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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고지의 영웅, 강승우 육군 중위(康承宇 陸軍 中尉)국내 나들이/제주도(濟州道) 2019. 11. 27. 04:30
백마고지의 영웅, 강승우 육군 중위(康承宇 陸軍 中尉)
호국영웅 강승우 육군 중위
1930년 11월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 출생
1944년 3월 동남초등학교 졸업
1951년 6월 부산 동래 육군 보병 학교 입교(갑종간부 제7기)
1951년 12월 육군 소위 임관
1952년 10월 백마고지 전투에서 전사 / 육군 중위 특진 추서
1953년 5월 은성무공훈장(미국) 추서
1953년 7월 을지무공훈장 추서
1973년 10월 서울어린이대공원 백마고지 삼용사 상 건립
1982년 4월 육군 보병 제9사단 사격장 강승우 사격장으로 명명
1989년 10월 육군 보병 제9사단 제30연대 삼군神 추모비 건립
1991년 7월 탐라자유회관 백마고지 영웅 강승우 소위상 건립
1994년 6월 전쟁기념관 백마고지 육탄 3용사 상 건립
1995년 4월 우리나라 호국인물 100인에 선정(전쟁기념사업회)
1995년 10월 전쟁기념관 이달의 호국인물
2001년 6월 동남초등학교 흉상 건립
2003년 7월 육군 보병학교 강승우 육군 중위 흉상 건립
2011년 10월 국가보훈처 이달의 6.25전쟁영웅
2012년 12월 신산공원 6.25 참전기념탑 4인 호국영웅 흉상 건립
2013년 10월 전쟁기념관 이달의 호국인물
2014년 6월 육군 제9사단 사령부 청사 앞 도로 강승우로 지정
2014년 10월 국가보훈처 이달의 6.25 전쟁영웅
단 한치의 땅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적의 기관총 진지를 파괴하여 백마고지를 탈환하라
백마고지의 영웅 강승우 육군 중위(康承宇 陸軍 中尉)
호국영웅 강승우 중위는 1930년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시흥리에서 태어났다.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1년 6월 갑종 7기로 육군 보병학교에 입교하여
약 6개월간의 군사교육과 훈련을 마치고 12월 육군 소위에 임관되었다.
그리고 강원도 철원지역을 방어하던 육군 보병 제9사단 제30연대 소속 소대장으로 배속되었다.
1952년 10월, 철의 삼각지 전투 중 가장 치열했던 백마고지(395고지)의 혈전에서
고지를 점령한 적 중화기의 공격으로 아군의 손실이 점차 증가하고 있었다.
이에 10월 12일 새벽 강승우 소위는 소대원 안영권 일병, 오규봉 일병과 함께
박격포탄과 수류탄으로 온몸을 무장한 채 수류탄을 뽑아들고, 적의 화기가 불을 뽑는 가운데 육탄으로 돌진하여
난공불락의 적 기관총 진지 3개를 모두 파괴하고 장렬히 산화함으로써 백마고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정부는 고인에게 중위로 1계급 특진과 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고, 미국 정부도 은성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세계 전투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전투에서 살신성인의 자세로 백마고지의 신화를 창조한 강승우 중위를 비롯한 세 장병은
'백마고지의 영웅', '삼군신' 등으로 불리고 있으며, 그들의 용맹과 위국헌신은 국군의 귀감이 되고 있다.
2015년 8월 3일 제주특별자치도는 강승우 중위의 숭고한 얼을 기리기 위하여
고인의 생가 인근 이곳을 중심으로 '호국영웅 강승우로'로 지정하였다.
삼군신 찬(三軍神 讚) - 이은상의 헌시
여기 자유의 제단에 피의 제물이 되신 세 군신을 보라
그들의 짧은 인생을 바쳐 조국과 함께 영원히 살았다.
거룩한 우리 국토를 전쟁터로 만든 악랄한 공산도배
그들과 싸우며 피로써 물들인 백마고지
한 줌의 성한 흙이 없고 한 덩이의 둥근 바위가 없이
그토록 처절했던 포성과 포연 속에 쓰러진 젊은 혼들이
오히려 조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울며 비나니
아~~ 거룩하여라. 아름다워라.
그들의 희생과 높은 뜻이여 우리도 그 충정 그 신념 본받아
거기서 새힘을 얻어
그 힘으로써 통일을 이룩하고 조국의 앞날을 바로 잡아
천추만대에 부끄럼 없는 영광된 역사를 지으리라.
시흥리 마을 수호신 영등 하르방의 유래
영등하르방 석상의 유래는 250년전 마을 안에서 도깨비 불이 자주 보이고
원인모를 화재가 자주 발생하여 이는 풍수지리상 화기가 비치는 걸 마을이 받는 때문이다.
하여 석상을 만들어 바닷가에 세웠는데 마을 주민들은 이 석상을 '영등하르방'이라 불리웠다.
그래서인지 도깨비불도 보이지 않고 화재도 발생하지 않았다.
주민들이 관리소홀로 석상이 쓰러졌는데 다시 화재가 발생하고 마을이 평온치 않았다.
다시 주민들이 석상을 세웠는데 화재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후로 영등하르방 석상을 잘 보존하고 마을의 안녕과 재난을 막아주는 수호신이라 하였다.
석상의 위치가 잘 보이지 않는 외진곳에 있었는데 해안도로가 개설되면서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 2010년 11월 이곳으로 모셨다.
주민일동
호국영웅 강승우로
송난포구 - 서귀포시 성산읍 오조리
종달리 해안도로(해맞이 해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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