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제주 너븐숭이 4.3기념관
    국내 나들이/제주도(濟州道) 2018. 11. 29. 04:30

    북촌 너븐숭이 4.3기념관


    너븐숭이란? 넓은 돌밭, 널찍한 돌밭을 뜻하는 제주말(濟州語)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북촌33 (북촌리)






    너븐숭이 기념관 개요


    제주 4.3의 상징인 조천읍 북천리. 학살과 강요된 침묵,

    그리고 '울음마저도 죄가 되던' 암울한 시대를 넘어 이제 북촌리는 진실과 화해, 평화와 상생의 새 역사로 나아가고 있다.

    정부는 이곳 너븐숭이 일대에 국비 약 158천만원을 들여

    위령비, 기념관, 문학기념비, 관람로 시설 등을 마련하여 후세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게 하였다.

    북촌리4.3희생자유족회에서는 이곳에서 매년 음력 1219일 희생자들에 대한 위령제를 엄숙하게 지내고 있다.





    제주 4.3사건 희생자

    1993년 비로소 공개적으로 조사하여 1차 희생자 426명에서 2차 희생자 479명으로 변동되었다.

    희생자 숫자는 아직도 유동적이다.




    제주4.3유적지(빌레못굴)


    위치 : 제주시 애월읍 어음2706번지

    이곳은 1949116, 토벌대와 민보단이 합동으로 대대적인 수색작전에 의해 동굴이 발각되면서

    이 속에 숨어 있었던 애월면() 어음,납읍,장전리 주민 29명이 집단학살 당하였고

    동굴 속에서 나오지 못해 굶어죽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또 다른 어머니와 딸 4구가 발견된 비극의 현장이다.

    토벌대는 전날(1949115) 봉성리 구몰동이 무장대에 의해 습격을 당한 후

    토벌대와 민보단이 대대적인 수색을 벌여 빌레못굴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그 당시는 겨울이어서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동굴 입구를 찾은 토벌대는 굴 속에 숨어 있는 주민 29명을 집단총살하였다.

    또한 남자 아이의 발을 잡고 휘둘러 돌에 메쳐 죽이는 참혹한 일도 일어났으며

    이 아이의 어머니와 젖먹이 여동생은 동굴 안으로 깊숙이 숨어들었다가 어둠속에서 길을 잃어 굶어죽은 시신도

    1971313일부터 15일까지 빌레못동굴 탐사반에 의해 발견되어 유족에게 인도되었다.

    이 빌레못굴은 총 길이 11,749m로 세계 최장의 용암동굴이며, 천연기념물 제342호로 지정되어 있다  






    북촌리에서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죽이지 마라 죽이지 말라고 살려달라고

    애원성 보다 빠른 속돌로 이미

    발사된 총탄은 어김없이 산목숨에 꽃혀

    죽음의 길을 재촉한다

     

    시체 산 피 바다

     

    수백의 죽음 속에서

    살아남은 이의 내일은

    또 다른 죽음

    울음도 나오지 않는

     

    원한이 사무쳐 구천에 가득할 때

    젖먹이 하나 어미 피젖 빨며

    자지러지게 울고

     

    더 이상 죽이지 마라

    너희도 모두 죽으리라

     

    강요배작가의젖먹이작품에 쓰여진 시

     








    제주 4.3사건이란?


    19473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 서청(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4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9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















    아이고 사건


    마을에서 세칭 아이고 사건이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1954123일 벌어졌다.

    이날 주민들은 초등학교 교정에서 한국전쟁 전사자 김석태의 고별식과 속칭 꽃놀이를 하던 중

    "오늘은 6년 전 마을이 소각된 날이며, 여기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지 6주년이 되는 날이니,

    당시 희생된 영혼을 위하여 묵념을 올리자"는 한 주민의 제안에 따라 묵념을 하게 됐다.

    그 때 설움에 북받친 주민들이 대성통곡을 한 것이 경찰에 알려져

    "다시는 집단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서야 풀려나올 수 있었다. 눈물마저 죄가 되던 시절이었다.







    북촌리의 진상규명운동


    19604.19혁명 후 국회 차원의 양민학살 진상규명 사업이 벌어지자 북촌리 주민들은 희생자신고서를 작성해서 제출했다.

    그러나 곧 5.16이 발생해 진상은 다시 묻히고 말았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4.3사건에 대한 논의는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다.

    북촌리에서는 1993년에 이르러서야 마을 원로회를 중심으로 4.3희생자 조사에 나섰다.

    6개월 동안 옛 지적도까지 동원한 1차 조사 결과 426명의 사망자 명단을 확인, 공표했다.

    그러나 19942차 조사에서는 숫자가 479명으로 불어났다.

    제주4.3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에 신고된 북촌리 4.3희생자 수는 총 462명이고,

    북촌리위령비에는 443위의 희생자가 각명되어 있다. 이 숫자는 계속 유동적이다.




    현기영(玄基榮) 순이삼촌(順伊三寸)

     

    아무도  못하던 시절, 문학적 양심으로 고향의 아픈 역사에 대한 펜대를 들이댄 작가가 현기영이었다.

    그는 북촌리의 대학살을 다룬 작품 '순이삼촌' 1978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발표하면서 

    침묵의 금기를 깨고 논의의 한복판으로 끌어내었다

    그러나 작가는 4.3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이유로 정보기관에 연행되어 고초를 겪었다.

     

    "한 공동체가 멜싸지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있는가 말이야. 이념적인 건 문제가 아니야.

    거기에 왜 붉은색을 칠하려고 해? 공동체가 무너지고, 누이가 능욕당하고, 씨멸족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항쟁'이란 당연한 거야.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서 항복하고 굴복해야 하나?

    이길 수 없는 싸움도 싸우는 게 인간이란 거지"


    - 현기영 제주작가’ 22-

     












    너븐숭이 4.3위령성지 표석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