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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령산 용암사(長靈山 龍巖寺)
    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21. 10. 23. 04:13

    대웅전 뒤에 위치한 용암(龍巖)

     

     

     

    우리의 마음은 갖가지 번뇌 망상으로 물들어 있어 마치 파도치는 물결과 같다.
    물결이 출렁일 때는 우리의 얼굴이나 모습도 일렁이고 왜곡되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물결이 조용해지면 모든 것이 제 모습을 나타낸다.
    저 연못이 바람 한 점 없이 고요하고 맑으면 물밑까지 훤히 보이는 것처럼.
    - 화엄경(華嚴經) -

     

     

     

    梵鐘閣(범종각)

     

     

     

    大雄殿(대웅전)

     

     

     

    용암사 운무대(龍巖寺 雲舞臺)

     

    구름이 춤추는 장면을 볼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 운무대.

    이곳 용암사 운무대에서 바라보는 운해와 일출은 미국 'CNN go'에서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50곳에 포함될 정도로 뛰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낮게 깔린 구름은 마치 춤을 추듯 일렁이고

    운해를 품고 떠오르는 붉은 해는 수묵화 같은 산봉우리마저 짙게 물들인다.

    이처럼 일출이 함께하는 운해는 절경 중의 절경으로

    동트기 전부터 전국 사진작가들의 발길을 끌어모으며,

    특히 새해 일출을 보기 위해 겨울 새벽 찬바람 속에서도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해발 424m에 위치한 소담스러운 용암사 운무대에 올라

    새벽엔 일출을 감상하고 낮에는 탁 트인 아름다운 옥천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장령산 용암사(長靈山 龍巖寺)

     

    대한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천축국(天竺國, 옛 인도)에 갔다가 귀국한 의신조사(義信祖師)가

    552년(진흥왕 13)에 창건하였으며, 법주사의 창건보다 1년이 앞선다.

    사찰명은 경내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용암사로 이름 지었으나,

    민족 항일기 때 일본인의 손에 용바위는 파괴되어 현재에는 그 흔적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중창 역사는 거의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신라 말 마의태자(麻衣太子)가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잠시 머물러 용바위 위에 서서 신라의 서울이 있는 남쪽 하늘을 보며 통곡하였다는 설과,

    수많은 당우로 산야를 메웠던 사찰이 임진왜란의 병화로 폐허화되었다는 설만이 전해지고 있다.

    그 뒤 이 절은 명맥만을 유지하다가 최근에 대웅전을 비롯한 요사채 3동을 중건하였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과 5종의 탱화가 봉안되어 있는데,

    이 중 화법이 정교한 후불탱화(後佛幀畵)와 1877년(고종 14)에 조성된

    신중탱화(神衆幀畵)는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지정문화재로는 쌍석탑(雙石塔)과 마애불이 있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호인 쌍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것으로

    고려시대의 작품이며, 높이는 약 4m이다.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호인 마애불은 높이 3m에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사찰에서는 마의태자상이라고 한다.

    마의태자를 추모하였던 신라의 공장(工匠) 후손이 염불 하는

    태자의 모습을 그리워하며 미륵불을 조각하였다고 한다.

    이 마애불은 영험이 있어 기도하면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고 전하고 있다.

    자료 제출 :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삼청2길 400 (삼청리), (대표 전화 043-732-1400)

     

     

     

    宗務所(종무소)

     

     

     

    화담(꽃담, 花墻)

     

     

     

    옥천 용암사 동·서 삼층석탑(沃川 龍巖寺 東·西 三層石塔) - 보물

     

    이 석탑은 일반적인 가람배치와 달리 대웅전의 앞이 아니라

    사방이 한눈에 조망되는 북쪽 낮은 봉우리에 있다.

    석탑이 사방의 조망권이 확보된 위치에 건립된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이르러 성행했던 산천 비보(山川裨補) 사상에 의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산천 비보 사상이란, 탑이나 건물을 건립해 산천의 쇠퇴한 기운을 북돋아준다는 것이다.​

    같은 모양의 석탑 2기는 이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렸다.

    자연암반 위에 건립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층 기단을 갖추고 있으며,

    동탑은 4.3m, 서탑은 4.1m로 규모면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서탑의 경우 2층과 3층 탑신의 몸돌이 결실되어 새로이 보충해 놓은 것이다.​

    각 부의 양식과 석재의 결구 수법에서 매우 간략화된 수법을 보이고 있는 이 탑은,

    현재까지 확인된 산천 비보 사상에 의해 건립된 석탑 중 유일하게

    쌍탑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

     

     

     

    천불전(千佛殿)

     

     

     

    운무대 가는 데크 길

     

     

     

     

    장령산 운무대(長靈山 雲舞臺)

     

     

     

    옥천 용암사 마애여래입상(沃川 龍巖寺 磨崖如來立像)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7호 -

     

    옥천 용암사 뒤편의 대형 암벽에 새겨져 있는 마애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 혹은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란 '암벽에 새겼다'라는 뜻이고, '여래'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불상 위에 드러난 암반은 비바람으로부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지붕을 얹어 놓은 듯하다.

    불상은 연꽃 대좌 위에 발을 좌우로 벌리고 뒤꿈치가 서로 닿을 듯이 어색하게 서 있으며,

    몸 주변의 광배는 마치 불꽃을 표현한 듯하다.

    눈은 감은 듯 가늘고 귀는 늘어져 어깨에 닿아 있으며,

    V자형의 규칙적인 옷 주름이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목에 있는 세 개의 주름은 삼도(三道)인 번뇌(煩惱), 업(業), 고통(苦痛)을 상징한다.

    광배(光背), 연꽃 대좌, 입술, 옷 등에는 붉은색을 칠했던 흔적이 있는데,

    이처럼 색이 남아 있는 마애불은 매우 드물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금강산으로 가던 중 이곳의 용바위에 올라 서라벌을 향해 통곡했다고 한다.

    이후 신라의 후손이 마의태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 불상을 조각하였다고 하여

    마의태자불(麻衣太子佛)이라고도 부른다.

     

     

     

    산신각(山神閣)

     

     

     

    奉請山王大神(봉청산왕대신)

     

     

     

    法王如是說(법왕여시설)

     

     

     

    비로상상여내불

    혹시, 毘盧舍那如來佛(비로사나여래불)?

     

     

     

    普光菩薩(보광보살)

     

     

     

    옥천 4경(沃川 四景) – 용암사 일출(龍巖寺 日出)

     

    천년 고찰 옥천 용암사에서 데크 길을 따라

    약 180m 정도 산을 오르면 전망대(雲舞臺, 운무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새벽녘 운해와 일출은 미국 'CNN go'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50곳’에 포함될 정도로 뛰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날씨가 도와주는 날이면 햇살을 받으며 구름이 춤추는 절경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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