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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원릉 억새 절정기 능침 특별 개방
    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9. 11. 1. 04:00

    건원릉 억새 절정기 능침 특별 개방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는 가을 억새 절정기를 맞아

    201910 19일부터 11 17일까지 동구릉 내에 있는 건원릉(健元陵능침을 특별 개방했다.

    조선왕릉의 능침(陵寢) 문화재 보존관리 원칙에 따라 일반공개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2018년 시범 개방해 호응을 얻었던 건원릉에 대해서는 

    올해부터 다시 특별 개방하게 된 것이다.

    능침(陵寢)이란 왕릉의 주인이 묻혀 있는 곳을 말한다.

    건원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太祖 李成桂, 1335~1408) 능으로

    조선왕릉  유일하게 봉분이 억새로 덮여 있다

    이는 태조의 유언에 따라 고향인 함흥의 억새를 옮겨와 봉분을 조성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건원릉 능침 특별개방은 인터넷 및 전화 사전예약으로 

    1회당 40명씩(1 2, 10:30/13:30 1시간 소요안내 해설과 함께 진행됐다

    동구릉 관람료(주자료 별도) 내고 입장하면건원릉 관람은 무료다

    하지만 호응도와 관심도가 너무 높아 예약이 조기에 마감되었다.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 (인창동)

     

     

     

     

     

     

     

    구리 동구릉 건원릉 정자각(九里 東九陵 健元陵 丁字閣) - 보물 제1741

     

    구리 동구릉 건원릉 정자각은 태종 8(1408)에 건원릉과 함께 건립되었다.

    그 후 여러차례 수리를 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건원릉 정자각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의 제향을 모시는 상징성도 있지만,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중 길례(吉禮)의 단묘도설(壇廟圖說)과 비교할 때

    건립 당시의 기본적인 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조선왕릉 조영제도에 있어서 정자각의 표준이 된 건축물로서 그 가치가 크다.

     

     

     

     

    태조 건원릉(太祖 建元陵)과  신도비각(神道碑閣)

     

     

     

     

     

     

    능침에서 내려다 본 신도비각과 정자각

     

     

     

    청완 예초의(靑薍 刈草儀)

     

    해마다 한식(寒食, 동지로부터 105일째 되는 날)에는 구리시 동구릉(사적 제193호)에 있는

    태조 건원릉(健元陵)에 억새를 베는 청완 예초의(靑薍 刈草儀)가 열린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는 74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고향인 함경남도 함흥에 묻히길 원했다.

    그러나 왕릉은 도성에서 10리 밖, 100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왕실 규율에 따라 지금의 경기 구리시 동구릉에 묻혔다.

    이를 따르지 못한 태종은 부친의 무덤을 만들면서

    함흥에서 자라는 억새인 ‘청완’을 가져다 봉분에 심었다.

    억새가 듬성듬성해지자 씨를 받아 다시 무성하게 만들었고

    매년 한식에 억새를 베고 능을 손질했다.

    1년에 5~7차례 잔디를 깎는 일반적인 조선 왕릉과 달리

    건원릉의 억새는 자주 베면 죽을 수 있어서 1년에 한번 한식날에만 벤다.

    건원릉은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봉분이 억새가 심어져 있다.

     

     

     

     

    억새

     

    전국 산야의 햇빛이 잘 드는 풀밭에서 큰 무리를 이루고 사는 대형 여러해살이풀이다.

    줄기는 마디가 있는 속이 빈 기둥모양이고 곧게 서며 키가 1~2m 정도 된다.

    굵고 짧은 땅속줄기가 있으며, 여기에서 줄기가 빽빽이 뭉쳐난다.

    잎은 줄처럼 납작하고 길며, 가장자리가 까칠까칠하고 밑 부분에는 잎집이 줄기를 싸고 있다.

    뿌리를 망근(芒根)이라고 하며 약재로 사용한다. 사방용·사료용·관상용·약용으로 이용된다.

    옛날에는 지붕을 덮는 데 억새를 이용하였다. 약으로 쓸 때는 주로 탕으로 하여 사용하며, 술을 담가서도 쓴다.

    주로 부인과·호흡기 질환을 다스린다.

    관련질병: 감기, 대하증(백대하), 소변불통, 이뇨, 중독, 해수, 해열

     

     

     

     

     

     

     

     

     

     

     

     

     

     

     

     

     

     

     

     

     

     

     

     

     

     

     

     

     

     

     

     

     

     

     

     

     

     

     

     

     

     

     

     

     

     

     

     

     

     

     

     

     

     

     

     

     

     

     

     

     

     

     

     

     

     

     

     

     

     

     

     

     

     

     

     

     

     

     

     

     

     

    망주석(望柱石)

     

    망주석은 무덤 앞에 있는 혼유석(魂遊石) 좌우에 세우는 한 쌍의 8각 돌기둥으로서

    망두석(望頭石), 망주석표(望柱石表), 석망주(石望柱), 화표주(華表柱)라고도 한다.

    망자의 혼이 밖으로 놀러 갔다가 망주석을 보고 찾아오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과

    음양의 조화, 능의 위치표시, 왕릉의 생기보존 등 여러가지 해석이 있다.

    망주석에는 조선 초기에는 중간에 귀모양의 돌출부에 구멍을 만들어 놓았으나

    나중에는 세호(細虎, 작은 호랑이)라고 하는, 모습이 도롱뇽이나 다람쥐를 닮은 형상의 작은 동물을 조각하였다.

     

     

     

     

    망주석 세호(細虎)에 대하여

     

    후기의 좌우 망주석에는 세호가 새겨져 있다.

    기록에서 보면, 세종대왕실록134(세종32) ‘흉례의식·치장조에 의하면

     염의 아래에 귀를 만들고 구멍을 뚫는다고 기록되어 있고,

    세호라는 명칭이 언급된 것은국조상례보편, 國朝喪禮補編(1752)인데,

     ‘세호를 조각하여 왼쪽의 망주에는 오르게 하고 오른쪽의 망주에는 내려가게 하였다라고 언급되어 있다.

    , 임진왜란 이후의 기록에 보이는 명칭인 세호는 아직 새기는 목적과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 그 상징성을 정확히 알 수 없다.

    시대가 내려오면서 장식화되었고 조선 중기 이후에는 구멍이 막혀 있으며, 꼬리가 긴 동물의 형태로 조각된다.   

     

     

     

     

     

     

     

     

    태조 건원릉(太祖 建元陵)


    동구릉(東九陵, 사적 제193)에 있는 태조 이성계(1335~1408, 재위 1392~1398)의 무덤인 건원릉(健元陵)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후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정릉에 이어 두 번째로 조성되었다.

    태조가 승하한 이후 풍수지리 등을 고려하여 명당자리를 찾아 6천여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조성되었다.

    건원릉은 고려 왕릉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공민왕(恭愍王, 1330~1374, 재위 1351~1374)의 현정릉(玄正陵) 양식을 많이 따랐으며 내부는 석실로 만들었다.

    하지만 봉분 주위에 곡장으로 두르고 석물의 배치 등이 이전 고려 왕릉과 다른 독자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 부분도 있다.

    건원릉은 태종이 풍수지리설을 받아들여 조성한 동구릉은 뒷편 검암산(儉巖山)을 주산으로 하고

    좌우 지형이 청룡과 백호의 산세를 하고 있으며 남쪽의 안산을 바라보도록 능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에는 잔디가 아닌 억새풀로 덮여 있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태조를 위해 함흥에서 흙을 가져와 봉분을 조성하고 억새로 덮었다고 한다.

     

     

     

     

     

     

     

     

     

     

     

     

     

     

     

     

     

     

    태조 건원릉(太祖 建元陵) -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 제1대 왕인 태조(1335~1408, 재위 1392~1398)는 함경도 영흥(永興)에서 태어났고,

    1392년에 조선을 창건한 후 1408년에 돌아가셔서 이곳에 안장되었다.

    태조 건원릉은 조선을 창업한 군주의 무덤답게 동구릉 중에서 유일하게 이수(螭首)와 귀부(龜趺)를 갖춘 대형 비석 2기가 세워져 있다.

    본래 태조는 먼저 돌아가신 신덕왕후의 무덤인 정릉(貞陵)을 도성 안에 조성하면서 자신이 묻힐 터로 삼았으나,

    태조의 아들인 태종이 이 지역에 건원릉을 조성하였다.

    그리고 건원릉을 관리하기 위하여 재궁(齋宮)으로 개경사(開慶寺)를 세워 태조의 명복을 빌었다.

    태조는 돌아가실 때 자신의 무덤에 고향에서 나는 억새(청완, 靑薍)를 심으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건원릉에만 봉분에 억새가 심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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