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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안문의 성혈과 총탄흔적
    수원사랑/수원화성(水原華城) 2019. 11. 19. 18:53

    장안문(長安門)의 성혈(性穴)

     

    장안문은 우리나라의 성문 중에서 가장 큰 문이다.

    정조가 장안문을 이렇게 크게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장안(長安)’이라는 말은 나라의 도읍을 의미한다.

    수원 화성에서 여생을 보내려고 했던 정조로서는,

    이곳 화성을 도읍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나 아니었을까?

    그런 장안문은 참으로 견고한 성문이다.

    장안문의 안쪽에 보면 성문을 견고하게 하기 위한 받침돌인 기단이 있다.

    성 안에서 성문을 바라보고 좌측 기단에 보면 10여 개가 넘는 성혈이 있다.

    화성이 축성 된 후 사람들은 장안문에 와서 기단석에 성혈을 판 것이다.

    화성의 4대문 가운데도 가장 큰 장안문, 그리고 그 성문을 받치고 있는 기단석.

    그곳에 성혈을 판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는 그 장안문처럼 웅장하고 단단한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빌었을 테고,

    또 누군가는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길을 떠난 서방이나

    아들이 꼭 장원급제 하기를 염원해서 성혈을 파기도 했을 것이다.

    그곳에 성혈을 파면서 얼마나 속으로 많은 기원을 했을 것인가?

     

    성혈(性穴)이란 선사시대부터 전해진 바위그림의 한 종류로 돌의 표면에 파여져 있는 구멍을 말한다.

    성혈은 주로 고인돌의 덮개돌이나 자연 암반에 새겨 놓았는데,

    그 파인 형태적 차이에 따라 민속에서는 알구멍, 알바위, 알터, 알뫼 등으로 부른다.

    성혈은 단단한 바위의 표면을 오목하게 갈아서 만든 홈을 말한다.

    옛 선사시대 사람들은 자신의 염원을 이루기 위해 돌을 갈아내어 성혈을 팠다

     아직 성혈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은 없다. 하지만 돌로 돌을 갈아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성혈 하나를 만들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성혈은 몇 개씩 파여져 있기도 하다.

    장안문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에게 믿음이 가는 성문이 아니던가?

    정조 역시 화성 행궁으로 행차를 하면 이 장안문을 통해서 출입을 했다.

    그러기에 누군가는 정조의 안녕과 강한 임금, 그리고 강한 국가를 위해서 성혈을 판 것은 아니었을까?

     

     

    장안문(長安門)

     

    장안문(長安門)은 수원 화성(水原 華城)의 북문이자 정문이다.

    보통 성()의 남문을 정문으로 삼으나,

    그러나 화성은 임금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이다.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은 석축에 홍예문을 냈고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다포 양식으로 이루어진 중층의 문루가 세워져있다.

    또한 가운데에 홍예문이 나있는 벽돌로 쌓은 옹성이 있으며,

    양옆에 다른 성벽보다 높이가 약간 높은 두개의 적대가 설치되어 있다.

    장안문의 이름은 중국의 옛 왕조인 전한(前漢), (), ()나라의 수도였던

    장안(현재의 西安市)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당나라 때의 장안성처럼

    화성 또한 융성한 도시가 되라는 정조의 뜻이 담겨 있다.

    수원 화성은 1963년 사적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장안문 기단의 성혈(性穴)

     

    6.25 한국전쟁 때 총탄흔적(銃彈痕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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