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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 국보 제83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9. 1. 8. 04:4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함께 국내에서는 가장 큰 금동반가사유상이다.

    1920년대에 경주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나 근거가 없으며, 머리에 3면이 둥근 산 모양의 관()을 쓰고 있어서

    삼산관반가사유상(三山冠半跏思惟像)으로도 불린다. 높이 93.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류가 창조한 가장 빼어난 미소, 압도적인 깨달음.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 국보 제83


    서양미술에서는 여성의 나신을 통해 시대의 아름다움을 담아내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비너스다.

    서양미술사 첫 장에 등장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는 현재 기준에 비추어보면 결코 아름답다고 하기가 어렵다.

    오스트리아 빌렌도르프(Willendorf)에서 발견된 이 돌조각은 짜리 몽땅하고 둥뚱하기까지 하다.

    구석기시대 것으로 그 시대 아름다움인 풍요와 다산을 나타내고 있다.

    그런가하면 그리스시대의 아름다움은 이상적인 비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황금비(1:1.618)나 팔등신 비례의 발견은 그런 노력의 결과다.

     리스시대 조각이나 건축물은 이런 비례를 기준 삼아 만들어졌기에 이상적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밀로의 비너스(그리스 밀로스 섬에서 발견된 조각 작품)’

    그 시대 미의 척도인 이상적 아름다움을 담아낸 대표적 작품이다.


    삼국시대에 태어난 세계적인 걸작

    동양권에서는 불상을 통해 시대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불상은 부처의 상을 인물에 담아내는 것으로 서양의 형상 문화의 영향을 받아 나타났다.

    진정한 세계국가 건설을 꿈꿨던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 때 인도 북부 간다라 지역에 그리스의 형상 문화를 심었고,

    그 결과 나타난 것이 간다라 불상이다. 그래서 초기 불상은 서양인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다.

    삼국시대 우리나라 불상은 풍만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당시 아름다움의 기준이었던 당나라의 영향이다.

    당나라의 미감은 글래머 스타일이었고, 당대 최고 미인으로 꼽혔던 양귀비는 뚱뚱한 몸매를 지닌 여인이었다.

    이 시기에 태어난 명품이 있다.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그것이다.

    한쪽 다리를 무릎에 올리고 앉아서 생각에 잠긴 미륵보살을 동으로 만들고 금칠 한 조각이다.

    같은 이름의 국보 제78호 반가사유상도 아름답지만, 필자 사견으로는 국보 제83호가

    지금까지 인류가 창조한 조각 중 가장 빼어난 작품의 반열에 올려놓아도 결코 손색이 없다는 생각이다.

    반가사유상은 6~7세기 100년간 많이 만들어졌는데, 미륵보살을 모델로 삼은 이유는 당대 시대정신과 연관이 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통일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전쟁을 많이 치르던 시절이라 백성의 삶은 늘 불안정했을 것이다.

    불확실한 앞날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미래의 밝은 세상을 상징하는 미륵신앙의 유행을 불러 왔다.

    불력으로 나라를 지키고 자신도 의지하려는 심리가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집중 제작으로 이어졌다.

    국보 제83호 반가사유상은 누가 어디서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백제나 신라 중 어느 나라인지 확실한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장식성보다는 예술적 감각이 앞선다는 점에서는 백제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섬세한 조형성이 출중한 것으로 보면 신라가 고향일 수도 있다.

    그 숱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행방이 드러난 것은 1912년에 이르러서다.

    국립중앙박물관 입수 기록에 의하면 1912년 이왕가박물관이 일본인 골동품상으로부터

    2,600(현재 가치로 대략 26억 원)에 사들였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상당한 금액이었던 것으로 보아 국제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던 것 같다.

     

    우스꽝스러운 모습 속에 숨어있던 세련되고도 순수한 아름다움

    이 작품을 처음 구입했을 때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고 전한다.

    불상 전체가 호분으로 두껍게 칠해져 있었으며,

    얼굴에는 먹으로 표정까지 그렸는데 꼬불꼬불한 수염에다 입술은 빨갛게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오래되고 가치가 높은 귀한 불상을 안전하게 보존하기 위한 기법 중 하나다.

    이 작품은 몸체가 풍만하지는 않아도 충만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생명력 넘치는 어린 아기 몸에서 선을 따왔기 때문이다.

    같은 느낌을 주는 선으로는 동서양 고대 건축의 배흘림기둥이 떠오른다.

    서양회화사상 가장 독창적이며 아름다운 누드화로 평가되는 모딜리아니의 선이나

    이중섭이 그린 어린아이에서도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생각이라는 추상적 주제를 인체로 담아냈다.

    567천만 년 후 세상에 나타나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보살이 윤회의 마지막 단계인

    도솔천에서 다시 태어날 먼 미래를 생각하며 명상에 잠긴 모습을 형상화했다.

    즉 생각하는 모습을 사실적 형상을 바탕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모나리자의 미소를 뛰어넘는 신비한 미소, 유려한 선으로 단순화시킨 세련된 형태,

    손가락이나 발가락 등에서 보이는 섬세한 움직임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시대를 넘어서는 감동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무엇보다도 맑고 청아한 생각의 이미지가 잘 나타나 있다. 그런 생각은 걸림이나 막힘이 없는 정신 상태를 말한다.

    한마디로 맑은 생각이다. 군더더기 없이 물 흐르는 듯한 형상으로 이런 생각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 작품은 입체인 조각임에도 평면 회화처럼 선의 흐름이 잘 보인다.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선의 움직임이 빼어나기 때문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변형시킨 형태인데도 과장이 보이지 않는다.

    절제미의 진수다. 형태를 설명하는 선들은 거의 직선에 가깝다. 정제된 곡선이기 때문이다.

    힘을 빼고 흘러내린 선이다. 그렇다고 힘이 선에서 빠져나가지는 않는다. 손가락이나 발가락 끝에서 맺히게 만들었다.

    선의 힘을 마무리에 두고 약간의 파격을 가하는 기술의 백미를 보여준다.

    이를테면 뺨에 댄 손가락이나 무릎에 올린 발가락에서 보이는 파격적인 움직임이 그것이다.

    그런 움직임은 입꼬리나 눈꼬리에서도 보인다. 이런 파격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네 기와집 추녀의 선이나 버선코 또는 한복 소매의 선을 들 수 있다.

    자유분방하게 무장해제 시킨 정신이 아니라 절도와 질서 속에 들어선 바른 정신의 상태다.

    거기에는 인간이 지어내 가려놓은 생각의 구분이나 경계가 없다.

    명상을 통해 도달한 해탈의 경지이기 때문이다. 이를 미소로 담아낸 셈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미술에 특별한 조예가 없는 사람이라도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이게 바로 예술의 힘이다.

     

    생각이라는 주제로 창안한 두 점의 조각 예술

    이 작품은 당시 일본에도 영향을 주어 거의 똑같은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아스카시대에 만들어진 일본 국보 제1호인 목조미륵보살반가상(교토 고류지)으로,

    독일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보고 한눈에 반했다는 바로 그 조각이다.

    나무로 만든 것인데, 우리의 금동불에 비하면 한 수 아래로 보인다.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고 다소 딱딱해 보인다.

    야스퍼스가 원본인 우리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을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생각하는 사람의 주제는 19세기 프랑스 조각가 로댕에 의해 세계적으로 알려졌는데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보다 자그마치 12백여 년 후에나 제작된 것이다.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매우 사실적인 모습의 조각상이다. 그래서 사실주의 조각의 진수로 평가되고 있다.

    고뇌에 가득 찬 인간을 실감나게 표현한 솜씨가 일품인데, 단테의 신곡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했다고 한다.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 꼭대기에 앉아 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지옥에서 고통 받는 많은 사람을 보고 고뇌에 찬 인간을 표현했다.

    지옥은 어디일까. 사실주의자인 로댕의 기질에 비추어보면 아마도 현실일 게다.

    그러니까 온갖 현실적 고통에 시달리는 인간의 생각을 생생하게 담아낸 셈이다.

    이 작품은 지옥의 문 상단부에 앉은 인체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가 후에 원본보다 조금 크게 독립된 조각으로 다시 제작했다.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나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 생각이라는 주제를 시 공간을 달리하며 창작한 조각 예술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은 로댕 작품이 예술성 높은 조각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대접받는 동안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불교적 유물 정도로나 알려져 왔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서구 추종적 미술 교육 탓이리라.

    글 전준엽(화가)


    문화재사랑 2019년 1월, 통권 제170호(문화재청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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