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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감찬 생가 터(姜邯贊 生家 址) - 낙성대(落星垈)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19. 9. 21. 04:30

    강감찬 생가 터(姜邯贊 生家 址) -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


    이곳은 고려시대의 명장 인헌공(仁憲公) 강감찬 장군(姜邯贊 將軍, 948~1031)이 태어난 장소다.

    낙성대(落星垈)라는 이름은 강감찬 장군이 태어났을 때 큰 별이 떨어져 그 집으로 들어갔다는 일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세종실록에는 강감찬의 탄생 설화가 실려 있다.

    설화에 따르면 한 사신이 하늘에서 큰 별이 이곳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이를 기이하게 여겨 확인해보니 그 집에서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가 강감찬이었다고 한다.

    강감찬은 거란의 40만 대군을 물리쳐 나라를 위기에 구했는데,

    훗날 사람들이 강감찬의 공을 기려 생가 터에 삼층 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이 석탑은 1974년 여기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강감찬 장군을 위한 사당을 지어

    안국사(安國祠)라 이름을 짓고 주변을 정비하면서 그곳으로 이전되었다

    현재 이곳에는 낙성대 유허비(落星垈 遺墟碑)가 이곳이 강감찬 장군의 생가 터라는 것을 알려준다.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218-9

     






    강감찬장군 낙성대 유허비(姜邯贊將軍 落星垈 遺墟碑)




    낙성대 유허비문(落星垈 遺墟碑文)


    이곳 봉천동은 고려 때 금주고을로서 민족의 영웅 강감찬 장군이 탄생하신 곳이다.

    장군은 신라로부터 이곳에 옮겨와서 새 터전을 잡았던 오대조 여청의 후손이요.

    고려 태조의 건국공신 궁진의 아들로 태어났건만 그에게 이 같은 전설이 있다.

    어느 날 사신이 시흥고을을 지나다가 큰 별이 어느 집에 떨어지기로 찾아갔더니

    그 집 부인이 아들을 낳았으므로 이상히 여겨 거두어 기른 이가 바로 장군이요

    그날 밤 별이 떨어진 데가 이곳이라 뒷사람이 여기를 일러 낙성대라 이름했으며,

    장군이 탄생한 터를 영세에 전하여 잊어버리지 않게 하려고 3층석탑을 세웠다.

    뒷날 재상이 되었을 적에 송나라 사신이 와서 그를 만나보고 엎드려 큰절을 올리며

    내가 문곡성을 못 본지 오래더니 그 별이 여기에 있구나 하고 경탄했었다고 한다.

    그의 체구는 작고 초라했으며 문무를 겸전하여 나라의 튼튼한 초석이 되었고

    거란군의 침입을 무찔러 나라의 위급함을 막고 겨레를 살려낸 위대한 영웅이었다.

    그러나 장군께서 세상을 여의신지도 어느덧 900여 년이라 이 터에 잡초만이 우거져

    여기가 장군의 유적지인 것을 알지 못하므로 박정희 대통령이 특별한 분부를 내려

    유적지 곁에 새로이 광대한 터전을 잡고 석탑을 옮기며 사당과 온갖 시설을 갖추어

    민족의 영웅이 끼친 거룩한 터를 깨끗이 함으로써 겨레의 영광된 도장을 삼는 한편

    이로 낙성대 옛터에 유허비를 세워 본시 이 자리였음을 표하여 둔다


    서기1974610

    노산 이 은 상 글,   일중 김 충 현 씀

     







    향나무의 유래


    이곳 낙성대 유지에 강감찬 장군과 더불어 자랐다고 전하여지는 향나무(일명 강감찬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이 향나무는 1968226일 서울특별시 보호수(1-28)로 지정 관리되어 오다가

    1987년 고사(枯死)되어 서울특별시 고시 제801(1987.11.13.)로 지정 보호수에서 해제되었다.

    관악구에서는 19964월 낙성대유지 확장 조경공사를 하면서 고사된 향나무를 대체하는 나무를 심기로 하고

    같은 해 11월 경기도 고양시에서 수령 150년 된 나무를 구입, 이 자리에 이식하였다.

    이 향나무를 대체 식재한 이유로는 고사된 향나무의 영속성을 이어받아 강감찬장군 유허비와 함께

    장군이 태어나신 성역임을 표시하여 이 분의 높은 우국충절을 널리 후손들에게 기리기 위함이다.’라고 쓰여 있다





    강감찬 장군(姜邯贊 將軍)의 출생(出生)


    고려 구국의 영웅 강감찬(姜邯贊)은 서기 948년 금주(衿州, 현 관악구 봉천동 218-9)에서 탄생 하였다.

    초명은 은천(殷川)이고 뒤에 이름을 고쳐 감찬(邯贊)이다. ()는 전하지 않으나 호()는 울정(蔚亭)이고, 시호는 인헌(仁憲)이다.

    부친은 강궁진(姜弓珍)이며,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이다.

    강감찬의 탄생 일화는 다음과 같다. 어떤 사신(使臣)이 한밤중에 시흥군으로 들어오다가

    큰 별이 어떤 집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람을 보내어 찾아보게 하니, 마침 그 집 부인이 사내를 낳았다.

    이 말을 듣고 사신이 마음속으로 신기하게 여겨 그 아이를 데려다 길렀는데, 그가 바로 고려의 재상 강감찬이라는 것이다.

    또 다른 일화로는 그가 재상이 된 후에 송나라 사신이 그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가서 절하며 말하기를

    문곡성(文曲星)이 오래 보이지 않더니 여기 와서 있도다!라고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강감찬이 과거에 장원급제한 문인(文人)이면서도 거란을 물리친 무인(武人)으로 더 알려진 이유로

    문인과 무인의 의미인 문곡성(文曲星 : 文運을 주재하는 별), 염정성(廉貞星 : 刑殺을 주재하는 별) 두 별로 상징되고 있다.

    98336세에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예부시랑(禮部侍郞)이 되었고 1026년까지 43년간을 관직에 있었다.

    문인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기었고, 1030년에는 문하시중(門下侍中, 현재의 국무총리)에 임명되었다.

    101971세라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귀주대첩에 대승을 거두었고, 1031년에 84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는

    조정에서는 3일간 조회를 폐하고, 인헌이라 시호를 내리고 모든 관리에게 명령하여 장례에 참여하게 하였다.

    탄생하던 날 밤 별이 떨어진 데가 이곳이라 뒷사람이 여기를 일러 낙성대라 이름 했으며,

    장군이 탄생한 터를 후세에 전하여 잊어버리지 않게 하려고 3층 석탑을 세웠다.

    그의 시호와 전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대한민국 무공훈장 중에 인헌무공훈장이 있고 구축함에 강감찬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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