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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덕주산성 덕주루와 학소대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9. 2. 12. 22:30
제천 덕주산성 덕주루와 학소대
덕주산성 덕주루(德周山城 德周樓)
덕주산성 덕주루(동문)
충청북도 제천시 월악산의 남쪽에 있는 이 산성은 돌로 쌓은 통일신라 시대의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되어있다.
문경과 충주를 잇는 도로를 차단하는 전략적인 요충지이기 때문에 차단성의 기능을 지닌 이 성은 고
려 고종 43년(1256) 몽골군이 충주를 공략하자 갑자기 구름, 바람, 우박이 쏟아져 적군들은 신이 돕는 땅이라 하여 달아났다고 한다.
또 조선 말기에는 명성왕후가 흥선대원군과의 권력다툼에서 패배할 것을 예상하고 은신처를 마련하려고 이곳에 성문을 축조하였다고 한다.
둘레가 32,670척(9,800m)에 이르렀던 성벽은 거의 무너졌으나,
조선 시대에 쌓은 남문(월악루), 동문(덕주루), 북문(북정문)의 3개 성문이 남아 있다.
남문은 동창으로부터 문경으로 통하는 도로에 무지개 모양으로 만든 홍예문으로 되어있고,
좌우를 막은 석벽은 내외 겹축으로 길이가 100간이다.
덕주골 입구에 있는 동문은 남문과 비슷하며,
새터말 민가 가운데 있는 북문은 내외에 홍예가 있으며 홍예 마룻돌에는 태극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덕주산성은 내외 5겹의 성벽이 있는데 축조연대가 각기 달라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학소대(鶴巢臺)
월악산(月岳山) 깊은 골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이 감도는 곳으로 절벽을 따라 긴 덕주산성이 자리잡고 있으며,
덕주산성 동문과 학소대 위 망월대가 어우러져 일대 장관(壯觀)을 이룬 곳인데
덕주사 불경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지고 옛부터 학이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덕주산성 - 충청북도 기념물 제35호
신증동국여지승람 고려사 등 문헌의 기록에 의하면 덕주산성은 백제의 옛성(B.C 18~A.D 660)으로 전해오는 곳으로
신라 말 덕주공주의 피난처이자 덕주사를 창건한 곳이며 경순왕이 고려 태조에게 나라를 바치러 갈 때 머물었던 곳이다.
고려 고종 43년(1256년) 몽고병의 침입으로 충주 사람들이 이곳에서 난을 피하다가
월악산신의 도움으로 몽고군을 물리친 산성으로 둘레가 32,670자로 이를 포백척으로 환산하면
약 15Km가 넘으며 4개의 곽을 이루고 있는 특이한 산성으로 충청지역 최대 규모의 차단성 산성이다.
덕주산성이 피난처로 적합한 지리적 조건
산골짜기의 험요함,
사철 마르지 않는 물이 흐르는 긴 계곡과 풍부한 수량,
풍부한 임산자원,
영호남을 오가는 주요한 교통로에 위치
제천 덕주산성(堤川 德周山城) - 충청북도기념물 제35호
이 산성은 월악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상덕주사를 중심으로 하여 그 외곽을 여러 겹으로 둘러쌓은 석축 산성이다.
상덕주사의 외곽을 둘러 싼 산성(내성으로 제1곽), 상·하 덕주사를 감싼 중성(제2곽)과 그 외곽으로 하성(제3곽)이 있으며,
송계 계곡인 월천의 남쪽을 막아 쌓은 남문과 북쪽의 북문을 이루는 관문형식의 외곽성(제4곽) 등 네 겹으로 이루어진 큰 규모의 석성이다.
고려 고종 때 몽고의 침입 시 월악대왕의 가호와 월악신사 등과 관련한 항몽의 유적지이기도 하다.
조선 중종 때 내성을 축성하고, 임진왜란 때에도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 말기에는 명성황후와의 관련이 있는 등 역사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대표적인 사적이다.
최근에 남문의 문루를 복원하였으며, 성벽도 일부 보수하고 있다.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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