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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적, 서울 영휘원(永徽園) - 의민황태자 생모 황귀비
    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21. 12. 13. 21:11

    純獻貴妃 永徽園(순헌귀비 영휘원)

     

     

    산사나무 고사목(山査 枯死木)

     

    고사목은 약 160년쯤 된 산사나무로 천연기념물 제506호로 지정된 귀한 나무였으나

    2012년 8월 말 태풍 볼라벤이 왔을 때 강풍에 피해를 입고 파손됐다.

    또한 각종 공해와 생리적 노쇠도 더해져 고사(枯死)되어 결국 2015년 3월 지정에서 해제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는 듯이 위용과 기품이 넘쳐 보였다.

    다행히 주변에는 후계목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어정(御井)

    이곳은 임금에게 올릴 물을 긷는 우물입니다.

     

     

     

    영휘원(永徽園) - 의민황태자 생모 황귀비

     

    조선 제26대 고종황제(高宗皇帝)의 후궁인 순헌귀비 엄씨(純獻貴妃 嚴氏)의 원으로

    왕의 사친 또는 왕세자와 그 빈의 무덤을 원(園)이라고 한다.

    순헌귀비(1854~1911)는 의민황태자(懿愍皇太子) 영왕(英王)의 어머니로

    명성황후가 일본인에 의해 시해된 후 고종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조선총독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황태자로 책봉된 의민황태자는 1907년에 교육이라는

    명목 하에 인질로 일본에 강제로 잡혀갔다가 1963년 귀국하였으나 1970년 병으로 돌아가셨다.

    신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귀비는 양정의숙. 진명여학교를 설립하였고,

    숙명여학교의 설립에 기부하여 근대 사학 발전에 크게 공헌을 하였다.

    봉분에는 곡장이 둘러지고 석물은 석양(石羊), 석호(石虎), 상석(床石), 혼유석(魂遊石)과

    망주석(望柱石), 장명등(長明燈), 석마(石馬) 등이 배치되어 있다.

    부속 건물로는 정자각(丁字閣)과 홍살문(紅箭門), 비각(碑閣) 등이 있다.

     

     

     

    사적, 서울 영휘원(永徽園) - 의민황태자 생모 황귀비

     

    영휘원은 대한제국 1대 고종황제(高宗皇帝)의 후궁이자

    의민황태자, 영친왕(懿愍皇太子, 英親王)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純獻皇貴妃 嚴氏, 1854~1911)의 원(園)이다.

    순헌황귀비는 1859년(철종 10년) 궁녀로 입궁한 후

    명성황후(明成皇后)를 모시는 상궁(尙宮)이 되었다.

    명성황후가 세상을 떠난 후 1896년(고종 33년) 일본의 압박을 피하기 위해

    아관파천(俄館播遷)을 계획하였다. 1897년(광무 1년)에 영친왕을 낳았고

    귀인(貴人), 순빈(淳嬪), 순비(淳妃)를 거쳐 1903년(광무 7년) 황귀비로 책봉되었다.

    신교육에 관심을 두어 양정의숙과 진명 여학교, 숙명 여학교의 설립을 도왔다.

    영휘원에는 조선시대의 원소(園所) 제도에 따라 홍살문, 정자각,

    비각이 세워졌고 호석(護石, 둘레돌)이 있다.

     

    * 원(園) : 왕의 사친(후궁이나 왕족), 왕세자, 왕세자빈, 황태자, 황태자비 등의 무덤

    ** 아관파천 : 1895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 사건) 후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과 황태자(순종)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홍릉길 90 (청량리동) 영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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