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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화산 반야사(白華山 般若寺)
    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19. 8. 29. 04:30

    백화산 반야사(白華山 般若寺)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720(성덕왕 19) 의상(義湘)의 십대제자 중 한 사람인 상원(相源)이 창건하였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 있다.

    그 뒤 수차례의 중수를 거쳐서 1464(세조 10)세조의 허락을 얻어 크게 중창하였다.

    백화산(白華山)이란 이름은 티 없이 맑고 밝은 산이라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반야사의 아름다운 풍광은 거대한 백화산과 더불어 구불구불 흐르고 있는 석천과 어우러져 만들어졌다.

    사찰을 지나 석천을 따라 올라가면 반야사의 설화와 관련된 영천(靈泉)이라 불리는 곳이 나타난다.

    이 영천의 오른편으로는 절벽을 따라 계단을 한참을 오르면 망경대(望景臺)라 불리는 곳에 문수전(文殊殿)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요사 뒷 산에는 수만년동안 흘러내린 파쇄석이 산 허리에 쌓여 자연스럽게 호랑이 형상을 이루어 

    높이가 80m, 길이는 약 300m로 파쇄석호상(破碎石虎像)이 문수도량의 산신으로 화현하고 있다.

    경내의 현존하는 유물과 전각으로는 삼층석탑, 대웅전, 지장전, 극락전, 문수전, 산신각,

    범종각, 요사, 적묵당, 심검당(종무소.공양간), 백화정사 관음연지 등이 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백화산로 652 (우매리) 대한불교조계종 반야사

     



    영험한 기도도량의 신비! 불법을 옹호하시는 산신령(호랑이) 출현하시다.




    백화산 반야사 일주문(白華山 般若寺 一柱門)








    반야사와 호랑이형상




    기와불사의 공덕


    기와 한 장 시주한 공덕으로 집 없는 업보를 면하게 하고 무진겁래로 지은 업장(業障)을 소멸하여

    세세생생토록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충만하여 모든 소원성취 된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범천에 태어나서 복을 얻는 7가지 공덕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스님들과 신도들이 거처하고 기도할 수 있는 방과 청사를 세우는 일입니다.

    부처님 당시 제자 중에 청충이라는 비구가 있었습니다.

    그는 전생에 장자 아들인데 길가에 작은 청사를 짓고 청상과 침대를 갖추어

    스님들과 길을 가다 지친 이들이 쉬어갈수 있게 하였으며 마실 것과 양식을 공양(供養)하였습니다.

    그는 그 공덕으로 지혜와 음식걱정을 하지 않는 복()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죽어서 천상에 태어나 편안한 삶을 살다가 부처님이 태어나시자 다시 인간세상으로 와서 부처님 제자가 되었답니다.

    탑이나 사찰을 세우는 일은 이렇게 큰 공덕이 있습니다.

    따라서 기와불사에 동참 하는 것은 자신의 작은 정성으로 탑이나 사찰을 세우는 대작불사에 같이 동참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와에 보면 연꽃 문양이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기와가 단순히 지붕을 덮는 도구가 아니라, 속세의 깨달음을 일깨우는 수행의 거울로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와에 연꽃 문양이 들어가게 된 유래는 당나라 때 혜초스님과 관계 있습니다.

    스님은 어릴 때 출가하여 경전을 외우는 것으로 수행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나라에서 법령으로 불교를 탄압하자 스님은 기와 굽는 공장에 가서 쓰지 않는 굴속으로 숨어들어가 피신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국가에서 다시 불교를 우대한다고 공표하자 스님은 굴속에서 나와 고향으로 가고자하였습니다.

    스님은 굴속에서 나온 뒤 기와 굽는 주인에게 내가 이 굴 속에서 피신하고 있는 동안 경전을 삼천번이나 외웠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이굴을 절대 기와 굽는데 쓰지 말고 깨끗이 청소를 하고 향을 피워 예배를 올리셔야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로 주인은 스님 말씀대로 기와를 굽지 않았고, 그 뒤로부터 기왓장에 깨달음을 뜻하는 연꽃무양이 들어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호랑이가 주석하는 절


    백두를 빠져나와 금강과 합류하면 그늘까지 푸른 계곡 오관이 뚫어진다.

    배롱향 퍼지는 도량 그 기운이 아름답다.

    눈으로 보이는 건 믿을 것 없다는데 뵈면서 믿게되는 오묘한 풍경 하나

    하이얀 꼬리를 치켜들고 하산 중인 호랑이




    절벽에서 문수지혜 꺼내어


    푸르른 바람따라 산길은 부드럽다.

    호랑이 미소따라 배려 또한 상서롭다.

    절벽에 돋은 문수도량 그 지혜가 자비롭다.

    삶이란 얽킴 설킴, 그 무늬에 놓이는 것

    요령껏 문수지혜 꺼내 쓰면 사는 것도

    진심의 속살을 키우는 비결 중 비결이다.








    반야사 대웅전(般若寺 大雄殿)




    반야사 지장전(般若寺 地藏殿)




    반야사 극락전(般若寺 極樂殿)


    반야사 극락전의 창건연대는 정확치 않으나 조선 후기의 건축물로 추정되며,

    내부에는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원래 반야사의 대웅전으로 건립된 건물이었으나, 1993년 현재의 대웅전을 새롭게 건립한 이후 극락전으로 이용하고 있다.

    현재 반야사 경내에서 가장 오래된 불전이다.





    반야사 산신각(般若寺 山神閣)







    반야사 배롱나무


    - 수종 : 배롱나무, - 지정번호 : 영동-13호, - 수령 : 500(지정일 기준), - 지정일자 : 1994. 8. 10.

    - 수고 : 8m. 7m, - 나무둘레 : 0.8m, 0,6m, - 흉고직경 : 1.5m, 1.2m,

    - 지정사유 : 반야사 창립(창립 270) 사찰내에 생립하고 있는 희귀 노거수임.

    - 나무특징 : 사찰내 마당에 양측으로 생립하고 있으며 좌측나무는 지상 1.0m 높이에서 흉고 20cm 정도의 5개로 갈라져 있음.




    반야사 삼층석탑(般若寺 三層石塔) - 보물 제1371


    이탑은 전형적인 신라 말과 고려 초기에 유행했던 단층 기단형 삼층석탑으로

    신라 문성왕(文聖王) 8년 반야사 창건(846) 당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대석(地臺石) 위에 1층 기단을 이루고 그 위에 탑 몸들을 올리고 있으며,

    상륜부(上輪部)에는 노반(露盤, 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

    복발(覆鉢, 노반위에 주발을 엎어 놓은 것처럼 만든 장식)이 올려져있다.

    2층탑신은 1층에 비해 급격히 낮아지고 있으며,

    1층의 지붕돌받침은 5단인데 2층과 3층은 4단으로 되어있다.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곳으로, 불상과 동일시되는 경배의 대상이다.

    전체 높이 315cm




    반야사 범종각(般若寺 梵鐘閣)





    문수전 가는 길


    위치 : 현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200m 올라가면 망경대와 영천이 나오고

    문수전은 망경대(일명 문수바위)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설화(說話)

    반야사를 문수도량이라 하는데는 세조대왕과 문수보살에 얽힌 설화에 기인한다.

    조선 제7대 임금인 세조대왕이 반야사를 중창하라 명하시고 회향법회를 열어 여러 보살님께 공양드리니

    문수보살이 사자를 타고 홀연히 나타나 영천으로 인도하여 목욕할 것을 권했다.

    이윽고 문수보살은 "왕이 불심이 갸륵하여 부처님의 자비가 따른다."말을 남기고

    사자를 타고 망경대 꼭대기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시다가 홀연히 사라졌는데

    왕이 목욕을 마친 후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설화가 유명하다.

    사찰 이름을 반야사라 한 것도 문수보살의 지혜를 상징한 것이다.


    문수도량 반야사  











    세조대왕 목욕하신 곳


    1464(세조 10)에 왕의 허락을 받아 크게 반야사를 중창한 뒤 세조가 대웅전에 참배했다.

    세조가 고질적인 피부병으로 고생하고 있을 때, 이때 문수동자가 세조를 절 뒤쪽 계곡인

    망경대 영천으로 인도해 목욕할 것을 권했고, 목욕을 한 뒤 피부병이 낫자 감격한 세조가 

    지혜를 뜻하는 반야(般若)라는 이름을 손수 써 하사했다는데서 유래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석천계곡(石川溪谷)


    황희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는 경북 상주의 옥동서원(玉洞書院)에서부터

    반야사를 지나 초강천 초입에 이르는 약 6.6km 남짓의 계곡이다.

    하천이라고 해도 될 만큼 폭이 넓으며,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울창한 숲들과 즐비한 기암절벽이 장관(壯觀)을 이룬다.

    황간에 이르러 초강천(송천)과 합쳐진다. 석천은 구수천(龜水川)이라고도 불리운다.


















    망경대 문수전과 영천 


    반야사에서 약 200m 동쪽으로 올라가면 계류면에 수십평 넓이의 반석이 깔려 있고 

    4면이 준봉으로 둘러싸여 녹수청산의 절경을 이루고 있는 이곳이 망경대.

    이 영천은 조선 제7대 세조대왕이 문수보살의 안내로 목욕을 한 후 병이 낳은 곳이다.

     

    문수동자(文殊童子)와 세조대왕(世祖大王)의 설화망경대(望景臺)란 이름은 옛날 문수동자가 용소(龍沼)라고 하는 곳에서

    목욕을 하고, 이절벽에 올라 사방을 조망하고, 아침 해돋이를 배례하였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망경대에는 세조대왕이 다녀간 역사가 있다.

    조선 세조 102월에 세조는 어가(御駕)를 속리산 복천사(福泉寺)에 옮겼다.

    전하(殿下)는 법주사와 복천사 중간에 있는 정결한 나무숲 계곡에서 목욕을 하였다.

    그리고 예조(禮曺)에 분부하여 복천사 산신각에 치성공양을 드리게 하였다.

    그런 다음 전하는 극락전에 들었다.

    전하는 이날부터 3일간 삼보에 공양하고 3일간에 걸쳐 법장을 개설하고 법회를 열게 하였다.

    세조는 본래 믿음이 두터워 평소에 유명한 고승 대덕들인 신미(信眉),수미(守眉),학조(學祖),스님 등과도 가까이 지낸 것으로

    조선불교사(金煥泰 著)는 기술하고 있다

    전하는 법회를 마치고 산속을 두루 돌아다닌 후 황간(黃澗)의 백화산 반야사로 갈것을 분부하였다.

    이는 신미(信眉)스님의 상주(上奏)에 따른 것이다.신미(信眉)스님 등은

    2년 전인 세조 94월에 백화산 반야사를 중창할 것을 상주하여 윤허를 얻어서 중창불사를 끝낸 다음이었다.

    그리하여 면모가 일신되고 가람의 규모가 웅장해진 반야사를 왕 자신도 한번 보고 싶어서

    신미스님의 청을 받아들여 이 절로 발길을 옮기게 된 것이다.

    반야사가 자리 잡고 있는 백화산 기슭의 좁은 골짝 마을은 대왕의 어가를 맞아 발칵 뒤집힐 수 밖에 없었다.

    위로는 종훈(宗勳)에서부터 의정부(議政府)와 육조(六曹)의 백료(百僚)들이 호종(扈從)을 하니

    충청감사, 경상감사와 본군(本郡)인 황간현감은 말 할 나위도 없고 영동, 상주, 청산, 보은 등

    인접한 수령들이 모두 반야사로 모여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천지개벽 이래로 이 골짜기는 처음 있는 법석이었다.

     

    전하는 가람의 중창된 모습을 두루 살피시고는 신미스님 등에게 위로하는 분부를 내리었다.

    신미스님 등도 기뻐서 어전에 부복하여 이 모두가 전하의 높으신 불심(佛心)에서 연유한 것이오니

    성은(聖恩)이 망극하오이다이렇게 아뢰었다.

    전하는 만족하였다.대웅전에 다녀서 물러나온 전하는 이 절에서도 법회를 열도록 분부 하였다.

    그러는 중에 갑자기 이적(異蹟)이 일게 되었다.

    사자 등에 올라선 어린 문수보살이 어전에 나타나서 나를 따르시오라고 왕에게 말하였다.

    전하는 기이하게 여기면서도 신령스러운 기운에 압도되어 시키는 대로 문수보살 뒤를 따라 나섰다.

    문수보살을 따라 망경대를 향해서 계곡을 거슬러 동쪽 계곡을 더듬어 올라  급기야 반석천인 영천(靈泉)에 이르렀다.

    전하는 문수보살이 시키는 대로 그 영천의 물을 떠서 마신다음 그 밑에서 기도를 하고 정성을 다하여 목욕을 하였다.

    상감마마의 불심이 갸륵하시기에 그 공덕으로 말미암은 부처님의 은총이나이다.”

    이렇게 외이고는 문수보살은 사자를 타고 사라져 버리었다.

    목욕을 하고 물밖에 나서니 영천위에는 연꽃이 만발하였다.

    전하는 황홀한 기분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한동안 그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었다.

    절로 돌아온 전하는 분부를 내리어 지필묵(紙筆墨)을 대령케 하였다.전하는 붓을 들고 단정히 꿇어 앉아 종이에 글씨를 썼다.

    그리고 이것을 반야사에 하사하였다고 한다.














    반야사 가는 길 / 白水 정완영


    숨어 핀 들국화가 별빛처럼 뜨는 골짝,

    반야사 가는 길은 싸리 꽃도 따라 오고,

    부처가 이 골에 산다고 물소리가 아뢰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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