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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포진 손돌묘(德浦鎭 孫乭墓)
    국내 나들이/능, 원, 묘(陵 園 墓) 2021. 12. 15. 22:12

    舟師孫乭公之墓(주사손돌공지묘)

     

     

     

    강화도 광성보 앞 손돌목(孫乭項)

     

     

     

    손돌목(孫乭項)

     

    손돌묘를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으로 보이는 강이 손돌목이다.

    손돌목은 안면도, 염창동과 함께 난파(難破) 위험지역으로 꼽히며, 물살이 빠른 곳이다.

    태조 4년(1394)에 조운선(漕運船) 16척, 태종 3년(1403) 30척,

    태종 14년(1414) 60척이 침몰한 기록이 있다.

    손돌은 몽골의 침입으로 고려 고종이 강화도를 피난할 때 뱃길을 잡은 뱃사공인데,

    험한 물길에 불안을 느낀 왕이 그의 목을 베었는데,

    손돌은 죽음에 직면하면서도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우고

    그것을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고 말한 뒤 죽음을 받아들였다.

    마침내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 왕은 자신이 경솔하였음을 깨닫고

    후하게 장사를 치른 뒤 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넋을 위로하였다.

     

     

     

    손돌제(孫乭祭)

     

    구전되는 손돌항(孫乭項) 전설에 의하면

    왕이 손돌을 침수시킨 것을 후회하고 손돌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묘지를 만들고 사당을 건립하여 제사를 지냈다."라고 하며,

    '여지도서(輿地圖書)', '강도부지(江都府誌)', 강화 고적조(江華 古蹟條)에도

    "뱃사공들이 그의 시체를 강변에 묻고 그 땅을 손돌항이라 이름 붙였으며,

    무덤의 형태는 지금도 완연하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김포에서는 고려가 몽골의 침입을 피해 강화로 파천(播遷)한 시기인

    고종 19년(1232) 음력 10월 20일을 손돌공의 주기(周忌)로 삼아

    매년 손돌공의 묘에서 ‘주사 손돌공 진혼제(舟師 孫乭公 鎭魂祭)’를 봉행한다.

     

     

     

    덕포진 손돌묘(德浦鎭 孫乭墓)

     

    덕포진 북쪽 해안 언덕에 위치한 고려시대의 뱃사공 손돌의 무덤이다.

    전설에 따르면 고려시대 몽고군이 침입하여 왕이 강화도로 피난을 갈 때

    이 지역의 물길을 잘 알던 뱃사공 손돌의 안내로 강을 건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세찬 물살에 배가 심하게 요동을 치자,

    왕은 손돌이 자신을 죽이려는 줄 알고 목을 베라고 명령을 하였다.

    손돌은 죽음에 직면하면서도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우고,

    그 바가지를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고 일러준 뒤 참수되었다.

    바가지를 따라 무사히 강화도에 도착한 왕은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충직한 손돌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후히 장사를 지내 주었다.

    그때부터 이 좁은 물길의 이름을 '손돌목'이라 부르게 되었다.

    해마다 손돌의 기일(忌日)인 10월 20일에 불어오는 추운 바람을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한이 서린 바람이라 하여 ‘손돌이 바람(孫乭風, 孫石風)’이라 부르고

    이때의 추위를 ‘손돌이 추위’라고 부른다.

    원래 이곳에는 손돌을 모시던 사당이 있어 제를 올렸으나

    일제강점기에 사당이 헐리고 제사도 중단되었다.

    그 후 1970년에 주민들이 손돌 묘를 세우고 다시 제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1989년부터는 김포문화원의 주관으로 손돌의 기일인

    음력 10월 20일에 진혼제(鎭魂祭)를 지내고 있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신안리 산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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