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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산 보원사지(瑞山 普願寺址) - 사적 제316호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5. 30. 04:10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瑞山 普願寺址 幢竿支柱) - 보물 제103호

     

    당간(幢竿)을 지탱하기 위해 세운 석조물이다.

    당간은 절 앞에 세워 부처나 보살의 위엄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의미를 가진 당(幢)이라는 깃발을 다는 깃대이다.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의 위치에 놓여있다.

    마주보고 있는 두 지주의 안쪽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바깥쪽에는 양측 가장자리를 따라 돌대(突帶)가 돋을새김되어 있다.

    기단부(基壇部)가 없어진 것을 화강암으로 새로 보강하였는데 주위에 흩어져 있는

    여러가지 석재들로 보아 원래는 직사각형의 기단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높이는 4.2m이다.

     

     

    보원사지 당간지주 - (김기현)


    천 년 전 세워진 당간지주

    쌀뜨물로 홍수를 이루었다는
    그시절엔 의연하고
    흥겨이 서있었네,

    대웅전 명부전 요사채가 사라진

    적막하고 처연한 빈터에서

    부처님의 계시대로

    외로이 절터를 지킨다.

    영겹의 역사를 지키려
    엄동설한에도 폭염에도

    굳건히 두발을 디디고

    덤으로 아라메길의
    안내자도 되었네.

     

     

    서산 보원사지 석조(瑞山 普願寺址 石槽) - 보물 제102호

     

    화강석의 돌을 파서 만든 것으로 절에서 물을 담아 쓰던 용기이다.

    안쪽과 윗쪽만 정교하게 만들고 바깥쪽은 거칠게 다듬은 것으로 보아

    땅에 묻어두고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무런 장식을 하지않아 간결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거대한 크기로 인해 웅장한 느낌을 주고 있다.

    내부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으며 밑바닥은 평평하고

    한쪽에 물을 내보내는 8cm 정도의 원형 구멍이 있을 뿐이다.

    현재 남아있는 것 중에서 가장 큰 석조이다.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다른 석조물들과 관련시켜 볼 때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길이 3.5m, 높이 0.9m, 너비 1.8m로 약 4톤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규모다.

     

     

     

    서산 보원사지 5층석탑(瑞山 普願寺址 五層石塔) - 보물 제104호

     

    통일신라~고려초의 전형적인 석탑양식이다.

    목조탑파에서 석조탑파로 변환되는 과정의 형식이며

    아래층 기단에 사자상을, 위층 기단에 팔부중상(八部衆像)을 새긴 것이 특이하다.

    기단부에 우주(隅柱), 탱주(撑柱)를 세웠고 탑신부 1층 밑에 받침돌 한 장을 끼워 넣은 것과

    옥개석의 물매가 평활하며 끝이 살짝 들어 올려진 것 등이 백제계 양식이다.

    또한 옥개석 받침을 4층으로 한 것은 신라계 양식을 가미한 것으로

    백제지역에 신라 이후 세워지는 석탑의 공통된 양식이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미려하고 경쾌하며 안정감이 있다.

    상륜부에는 긴 찰주(擦柱)만 남아있지만 1945년 광복 전까지

    아름다운 복발(覆鉢), 앙화(仰花), 보륜(寶輪), 보개(寶蓋), 수련(水煙),

    용차(龍車), 보주(寶珠) 등의 부재(部材)가 완전하게 있었다고 한다.

    1968년 해체 복원 시 사리 내갑(內匣), 외갑, 사리병, 납석소탑 등이

    출토되어 부여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금당지

     

    금당지 주변에서 확인된 초석의 종류는 방형에 원형주좌가 도드라진 초석,

    고막이 초석, 귀막이 초석 등 3가지로 분류된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 - 보물 제105호

     

    법인국사의 사리를 모셔놓은 975년에 건립된 부도 탑이다.

    법인국사는 신라말~고려초의 고승으로 법호는 '탄문(坦文)'이다.

    900년(신라 효공왕 4)에 출생하여 15세에 장의산사에서 계(戒)를 받았으며,

    968년(고려 광종 19)에 왕사, 974년(광종 25)에 국사(國師)가 되어

    이곳 보원사에 와서 975년(광종 26)에 입적하였다.

    당시 임금인 광종이 슬퍼하며 부도를 세울 것을 지시하며 국공(國工)에 의하여 세웠다.

    이 탑은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의 형태이며 중대석의 조각은

    매우 아름답고 상대석에 난간 형태를 두른 것이 보기 드문 특징이다.

    옥개석에 3단 받침을 둔 것은 부도나 탑을 막론하고

    이 지방에서 보기 드문 형식이며 추녀, 서까래가 살짝 들어올려져 날렵한 것 등은

    탑에서와 같은 백제계 양식의 특징이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碑) - 보물 제106호

     

    법인국사의 탑비로 978(고려 경종 3)에 경종의 지시로 세워졌다.

    비몸 높이 230cm, 폭 115cm, 글자 수 5,000여자나 되는 거비(巨碑)이며

    국공(國工)을 파견하여 이들이 세우게 했다.

    이분은 신라말~고려초의 고승으로 법호는 '탄문(坦文)'이다.

    비문의 내용은 탄문의 일대기이며, 900년(신라 효공왕 4)에 출생하여 15세에 계(戒)를 받고,

    968년(고려 광종 19)에 왕사(王師), 974년(광종 25)에 국사(國師)로 지내다가

    이곳 보원사에 와서 975년(광종 26)에 입적하였다.

    역대 왕들과 가까웠으며 국가 시행 불사를 도맡아 시행하였고,

    특히 광종은 왕권강화 작업기간 이후 정신적인 지주로서

    왕사, 국사로 가까이 있게 했으며 입적하자 매우 슬퍼하였다.

    이분은 학승으로 제자가 많아 말년에 보원사에 올 때

    선(禪), 교승(敎僧) 천여명이 영접했으며

    이곳을 '고산(故山)'이라 하고 여기에 와서 묻혔다.

     

     

     

    서산 보원사(瑞山 普願寺)

     

    대한불교조계종 내포가야산 보원사는 가야산 줄기의 상왕산 동편 계곡에 조성된

    서산마애삼존불이 위치한 곳에서 강당계곡을 따라 1.5㎞ 떨어진 지점인

    용현리 사적 제316호(지정연월일 1987. 07. 10)로 지정된 보원사지내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이다.

    정확한 폐사 연대를 알지 못한 채 긴 잠에 빠졌던 보원사지가

    이제 서서히 기지개를 켤 준비를 하고 있다.

    잠들기전 보원사가 왕성하게 활동했던 당시의 모습이 어떠한지 밝히기 위해,

    불기 2550(2006)년 3월 21일 개토제(開土祭)를 시작으로 보원사지에 발구조사가 시작되었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마애삼존불길 192-25 (용현리) 보원사

     

     

    보원사 복원을 위한 임시법당

     

    보원사지 석조부재(普願寺址 石造部材)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崇儒抑佛政策)으로 폐사된 보원사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조선 제26대왕 고종의 아버지)에 의해 불태워지면서

    사라진 가야사 등 내포가야산은 권력에 의한 침탈로 소실된 대표적인 불교성지이다.

    석조 부재를 보아 그 당시 번성했던 사찰을 짐작케한다. 

     

     

    서산 보원사지(瑞山 普願寺址) - 사적 제316호

     

    사적 지정 : 1987년 7월 18일

    백제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보원사의 옛터로 통일신라-고려초에 크게 융성하였고

    왕사, 국사를 지낸 법인국사 탄문이 묻힌 곳이며,

    주변에 100개의 암자와 1000여명의 승려가 있었다고 전하는 대사찰이었다.

    이 절터에 신라와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대형 철불 2구가 있었던 것을 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1967년도에는 백제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금동여래입상이 출토되는 등

    유물로 보아 당시에는 매우 융성했음을 알 수 있으며

    백제와 신라, 고려초 불교미술의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있는 사적지이다.

    유물로는 백제 양식 기반 위에 통일신라와 고려초의 석탑양식을 갖춘 5층석탑(보물 제104호),

    통돌을 장방형으로 파내어 만든 한국 최대의 석조(보물 제102호),

    975년(광종 26)에 법인국사가 입적하자 광종의 지시로 세운 보승탑 (법인 국사탑, 보물 제105호),

    법인국사의 생애가 기록된 보승탑비(법인국사탑비, 보물 제106호),

    사찰에 불교 행사가 있을 때 깃발을 걸기 위해 만든 당간지주(보물 제103호)가 있다.

    이 밖에 소형금동여래입상과 좌상들, 청동인왕상, 5층석탑사리장엄구, 유리구슬, 상평통보,

    고려철불좌상, 통일신라 철조여래좌상 등 각 시대를 아우르는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가까이에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한 백암사지 등

    불교유적이 집중되어 있어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곳이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48외 70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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