후 점차로 신비주의적 경향을 더한 사상 편력의 흔적이 많은 시나 서간 가운데 남아 있고,

    거의 500점에 이르는 데상을 포함한  그의 작품들과 함께 동시대는 물론, 후세에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노벨(Alfred Bernhard Nobel, 1833~1896)


    스웨덴의 폭발물 발명가. 공업화학자.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영향으로 발명에 관심이 많았다.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넣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고, 무연화약을 발명하여 특허권의 사용료를 받아 큰 돈을 벌었다.

    하지만 자신이 개발한 폭발물이 전쟁에서 무기로 사용되어 인명의 피해를 야기하는 데 상처를 받아

    인도주의적인 자선사업에 돈을 아끼지 않았으며,

    유언으로 재산의 많은 부분을 기금으로 남겨 노벨상(1901)을 제정했다.

       



    워싱턴(George Washington, 1732~1799)


    미국 독립전쟁(1775~1783) 당시의 혁명군 총사령관이었으며, 미국의 초대 대통령(재임 1789~1797)을 지냈다.

    워싱턴은 프렌치-인디언 전쟁에서 연대장으로 임명되었고,

    1차 대륙회의의 버지니아 대표 가운데 하나로 선출되었고, 이를 통해 그는 정치 무대에 들어섰다.

    이후 제2차 대륙회의에서도 버지니아의 대표로 뽑힌 그는 아메리카 군을 지휘하는 총사령관으로 선출되었다.

    총사령관이 된 이후 워싱턴은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요크타운에서 콘월리스가 이끄는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워싱턴은 제헌의회의 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선거인단의 만장일치로 1789년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국민적 통합의 상징으로서 건국의 기초를 공고히 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이탈리아 미술가, 고학자, 사상가, 건축가.

    15~16세기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예술가이며, 주요 작품은 모나리자최후의 만찬’.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태어나 15세 때부터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도제가 되어 회화, 조각 등 여러 분야에서 훈련을 받았다.

    밀라노 대공의 후원으로 17년간 밀라노에 머무르면서 최후의 만찬등의 대작을 그렸다.

    회화, 건축, 기계, 해부학 등에서 방대한 업적을 남겼다.




    안데르센(Anderson hans christian, 1805~1875)


    덴마크 작가, 시인.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는 유니크한 그의 많은 작품들

    (인어공주, 미운오리새끼, 벌거숭이 임금님 등)은 세계 수십 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다.

    작은 노벨상이라도 불리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2년마다

    IBBY(International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 : 스위스에 본부를 둔, 책과 아이들을 맺어주는 역할을 하는 비영리 단체)

    아동문학에 대한 지속적인 기여를 한 작가에 수여하는 국제적인 상이다.

    덴마크의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이름을 따 지었고 수상자는 덴마크 여왕으로부터 금메달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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