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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하도 시가 있는 길(목포시문학회)
    일상생활속에서/작품속으로 2021. 4. 25. 20:15

    고하도 시(詩)가 있는 길 - 목포 詩문학회

     

    전라남도 목포시 고하도(高下島)에 '시(詩)가 있는 길'이 조성됐다.

    목포 시문학회는 목포해상케이블카 고하도역을 중심으로 오르막길과 용머리데크 가는 길,

    전망대에서 용머리까지 걷는 길 약 1km구간 능선 난간에 목판시화 45점을 설치하여

    목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는 물론 詩를 읽으며 낭만을 즐기는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전라남도 목포시 달동

     

     

     

    일등바위 - 강성희

     

    애면글면 올라서면

    벼랑끝도 삶이다.

    잎새마다 음표들이

    실로폰 소리를 내고

     

    노을빛

    닮은 윤슬이

    손가락에 줄 튕긴다.

     

    용머리 끄트머리

    뱃고동 들리는데

    바다로 간 꿈들은

    돌아오지 않았을까

     

    꼭대기

    바위 속 마다

    흰 물살을 키운다.

     

     

    목련꽃 - 강해자

     

    꽃눈,

    그 긴 털 속에 숨어

    기다림으로 추위를 견디고

     

    오직 한 마음

    때 묻지 않은

    그리움으로 하얗게 지새운

     

    그대

    고고한 여인이여

    담장 너머의 꽃이여

     

    목젖

    환희 열어놓고

    웃는 봄이여!

     

     

    비는 산을 울리고 - 고정선

     

    비 갠 후에

    산이 운다.

    제 몸 씻겨가는 것도 서러운데

    흔들어대는 바람이 있어

    더 섧게 운다.

     

    산이 울면

    나무도 운다,

    땅속에 뿌리를 앙바라지게 박으며

    머리카락을 흩날린다.

     

    구름이 낮게 제 몸을 드리울수록

    하늘은 더 높아가는 데

    산도 나무도

    하늘을 향해 아우성이다.

     

     

     

    북항 - 김경애

     

    북항에 와서

    한 남자가 밀항을 하자더군

     

    저 유성호를 타고

    섬에 들어가 한 달만 살자더군

     

    남자는 다만

    평생 살자는 말은 절대로 안 하더군

     

    파우스트처럼 영혼을 팔아서라도

    사랑해. 고백했다면

     

    금방 후회할지라도

    그 남자와 당장 떠났을지도 몰라

     

    북항은 예측할 수 없는

    불멸의 사랑을 꿈꾸기에 가장 좋은 항구.

     

     

     

    재회- 대반동에서 - (김남복)

     

    들물 뒤, 썰물. 썰물 뒤, 들물.

    온종일 애매한 시간의 바닷가

    썰물 때의 헤어짐은 언제 그랬냐는 듯

    뽀짝뽀짝 어느덧 다가와서

    갈매기도 잠든 어둠 속

    어색함에 주변을 둘러보면

    지난 헤어짐이 아쉬웠던지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는 손짓

    멀리하려 해도

    젖어 드는 모래알들

    들썩들썩

    어느덧 새벽

    동이 트는 시간.

     

     

    거울 - 김상근

     

    숨어서 흐른 세월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 거울

    나는 거울을 보고

    거울은 나를 보고 있네.

     

    수 삼 년

    집적거리며

    놓친 세월이 더 많은 남자의 가슴

    나는 지금 여기에 있는데

    그 소년은 간 곳이 없네.

     

    어린 영혼을 달래 주던

    교회 종소리도 함께.

     

     

     

     

    함께 살아가는 것 - 김영천

    크게 성공하지 못해도

    사방 곳곳에 이름 날리지 못해도

    그냥 살다가 가는 것조차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상에 이름 모를 갖가지 풀꽃들이

    그냥 그렇게 피었다 지듯,

    우린 그저

    함께 살아가는 것마저도

    얼마나 뜻있는 일인가

     

    조금씩 웃고 또는 슬퍼하고

    절망하는 만큼 꿈도 꾸고,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술 마시는 법 - 김종구

    나는 누구와 술을 마시더라도

    그 사람 마음을 마시고 싶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나의 진실을 따라 주고 싶다.

    나는 그의 투명한 잔이고 싶고

    속마음 털어주는 술이고 싶다.

     

    안주는 인생의 소금꽃이면 더욱 좋고

    오가는 입김 속에

    가끔은 데워진 말로 부딪칠지라도

    그것이 진실이라면

    그의 잔 다 받아먹고 싶다.

    또 그만큼 따라주고 싶다.

     

     

     

    진실 - 김충경

    멀리 수평선 끝에 떠 있는

    섬 하나

     

    파도가 높은 날은

    금방이라도 침몰할 것 같은

    섬 하나

     

    아무리 작은 섬이라도

    바닷속에 두 발로

    굳건히 서 있는 것이니

     

    진실은 먼바다 작은 섬처럼

    보일 듯 말 듯 한 것이다.

     

     

    갈대 - 김혜경

    갈 데까지 가 본 사람은 안다.

    갈대는

    푸른 독기가 사라져야 비로소 갈대의 모습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넘어지고

    흔들어서 욕망도 사랑도

    그리움마저 털어내야

    갈대가 된다는 것을

    가장 가볍게,

    가장 순결하게

    갈 데가 정해진

    갈대가 된다는 것을

     

     

     

    난향(蘭香) 넌, 꽃 - 김혜자

    유리문을 지그시 밀고 오는 봄 내음

    조심스레 코끝으로 느끼며

    촉각을 세워 너의 존재를 찾는다.

     

    예쁜 색을 지녀야만 꽃인 줄 알았던 내게

    넌 풀꽃 같은 모습으로 미소 지었다.

    소리 없는 은은한 향으로 말했다.

    蘭(난)이라고

     

    보일 듯 말 듯

    머리 숙여 몸을 낮추고

    가까이 다가가야 널 찾을 수 있었다.

    그래야 널 느낄 수 있었다.

    주욱 뻗은 잎새에 살포시 기대어

    미소 짓는 넌

    꽃이었다.

     

     

     

    불 꺼진 정류장 - 박영동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무엇을 위해 길을 떠났고

    무슨 사연으로 돌아왔는가

    말 없는 애환들이

    지층처럼 쌓여있는

    불 꺼진 정류장

     

    오늘을 덮었으니

    그 위로 내일이 올 것이다.

     

    그림자는

    빛으로 태어나는 것

    불 꺼진 정류장엔

    영욕의 갈등이 없다.

    허전하지만 그래서 좋다.

    주인 잃은 벤치에 앉아

    인간사의 온갖 인연들이 지은

    강물 속 물길을 그려 본다.

     

     

    고하도 용머리, 그 외길 사랑 - 이종숙

    거세게 다가오는 바람의 파발마

    파도는 연신 다가와 살을 비비며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여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벼락처럼 왔다가 정전처럼 끊긴 사랑

    억겁의 시간을 견디고서도

    연모의 맘을 접지 못해

    오늘도 목 빼고 바라보는 그곳

     

    언젠가 하늘길 열리면 솟아올라

    마침내 뜨거운 사랑을 이루리라고

    외길 사랑 용머리.

    오로지 서녘 하늘 향해 들려있다.

     

     

    유성 - 전경란

    별도 달도 뜨지 않는 어둠 속

    흐르다 흐르다

    어느 한구석

    차가운 돌멩이로 묻혀 버렸다.

     

    빛나지도 빛을 바라지도 않는

    그런 것은 아니었을 건데

    그냥 그대로 이름도 없이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빠질 수도 빼어내 버릴 수도 없는

    돌멩이로 변하여

    가만히 숨죽인 채

    떨어져 나온 아픔만 안고

     

    반짝반짝

    아름다운 긴 꼬리의 빛으로

    유성처럼 흐르다

    박힌 까만 점.

     

     

    비안개 - 전서현

    퍼붓듯 쏟아진

    소나기도 그쳤는데

    오르지 못하고

    산기슭 맴을 도나

    새하얀

    옷자락마다

    솔기가 터져있다.

     

    터진 앞섬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는개처럼 시야가

    시나브로 흐려져도

    보내지

    못하는 마음

    떠나지 못한 마음.

     

     

    가난의 편에 서서 - 조기호

    절실함이 없는 것들이란 거짓이다.

    참(眞實)이 아니다.

    우리가

    늘 가난의 편에 서서

    함께 울어야 하는 까닭이 그렇잖은가

     

    지금의

    이 궁핍함이

    이 곤궁함이

    대체 무슨 거짓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춥다’

    '배고프다'

    '그립다’

     

    아, 너무 정직해서

    다만 가슴이 아리는 말이다.

     

     

    바이올렛에 관한 명상 - 이순애

    날이 선 푸른 허공에

    가슴을 베어도 좋습니다

    붉은 가을은 여전히 심장을 흔듭니다.

    산등성이 젖은 뭉게구름과

    파도 등을 타는 윤슬과

    억새들 실루엣이 박하처럼 환합니다.

     

    거친 음절에 부딪히며 아파하기엔

    캄캄한 눈빛은 서럽습니다.

    성근 행간에 두 귀를 짜 늘이며

    명랑한 속울음에 스미렵니다.

    좋은 계절을 빈 숨으로 보내기엔

    말 없는 것들의 위로가 아닌 때문입니다

     

    쉿! 지금

    보랏빛 바람에게 달려가는 중입니다.

     

     

     

    직립 - 李順姬(이순희)

    옆걸음 친다고

    따지지 말라.

     

    썰물의 펄 등에서 걸어봤냐

    삶의 진창에서 너는

    어찌 걸었느냐

     

    벗어날 수 없는 소금기 밴 세상

    갯벌에 몸을 뉘고 올곧게 빛나리니

     

    누군가를 위해 간절히 온몸으로

    기도하며 살리니.

     

     

     

    개미 - 박행자

    이제는 더 이상 졸라 맬 허리도 없다

    흙 속에 파묻혀 헤어나지 못한

    고단한 삶 속에서도

    밤이면 흐릿한 호롱 불빛 아래

    한 땀 한 땀 사랑을 깁던 어머니.

    시린 손끝 부비며 끓인 밀 죽도 자식놈 먼저라

    주린 배 다시 한번 졸라매고 쉬어 넘던 고개

    모진 가난 끌어안다

    등이 굽어버린 팔순의 나이

    이젠 오랜 세월에 무디어져

    그 아픔조차 느낄 수 없는 지금

    이제는 더 이상 졸라맬 허리도 없다.

     

     

     

    사랑초 - 배덕만

    나비 날개를 닮은 사랑초,

    분홍 하양 꽃을 피운다.

    꽃을 찾아 날아온 나비가

    떠나지 못하고 잎이 되었다는

    전설을 품고 피어나는 꽃

     

    그대와 내가 아침 햇살과 이슬로 만나

    함께 하지 못할 운명이어도

    큰 그리움으로 밤을 달려

    한마음으로 꽃을 피웠으니

    어찌 사랑이라 부르지 못하리.

     

     

    노을치마 - 유현

    복숭아 꽃잎처럼 날아온 편지 한 장

    그 백지 끌어안고 천일각에 올라서니

    강물이 절뚝 거리며 내게로 오고 있다.

     

    사금파리 날 같은 윤슬에 눈이 먼 새,

    팽팽한 연줄 한 올 움켜 쥔 흰 물새가

    뉘엿한 붉새를 물고 내게로 오고 있다.

     

    미처 못다 부른 연서 한 필 펼쳐두고

    말 없는 그 말들이 초당에 쌓이는 밤

    야윈 강 뒤척일 때마다

    일어서는 저녁놀

     

     

    갯기러기 - 목선 이순동

    산기슭 처량한 새소리 귓전에 맴돌고

    나를 흔들었던 북한산 태양

    지금도 얼마나 아름답게 저무는가를 보고 싶다.

     

    현실을 토로할 수 있는 벗이 있다면

    호사라고 해야 하나

    홀로 남겨진 서러움뿐인데

    수취인 불명 된 편지 한 장 마음으로 보냈다면

    삶은 어떨까

     

    지난 생각

    때론 영혼을 파괴한다 하였지만

    간혹 나는

    연신내 느티나무 정자에 머물다

    목포에 돌아온다.

     

     

    ‘비록’ 이라는 말 - 조기호

    '비록' 이라는 말 만큼 비장한 것이 있을까

    아니, 슬픈 말이 있을까

     

    홀로 짊어지고 걸어야 하는 말

    어쩌면 평생을 떠돌지도 모르는 말

    넘어져도 일으켜줄 수 없는 말

    오르기 위해 떨어지는 물줄기 같은 말

     

    쉽고 편안한 산책을 거부하는

    숱한 방황의 말들이여

    그럼에도

    끝내 사랑하겠다는 그대여

    비록 그것이 헛된 믿음일지라도

    비록 그것이 사나운 모순일지라도.

     

     

    사문진(寺門津) 나루터에서 - 전서현

     

    잠든 돌도 두드리면

    노래를 하는 걸까

     

    낙동강 굽이굽이

    물소리 그 너머로

     

    저물녘 강바람 타고

    들려오는 목탁 소리

     

    안으로 깊이깊이

    새겨놓은 음표 하나

     

    바람이 탄주하는

    오래된 노래들이

     

    돌에서 맨발로 나와

    나루를 건너간다.

     

     

    천등 - 전경란

    꿈을 말하라 한다,

    희망을 말하라 한다.

    뜨겁게 달군 열기로

    하늘을 향해 오르는 빨간 등에

    모든 소망을 걸었다.

     

    바람이 흐르는 데로

    어디로 향해 갈지

    어디에 머물러 앉을지

    도무지 알지 못하지만

     

    때론 한없는

    나약해진 마음

    어깨 늘어난 무거움을

    천 등의 무게 속에 감추고서

    스스로의 위로를 갖는다.

     

     

     

    석양에 들다 - 이종숙

    익어간다는 것은 저런 것이리

    주변을 아우르며 두드러지지 않고

    한 생이 고요히 드러눕는 것이리

    뜨거워야 사랑이고 젊어야 아름다운 거라면

    굳이 온 생을 바쳐 살아낼 이유가 있겠는가.

    건들건들, 조촘조촘 느리게 가면서

    등 토닥이며 수긍하는 이 사랑도

    그리 나쁘지 않아

    파란만장의 생도 어우러지면

    저리 고운 빛깔을 내는 것

    불그스레 익었으니 이제 푹푹 곰삭아

    이 세상에 찍은 흔적들 저절로 흩어지는

    삶의 완창을 이루면 그만인걸

    새 한 마리 붉게 물들어

    마침내 석양에 들고 있다.

     

     

     

    ​목포항 – 李順姬(이순희)

     

    ​아직도 바다 냄새 밴

    수백 마리 갈치들이

    갇힌 상자에서 바다로 가자고 출렁인다.

     

    새 바닷물을 넣어 주어야 할까

    상자마다 등지느러미 세운 빛나는 꿈

    어느 생에 또 파도 한 이랑을

    끌어안을 수 있을까

     

    더는 울지 말라

    두 팔로 젖은 등 포옹하는 목포항

    어머니 잔잔한 가슴팍이다.

     

     

    슬픔이 그리울 땐 바다로 간다 - 이순애

    공중그네가 떠다니는 호국의 성지

    새들의 발소리 고요해지면

    시아바다는 뜨겁게 해를 낳는다.

     

    소금 바람에 익숙한 여자는

    붉은 배롱나무 아침이 그리웠다.

     

    내밀한 척후들이 순교를 벌이고

    파도의 비탈이 고해성사를 하는

     

    고하도는

    유토피아를 꿈꾸는

    목화같은 여자를 보듬는다.

     

     

     

    노을공원 - 목선 이순동

    일몰의 냄새 지척에서 숨 쉬고

    푯대 위에 앉은 갯바위

    유형지에 서려오는 아픔 견디며 서 있다.

     

    뚝뚝 떨어져

    흔적 없이 사라지는 태양의 뒤편

    달빛 내려앉아 무겁게 짖누르고

    숨 가쁜 소리 내며 항해를 하는 배

    검붉은 섬들 사이로 유유히 사라진다.

     

    불빛 전선처럼 길게 이어지고

    압해도 낙지 아저씨

    오늘도 목포에서 탁주 한 잔 걸친다.

     

    쓸어내리던 잔바람 추억이 되고

    자식 기다리던 노파는

    수레에다 파시를 담아

    불빛 아래로 돌아가고 있다.

     

     

     

    달을 품은 바다 - 이순남

    바라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이제야 보이는 달

    오랜 세월을 다하여

    오지의 수면을 두드린다.

    내 안의 깊게 잠든 푸르름이 용솟음치듯

    시커먼 속을 붉게 후려친다.

    내 몸은 파도의 선율을 타고 날아올라

    빨아들이는 블랙홀처럼

    달에 걸린 그리움에

    온몸이 하얗게 부서진다.

     

     

     

    파도 - 배덕만

    깊은 밤

    적막의 깊이를 재는 파도 소리

    세상의 모든 글자가 산더미처럼

    밀려온다.

     

    건너온 저 많은 가슴들

    어떻게 해독할까

    천둥소리 내며 우르릉 우르릉

    가슴 치며 다가오는

    저 수많은 자음과 모음들

     

    당신에게로 가 닿기도 전에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획들 획들

    하나가 보태질 때도 하나가 떨어질 때도

    저렇게 몸은 울었던가.

     

     

     

    목포에 가면 - 김충경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흐르는

    유달산 일등바위에 올라

    거북이 등처럼 떠가는 섬들을 보라.

     

    고하도 용머리를 휘돌아

    삼색 깃발 나부끼며 귀항하는

    고깃배가 끌고 오는 갈매기 떼를 보리

    따순 햇살 올망졸망 모여드는

    서산동 보리 마당 할매집 평상에 앉아

    푸른 파도 싹둑 썰어 술 한잔하고

     

    칼로 총총 다져도 살아 꿈틀거리는

    뻘낙지 탕탕이에 또 한잔 기울이면

    황혼 녘 술잔도 덩달아 벌겋게 달아오르리.

     

     

    애추(崖錐) - 그리에게 - (유헌)

    우연이 아닐거야

    인연이라는 그 말

    나비의 날개를

    하나씩 나눠 갖고

    초록빛 눈동자에 끌려

    예까지 온거야

     

    겁(劫)의 허공 날아날아

    여기, 문득 내려앉아

    침묵으로 쌓아 올린

    고갈 쓴 왕국에서

    망루에 들창을 내고

    별을 헤는

    너와 나.

     

    애추 : 산비탈 고깔 모양의 돌무더기

     

     

     

    인동초 – 박행자

     

    멀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덤불 숲 아래

    한 줌 빛 그리며 나직이 엎디어

    마디마디 단내나는 그리움 키우더니

    드디어 꽃을 피었구나

    세상의 그늘에 가려

    종횡무진 불어오는 바람과

    거친 눈보라 속에서도

    실낱같은 희망 하나 붙들고

    한 발 한 발 가시덤불 숲 헤쳐나와

    질펀히 쏟아놓은 진한 눈물의 향기

    나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희망찬 목포 - 김남복

    일본제국주의 동양척식회사가 있었던

    슬픔의 도시는 희망의 도시로 커져간다.

    비상하라 세 마리 학이여!

    낭만이 감싸는 해안마다

    예술 가득 거리마다

    희망의 도시로 높이 오른다.

    유달산을 품고 다도해를 안고

    주변을 호령할 사열대 높이 올린 마당바위

    세계로 나아가자 외치는 일등바위

    고하도의 용머리가 꿈틀거리고

    신외항 화물선의 힘찬 뱃고동은 멀리 퍼져간다.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온 곳, 목포여!

    나아가자 대륙으로~

    비상하자 세계로~

     

     

    산등성이 가로등 - 박영동

    새벽은 아득하고

    밤이 깊은 산등성이

    오가는 발길도

    멎어 버린 정적

     

    달빛도 떠나가고

    산 새 내려앉은

    나목마저 잠들어

    고요한 산야

     

    기다림에 겨워

    누굴 향한 애증

    아낌없이 쏟아내는

    산등성이 가로등

     

     

    풍경 - 김혜자

    매미들도 호흡을 고르는 시간

    산이 내려와 몸을 담근다.

     

    물비늘마저 숨죽이는

    산과 호수의 깊은 포옹

     

    그렇게 닮아가야 하는 거

    이제야 알았다.

     

    바람이 흔드는 물그림자

    더욱 진해질 때

    노을 풀어내는 서녘 하늘

     

    산도 제자리로 돌아가고

    호수도 문을 닫는다.

     

     

     

    목포역 블루스 - 김경애

    서울 자코메티 한국 특별전 관람 후

    늦은 밤, 비 내리는 목포역에 내린다.

     

    더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 멈춰 선 자리

    버리고 싶은 날들이 하나둘씩 항구의 등불로 켜진다.

     

    혼돈과 멀미, 불안한 시선과 눈빛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이자 형벌인가

     

    부둣가 저편에서 들려오는 눅눅한 목소리에 밀려

    나의 발걸음은 제자리를 맴돈다.

     

    뜨겁던 사랑이나 지독한 이별도 물기처럼 사라져

    강파르게 마른 재로 쓸쓸히 걸어가는 사람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 역에서

    비 맞은 비파나무처럼

    늦은 시각까지 역 대합실에 서 있다.

     

    * ‘걸어가는 사람’ - 알베르토 자코메티 대표 작품

     

     

    목포 어디쯤 아직도 - 고정선

    <소영 素影 - 박화성>

    옷고름 속 여며둔

    젖 내음 찾아가듯

    아픈자의 쉼터를

    소설 속에 마련한 생

    원고지 칸칸에 담은 정

    비울 일 없을 듯

    <난영 蘭影 - 이옥례>

    소리 내 못 울어

    가슴애피 독한 세월

    목메게 부른 노래

    파도는 알아줄까

    삼학도 유달산 업고

    임 자취 찾던 날을.

     

     

     

    꽃들의 말 - 김혜경

    음악은 사라지고

    말이 춤을 춥니다.

    말하고 싶은 것을 참을 때

    꽃이 피어나나 봅니다.

    한 송이도 다치지 않는 찬란한 간격과

    먼저 피어나

    나중 피어날 꽃들을 위해 시들 줄 아는

    꽃들의 세계

    참고 참다가 마침내 터져 나오는 함성처럼

    광화문 사거리로 몰려든 깃발의

    행렬처럼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꽃이 되고 싶습니다.

     

     

    일몰(日沒) - 김종구

    서산(西山)에

    사내 하나

    부끄러이 앉아있다.

     

    그래, 그래,

    괜찮다고,

    사는 게 다 그렇다고,

     

    하늘이

    다독거리며 눈을 감아 주신다.

     

     

    목포는 공연 중 - 강해자

    새벽안개 가득 싣고

    말없이 출렁이는 고하도 용머리

    아픈 세월 고개 끄덕여주며

    포근히 다도해 감싸 안은 유달산

     

    쪽빛 바다를 두른

    세 마리의 학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운 삼학도

     

    달빛, 은빛 물결 위에

    소곤소곤 밤새도록 수런대는

    갓바위 아범

     

    고요히 번지는 수묵화처럼

    한껏 솟아오르는 분수처럼

    목포는 오늘도 공연 중이다.

     

     

     

    고하도(高下島) - 김영천

    그 정도면 높은 것이며

    그 정도면 또 낮은 것이네

     

    목포 앞 바다

    병풍처럼 둘러선 섬에 가서야

    높고 낮은 것이

    한 범주에 있다는 것 깨닫나니

     

    치미는 파도를 품었다 내어주기를

    평생의 일로 삼고서

    올라간 높이만큼 다시 내려오는 길을 따라

    촘촘히 피어나는 넋들이여.

     

     

    다박솔 - 김상근

    산자락 벼랑에

    다박솔 하나

    바람 불면

    바람으로 살고

     

    비 내리면

    한 모금

    갈증도 풀고

     

    혹여,

    햇빛 비추면

    조금씩 훔쳐서 살지

     

    오늘도 그만큼

    키 높이 뭐하겠나

    어차피 전설로 남는 나이테...

     

     

     

    목포구 등대 - 강성희

    읽다 접은 시집같은 목포구 등대여

    수천 년 설움이 와서 포말로 부서지면

    빈 어망 파도에 묻고 바다의 꿈 잠재운

     

    날개 접은 솟대처럼 허공에 풀어둔 꿈

    수척한 다도해를 어스름 건너오면

    홀로선 목포구 등대 노을에 심지를 댄다.

     

    달빛이 드나들고 별빛이 두런대도

    칠흙 같은 어둠 속 비린내 나는 배에

    한줄기 불빛을 꺼내 깜깜한 생(生) 밝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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