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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숭릉(崇陵) - 조선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
    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19. 11. 2. 04:00

    숭릉(崇陵) - 조선 제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

     

    조선 제18대 현종(顯宗, 1641~1674, 재위1659~1674)과

    그의 비 명성왕후 김씨(明聖王后,1642~1683)가 안장되어 있는 숭릉은

    동구릉에 네 번째로 조성된 왕릉이다.

    현종 숭릉의 특이한 점은 숭릉 정자각에는 양쪽에 벽이 없는

    익랑(翼廊)이라는 공간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양식을 가진 왕릉은 숭릉을 비롯하여

    인경왕후 익릉, 장렬왕후 휘릉, 경종 의릉까지 4기가 있다.

    이중 숭릉 정자각 지붕은 유일하게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또한, 숭릉 석물은 1659년 효종 영릉(寧陵)에서 사용하였던 석물을 다시 사용하였다.

    효종 영릉은 본래 동구릉에 있다가 1673년(현종 14)에 경기도 여주시로 옮겼다.

    그리고 그 전에 사용하였던 석물을 모두 묻어 두었는데,

    이듬해에 현종 숭릉을 조성하면서 효종 영릉의 석물을 꺼내어 다시 사용하게 된다.

    이 내용은 숭릉이 만들어진 과정을 기록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숭릉산릉도감의궤(崇陵山陵圖監儀軌)에 남아 있는데,

    숙종과 숙종의 어머니 명성왕후가 석물을 새로 만들게 되면

    백성의 노고가 가중될 것을 염려하여 다시 쓸 것을 명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197 (인창동) 구리 동구릉

     



     

     

     

     

     

     

     

     

    구리 동구릉 숭릉 정자각(九里 東九陵 崇陵 丁字閣) - 보물 제1742

     

    숭릉 정자각은 1674(숙종 즉위년)에 현종의 능을 조성하며 같이 건립하였다.

    건립 이후 정자각은 몇 차례 수리가 있었다.

    1828(순조 28)에는 정자각 월대를 개축하였으며, 1879(고종16)에는 첨계석을 수리하였다.

    1899(고종36)에 배위청 기둥이 기울어 보수하였고, 1997년에 해체 보수하였다.

    숭릉 정자각은 정전 5, 배위청 3칸으로 전체 8칸 규모이며, 조선왕릉 정자각 중 유일하게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정전은 5칸 중 가운데 3칸은 좌우에 전돌로 화방벽을 쌓고 양 끝 한칸 즉 익각(翼閣)은 기둥만 세우고 개방하였다.

    그 전면 중앙에 정면 1, 측면 3칸의 배위청이 이어져 모두 8칸 정자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정자각은 정전 3, 배위청 2칸의 5칸 정자각이 일반적인 모습이었으나 숭릉 정자각은 규모가 확대된 8칸 건물이다.

     

     

     

     

     

     

     

    능침(陵寢)은 현종과 그의 비 명성왕후가 봉분이 따로 마련되어 외형으로 보아 좌우로 나란히 붙어 조성된 쌍릉(雙陵)으로

    우양좌음(右陽左陰)의 원칙에 따라 오른편이 왕, 왼편이 왕비의 봉분이다.

     

     

     

     

     

     

     

     

     

     

    수복방(守僕房)

     

    수복방은 정자각의 동쪽에 위치하고 능을 지키는 수복(守僕)이 머무는 공간이다.

     

     

     

     

    예감(瘞坎)

     

    제향(祭享)을 마친 뒤 축문(祝文)이나 혼백(魂帛) 등을 태우고 이를 묻기 위해 판 구덩이

     

     

     

     

     

     

     

     

    2019년 1월부터 숭릉 정자각 전면 해체 및 복원공사 시행 중

     

     

     

     

     

     

    숭릉 연지(崇陵 蓮池)

     

    숭릉 연지는 1674(숙종 즉위) 왕과 왕후의 능을 만들 때의 담당 기관인 산릉도감에서 조성한 연못이다.

    네모난 형태에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 방지원도형(方池圓島形)으로 네모는 땅을,

    둥근 섬은 하늘을 상징하는 우주관과 자연관이 담겨있다.

    동구릉 내 9기의 왕릉 가운데 숭릉에만 연지를 두었는데 이는 동구릉 내에 형성된

    3개의 물길(거원릉과 휘릉 사이, 원릉과 경릉 사이, 숭릉과 혜릉 사이)을 관리하기 위해서였다.

    이 연지는 처음 조성된 숙종 대부터 영조, 정조, 고종 대까지 연못 둘레의 돌 축대를 정비하고

    연꽃 종자를 능관(陵官)에게 주어 심고 기르게 한 기록이 전한다.

    이를 볼 때 당시 연지에는 연꽃이 무성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숭릉 연지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자연적, 인위적 원인으로 물이 드나드는

    . 출수구 등 제방(堤防) 시설이 없어지고 변형되는 등 경관이 크게 훼손되었다.

    이에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시.발굴조사를 한 후 2017년 보수.정비를 마쳤다.

    현재 숭릉 연지의 면적은 4,941이고, 평균 수심은 약 50cm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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