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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암산 백양사(白巖山 白羊寺)
    국내 나들이/사찰(寺刹), 불교(佛敎) 2021. 11. 27. 20:12

    백암산 고불총림 백양사(白巖山 古佛叢林 白羊寺)

     

    고불총림(古佛叢林)의 고불(古佛)이란 '인간의 진면목'을 의미하며

    총림이란 말은 산스크리트어(범어)인 'Vindhyavana'의 번역으로

    빈타파나(貧陀婆那)의 음역이며 단림(檀林)이라고도 번역한다.

    즉, 승속(僧俗)이 화합하여 한 곳에 머무름이(一處住)

    마치 수목이 우거진 숲과 같다고 하여 총림(叢林)이라 부르는 것이며,

    선찰(禪刹)의 경우 공덕총림(功德叢林)이라고 한다.

    지도론 삼(智度論 三)에 의하면 '승가(僧伽)는 중(衆, 무리의 뜻)의 뜻이니

    많은 비구가 한 곳에 화합하여 머무는 것을 승가라고 한다.

    마치 큰 나무들이 숲을 이룬 것을 林이라 함과 같으니,

    승취(僧聚)가 모여 사는 곳이므로 총림이라 한다.'라고 하고 있다.

    즉 지금의 선원(禪院), 선림(禪林), 승당(僧堂), 전문도량(專門道場) 등

    다수의 승려 대중이 모여 수행하는 곳을 총칭하여 총림(叢林)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총림이 되기 위해서는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 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律院)을 모두 갖춘 사찰을 지칭하는 말로

    우리나라의 5대 총림은 영축총림 통도사(通度寺), 해인총림 해인사(海印寺),

    조계총림 송광사(松廣寺), 덕숭총림 수덕사(修德寺), 고불총림 백양사였으나,

    2012년 11월 대한불교 조계종단 제192차 중앙종회에서 팔공총림 동화사(桐華寺),

    금정총림 범어사(梵魚寺), 쌍계총림 쌍계사(雙磎寺)만장일치로

    총림으로 추가하기로 결의함에 따라 모두 8대 총림이 되었다.

     

     

     

    사천왕문(四天王門)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백양사 사천왕문은 사찰 중심영역으로 진입하기 위한 관문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다.

    이 건물 역시 대웅전과 함께 1917년 만암스님의 중창 때 건립된 것이다.

    건물은 동향으로 건립되어 있어 남향인 대웅전과는 좌향이 완전히 다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지붕은 평판을 지닌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장대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얹고 기둥을 세웠고,

    기둥 위에는 2익공을 두고 외1출목의 행공 첨차를 지녔다.

    이는 익공식과 주심포식을 병용한 절충식이라 할 수 있다.

    창방 위 구조는 무고주 5량이다.

    중앙 어칸은 사찰로 통하는 문으로 사용하며,

    좌·우 협칸에는 사천왕을 각 2구씩 봉안하였다.

     

     

     

    古佛叢林白羊寺(고불총림 백양사)

     
     
     

    萬歲樓(만세루)

     

     

     

    雨花樓(우화루)

     

     

     

    대웅전(大雄殿)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백양사 대웅전은 1917년 만암 대종사가 백양사를 중창할 당시 건립되었다.

    이 건물은 역사가 오래되지는 않았으나 전통 건축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대형 법당이며, 겹처마에 단층 팔작지붕을 얹은 다포집이다.

    기단은 장대석을 2단으로 쌓아 조성하였고, 초석은 자연석이다.

    기둥은 민흘림이며, 공포는 내 3출목, 외 2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내부에는 우물마루와 우물천장을 설치하였으며, 퇴칸에는 용 모양의 퇴량을 걸쳤다.

    지붕 네 모서리에는 활주가 설치되었다.

    한편 창호는 전면에 4분합 빗살문을 달았고,

    측면과 후면 어칸에는 2분합 띠살문을 달았다.

    건물 내에는 석가모니와 문수·보현 삼존이 봉안되어 있다.

     

     

     

    眞影閣(진영각)과 七聖殿(칠성전)

     

     

     

    극락보전(極樂寶殿) -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극락보전은 대웅전 남서쪽에 배치되어 있다.

    이 건물은 1574년(선조 7) 한응(또는 환응)스님이 조성하였다고 전하지만 관련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다만 「極樂殿佛糧禊序(극락전불량계서)」에는 문정황후가 향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16세기 후반에 처음 조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그 조성에 왕실의 지원이 있었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건물은 1917년 만암스님이 사찰을 중창할 때 재건되었다.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 건물이며, 좌향은 동향이다.

    낮은 석조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기둥을 세웠으며,

    창방 위에 평방을 놓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 공포를 짜 올렸다.

    공포는 안쪽이 3출목, 바깥쪽이 2출목인 다포양식이며, 架構는 2고주 7량이다.

    천정은 우물천정이며,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문은 정면 가운데 칸에 빗살 3분합문을, 양 옆칸에 ‘井’자살 3분합문을 달았다.

    맞배지붕이면서도 다포집으로 가구를 한 절충식 건물이다.

    극락보전 내에는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또한 현재 성보박물관에 봉안되어 있는 1775년 作 아미타 회상도는 극락보전 후불화였다.
    현재는 1995년에 새롭게 조성된 후불화가 전각 내에 봉안되어 있다.

     

     

     

    장성 백양사 백학봉(長城 白羊寺 白鶴峰) - 명승

     

    장성군 백암산에 위치한 백양사와 백학봉 일대는 백양사의 대웅전과 쌍계루에서 바라보는

    백학봉 암벽과 숲 경관이 매우 아름다워 예로부터 ‘대한 8경’으로 손꼽혀 왔다.

    백암산은 내장산과 함께 단풍이 특히 유명하며, 천연기념물 “장성 백양사 비자나무 숲”을 비롯하여

    1,500여 종의 다양하고 풍요로운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다.

    백양사의 창건 유래가 담긴 정도전의 <정토사교루기>와, 이색, 정몽주, 김인후, 박순, 송순 등

    유명인들이 탐방하고 백학봉과 쌍계루의 풍광을 읊은 시와 기문을 볼 때

    이곳은 예로부터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명승이다.

    특히, 지금도 백양사 대웅전 기와지붕과 어우러지는 백학봉,

    연못에 비치는 쌍계루와 백학봉의 아름다운 자태로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고 있다.

     

     

     

    쌍계루(雙溪樓)

     

    쌍계루는 1351년 각진국사가 처음으로 창건하였다.

    이때 누각 명칭은 “교루(橋樓)”라 하였으나,

    이후 1370년 청수스님이 중창하면서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에게 기문을 부탁하여

    ‘두 계곡이 만나는 곳에 있는 누각’이라는 의미로 “쌍계루(雙溪樓)”라 하였다.

    쌍계루는 조선 전 시기에 걸쳐 백암산 내 명소로 자리매김하였으며,

    유·불교를 막론하고 많은 문인들이 이곳을 찾아 시를 짓거나 글을 남겼다.

    쌍계루 내 현판에 적힌 많은 시문들은 조선시대 이 누각의 명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특히 쌍계루에 관하여 포은 정몽주 이외에도 목은 이색, 삼봉 정도전이 기문을 남겼으며,

    면앙정 송순, 노사 기정진, 최익현, 서옹스님 등이 남긴 시문이 현판으로 전하였다.

    쌍계루는 여러 차례에 걸친 사찰 중건 시 중수를 거듭하였으며,

    1950년 6·25 전쟁으로 백양사가 피해를 입었을 때 함께 소실되었다.

    현재의 쌍계루는 1986년에 건립된 것이다.

     

     

     

    백양사(白羊寺)

     

    백양사는 1400여 년 전 백제 무왕 33년(632년)에 여환조사가 창건한 고찰로 호남불교의 요람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며 조계종 8대총림 중 한 곳인 백양사는 백두대간이 남으로 치달려와

    남원, 순창 일대를 거쳐 장성지역으로 뻗어 내려온 노령산맥의 백암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창건 당시 백암사로 명명됐으며 고려 덕종 3년(1034년) 중연선사가 중창하면서

    정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뒤에 조선시대에 이르러

    조선 선조 7년 환양선사가 백양사라 이름을 고쳐 불렀다.

    이어 1917년 만암 대종사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백양사란 이름은 하얀 羊을 제도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 선조 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저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축생의 몸을 받았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업장 소멸하여 다시 천국으로 환생하여 가게 되었다'라고 절을 하였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

    백양사를 오늘에 있게 한 분은 만암 종헌 대선사로 스님은

    30년 가까이 백양사에 주석하시면서 불사에 전력하는 한편

    소실된 강원을 다시 개설하여 600년 강원 전통을 이으며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내신 서옹 큰스님께서는 2003년 열반에 드시기 전까지

    운문암 운문선원에 주석하시면서 후진 양성에 전력을 쏟으셨다.

    또한 서옹 큰스님께서 ‘참사람’ 운동을 펼치시어 ‘참사람’ 참선 수련회를 통해서

    백양사를 스님만의 참선 수행 도량이 아니라 재가자들의 참선수행 도량으로 문을 개방하셨다.

    백양사는 예로부터 훌륭한 선지식인 큰스님들이 끊이지 않았으며,

    백양사의 총림선원인 운문암은 ‘북 마하연 남 운문(北 摩訶衍 南 雲門)‘이란 말이 나타내듯

    남한에서 가장 으뜸가는 참선 도량이다.

    고려 각진국사를 비롯 조선시대 소요, 태능, 편양, 진묵, 연담 스님 등

    조선 말기 불교를 이끌어 왔던 백파, 학명 스님 그리고 용성, 인곡, 석전, 만암, 고암스님 등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불교 법통을 이어온 고승 대덕 스님들이

    상주 수행하여온 수행 근본도량으로 자리하고 있다.

    백양사는 주변의 빼어난 경관과 기도가 영험하여 속발 성취하고

    청량한 기운이 샘솟아 정신수양에 가장 좋은 도량이라고 전해 온다.

    백양사는 임진왜란, 정유재란, 갑오농민 개혁 때에는

    백양사 스님들이 역사와 민중의 고난에 함께해온 전통이 있다.

    또한 백양사를 중창하신 만암스님께서 민족교육의 산실인 광성의숙을 설립하였고

    1930년 중앙불교전문학교(동국대 전신)을 설립했으며

    해방 후에는 광주 정광중고등학교를 세워 사회교육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백양사로 1239 (약수리) 대한불교조계종 백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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