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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헌영정(晦軒影幀) - 국보 제111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9. 7. 31. 04:30
회헌영정(晦軒影幀) - 국보 제111호
고려 중기 문신인 회헌 안향(1243∼1306) 선생의 초상화로 가로 29㎝, 세로 37㎝의 반신상이다.
안향은 고려 원종 1년(1260)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하였으며,
여러 차례에 걸쳐 원나라에 다녀오면서 주자학을 우리나라에 보급한 인물로 우리나라 최초의 주자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림의 화면은 상하로 2등분되어 위에는 글이 쓰여 있고 아래에는 선생의 인물상이 그려져 있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왼쪽을 바라보며 붉은 선으로 얼굴의 윤곽을 나타내었다.
옷주름은 선을 이용하여 명암없이 간략하게 처리하였다. 시선의 방향과 어깨선에서 선생의 강직한 인상이 보인다.
소수서원에 있는 이 초상화는 선생이 세상을 떠난지 12년 후인 고려 충숙왕 5년(1318) 공자의 사당에 그의 초상화를 함께 모실 때,
1본을 더 옮겨 그려 향교에 모셨다가 조선 중기 백운동서원(후에 소수서원이 됨)을 건립하면서 이곳에 옮겨놓은 것이다.
회헌 안향 선생의 초상화는 현재 전해지는 초상화 가운데 가장 오래된 초상화로,
고려시대 초상화 화풍을 알 수 있어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귀중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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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 (내죽리) 소수서원 내
회헌(晦軒) 안향(安珦)
안향(1243~1306)은 고려(高麗) 후대(後代)의 명신, 학자로서 충렬왕대(忠烈王代)에 고려유학제거(高麗儒學提擧)가 되어
왕(王)과 공주(公主)에 호종(扈從)하여 원조(元朝)에 들어갔을 때에 《주자전서(朱子全書)》를 필사(筆寫)하여
주자학연구(朱子學硏究)를 시작하여 후에 경사교수도감사(經史敎授都監使)로 임명되어
유학을 크게 진흥하여 한국 주자학(朱子學)의 원조가 되었다.
그의 영정은 익재(益齋)의 영정보다 1년 앞선 연우(延祐) 5년(1318)-고려(高麗) 충숙왕(忠肅王) 5년에
왕명(王命)에 의하여 모사(摹寫)된 것이며, 반신상(半身像)인 점이 다를 뿐 역시 고고유사묘(高古遊사描)의 화법으로
30도 각도의 좌측상(左側像)으로 되어 있으며
그의 사자(嗣子) 안우우(安于瑀) 찬기(贊記)가 있으므로 유래가 확실하여 고려의 초상화로서 쌍벽을 이루고 있다.
현재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조선 중종(中宗) 37년(1542)에 풍기군수(豊基郡守) 주세붕(周世鵬)에 의하여
안향이 소시(小時)에 독서한 숙수사(宿水寺)의 기지(基址)인 백운동에 사당을 세워서
안향의 장학(奬學)의 유풍(遺風)을 흔모(欣慕)케 하였으며
중종 38년(1543)에는 회헌묘전(晦軒廟前)에 서원을 세워서 유생수학의 도장을 마련하였다.
이후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건의에 의하여 소수서원사호(紹修書院賜號), 사액(賜額)으로서 서원의 효시(嚆矢)를 이루었다.
안향의 영정(影幀)은 순흥향교(順興鄕校)에 안치(安置)하여 내려오다가 세조 3년 정축(世祖 三年 丁丑) 이보흠(李甫欽)등의
모란(謀亂)에 의하여 부(府)가 폐지(廢止)된 후로는 한양(漢陽)의 안씨종가(安氏宗家)에 이안(移安)되었는데
종손(宗孫) 전주서(前注書) 안정(安珽)이 입묘(立廟)를 듣고 이것을 여기에 이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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