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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계사(淸溪寺)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호
    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9. 1. 5. 05:21

    청계사(淸溪寺)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


    청계사의 정확한 창건 연도는 확실히 알 수가 없다.

    봉은사의 사적을 기록한 봉은본말사지(奉恩本末寺誌)에는 신라 때 창건되었다는 내용이 있으나 구체적 근거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사찰 경내에 있는 석등과 부도 일부는 신라 때 것으로 추정된다.

    청계사에 관련된 기록은 대체로 고려 후기가 되면서 집중적으로 보인다.

     1284(충렬왕 10) 당대의 세력가였던 평양부원군(平壤府院君) 조인규(趙仁規, 1227~1308)

    막대한 사재를 들여 중창하면서 청계사가 역사적으로 크게 부각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청계사는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 경허 선사의 출가자로 경허 선사의 선맥을 이은

    만공, 금오, 월산 선사의 체취가 경내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조선시대 세종 때 1차 중창, 숙종 때 2차 중창을 거쳐 사격을 유지해 내려오다가

    지난 2001년 종상스님이 주지로 부임해오면서 사격을 일신하고 진입로 불사를 마무리해 대찰의 면모를 갖췄다.

    현재는 성행스님이 주지를 맡아 경허, 만공, 금오, 월산 선사의 부도를 조성하는 등

    회주종상스님의 지도 아래 민족 문화사적 위상제고를 위하여 경허 스님 등 청계사와 인연을 가졌던 한국불교의 빛나는

    고승 4분의 부도탑 조성을 위하여 선종 종찰로써 명실상부한 한국 선불교 중흥 본찰로 거듭나게 되어 호국안민은 물론

    그 위업을 길이 계승하고 후손들의 정신교육의 산실로서 지역사회의 역사문화교육의 산 현장이 되고 있다.

    사찰 경내에는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청계사 동종(보물 제11-7), 종각(鐘閣), 삼성각(三聖閣), 지장전(地藏殿),

    산신각(山神閣), 수각(水閣), 봉향각(奉香閣), 대방(大房) 등과 1999년 조성한 와불(臥佛) 등이 자리잡고 있다.


    경기도 의왕시 청계로 475 (청계동)

     













    극락보전(極樂寶殿)


    경내 가장 뒤쪽 중심에 자리잡은 극락보전은 팔작지붕에 앞면 3, 옆면 2칸의 규모를 하고 있다.

    기단부는 최근에 쌓은 것이지만 중수할 때 대들보에서 庚子 三年 三月'이라는 글씨가 확인되어 1900(광무 4)에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지붕의 포작은 익공식이며, 처마가 이중으로 된 겹처마로 되어 있다.

    앞면에는 각각 4분합의 세살문이 있다. 전각 외부의 벽화로는 수행자가 도를 깨우치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아 헤매는 것으로

    상징적으로 표현한 심우도(尋牛圖) 10폭이 채색 없이 수묵화(水墨畵) 형태로 그려져 있는데

    현재 필선이 매우 흐려져 있어 자세히 알아보기 어렵다.

    안에는 유리장 안에 모셔진 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후불탱, 그리고 신중탱 등이 봉안되어 있다.

    외부 처마 아래에 걸린 극락보전(極樂寶殿) 편액은 도서와 관지가 없어

    작자와 쓴 시기를 알 수 없지만 글씨로 보아서 조선 후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해서체의 글씨가 별 다른 꾸밈없이 단정하면서 힘이 있어 화려함보다는 내실을 느끼게 한다.






    삼성각(三聖閣)


    맞배지붕에 앞면과 옆면 각 1칸씩의 규모로 근래에 지었다.

    삼성각 편액은 근래에 전각을 지으며 함께 쓴 글씨다.





    청계사 와불(淸溪寺 臥佛) 


    청계사 극락보전 오른쪽에 광장처럼 넓은 대지가 있고 여기에 거대한 와불상(臥佛像)이 봉안되어 있는데,

    특이하게도 자그마한 자갈들을 모아서 조성한 이 와불상은 길이 15m 높이 약 2m

    작은 돌을 차곡차곡 모자이크식으로 정성스레 쌓아서 만든 와불은 청계사의 명물이 되었는데,

    1997년 지명 주지가 봉안하여 1999년 완성하였다.   






    지장전(地藏殿)


    지장전은 앞면 3, 옆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근래에 지은 건물이다.

    안에 지장보살입상이 봉안되어 있으므로 지장전이라고 부른다.




















    우담바라 핀 청계사




    청계산 청계사(淸溪山 淸溪寺)


    청계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산 곳곳에 상서로움이 잇고 법신을 빚어내는 정기가 있으니 하늘이 숨겨 놓은 영부(靈府)이다.

    청계사는 신라 말에 창건된 크게 중창된 유서 깊은 가람으로 제불(諸佛) 보살이 중생의 비원(悲願)에 따라 머물던 옛 부처의 도량이다,

    여기서 우리 조상(祖上)들은 생멸(生滅)의 슬픔을 뛰어넘는 무생(無生)의 지혜를 닦아

    천지(天地)와 더불어 한 몸이 되었고 안심입명(安心立命)을 얻었다.

    고려 1284(충열왕 10) 불심이 돈독한 조인규 거사(趙仁規 居士)의 원력에 의해 중창(重創)되어 원찰을 삼았고,

    이때 사세가 확장되고, 금자 법화경 사경과 많은 불화(佛畵)가 제작되어 봉안되었으며, 1880년 음곡스님에 의해 중건되었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조사의 혜맥을 전승한 근대 선종의 중흥조인 경허선사가 출가 득도하여

    이 땅에 꺼져가는 혜등을 밝혔고, 만공선사가 주석하여 선종의 지평을 넓혔다.

    누구나 절 밖에서 절 안으로 들어오면, 마음은 깨침의 세계를 열게하여 진리의 원천에 돌아가게 하는,

    부처님의 지혜와 가피가 충만한 곳이다.

    누구나 이 곳에서 원과 뜻을 세우면 한결같이 진미(眞味)를 맛보고 실리(實利)를 거두어 깨달음에 이르게 했으니,

    이 모두 청계사(淸溪寺)가 지닌 건곤(乾坤)의 덕화(德化) 때문이다.

    극락보전(極樂寶殿)에 봉안된 주불(主佛)과 관세음보살은 신통자재한 신령함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지난 2000106일 관세음보살 얼굴에는 삼천년 마다 한 번 피는 우담발화가 스물한 송이나 피었으니

    이것은 관세음보살이 우리 곁에 현신함이요, 민족의 성지임을 깨닫게 한 길상(吉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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