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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응인영정 및 재실유물일괄(韓應寅影幀 및 齋室遺物一括)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8. 12. 14. 20:30

    한응인영정 및 재실유물일괄(韓應寅影幀 齋室遺物一括)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3호 -



    유촌문(柳村門)




    백졸재사(百拙齋祠)





    충정재(忠靖齋)






    한응인 영정(韓應寅 影幀)


    비단에 그려진 이 초상화는 91.5cmx164cm 크기로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유행한 전형적인 공신도 형식의 작품이다.

    오사모(烏紗帽)를 쓴 정장 관복으로 얼굴과 몸을 왼쪽으로 향한 전신좌안칠분면의좌상(全身左顔七分面椅坐像)이다.

    두 손을 관복 속에 결한 단정한 모습을 보인다.

    사모가 높고, 흉배는 파도 위에 쌍학(雙鶴)이 나는 형상에 금채(金彩)를 가하여 화려한 분위기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며,

    각대는 1품 이상만 두르는 서대(犀帶)를 갖추고 있어 문관 종1품인 우찬성때의 모습으로 생각된다.

    얼굴은 가는 붓으로 살아있는 듯이 이목구비를 섬세하게 그렸으며, 눈썹과 수염은

    훈염법(움폭한 곳은 붓질을 거듭하여 어두운 느낌을 주고, 도드라진 부분은 붓질을 덜 하여 밝은 느낌을 주는 그림 기법)을 사용하였다.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유행한 그림형식으로, 전형적인 공신도 형식을 따르고 있다.







    한응인영정 및 재실유물일괄(韓應寅影幀 齋室遺物一括)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53


    백졸재 한응인(百拙齋 韓應寅, 15541614)은 조선 선조대(宣祖代)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주이다.

    네 차례나 명(明)에 다녀왔으며,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보호하라는 선조유교칠신(宣祖遺敎七臣)의 한 사람이다.

    예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오르고 평난공신(平難功臣)을 비롯해 네 번이나 공신에 오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광해군 5(1613)에 계축옥사(癸丑獄事)에 연루되어 관직을 박탈당하고

    광주에서 지내다가 이듬해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이 초상화는 살아있는 듯한 안면묘사, 꼼꼼한 필치의 표현기법, 안정감 있는 구도 등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 유행한 전형적인 화풍을 보이는 공신 그림이다.

    사당 안에는 초상화와 함께 17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나무로 만들어 검정 흑칠을 한 제사 도구가 여러 점 있다.

    죽은 이의 위패를 모셔두는 의자처럼 생긴 교의(交椅) 2, 죽은 이의 위패를 넣어두는 궤인 주독(主櫝) 1,

    신주(神主) 1, 제사상 2, 향로상(香爐床) 1, 모사상((茅砂床) 2점이 남아 있다.

    이들 제사도구는 조선 후기 목제도구 연구에 기준이 될 만한 중요한 자료이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충정공길 59 (사사동 새말) 청주한씨 충정공파 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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