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경복궁 수정전(景福宮 修政殿)
    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3. 19:14

    노둣돌

     

    월대의 중앙계단과 동쪽 계단 사이 틈에 사각의 돌이 놓여있다.

    노둣돌은 말(馬)에서 내려오기 쉽게 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으며,

    입궐하는 관리들을 위한 노둣돌은 대개 궐밖에 두었다고 한다.

    현재 창덕궁 낙선재, 연경당에서도 노둣돌을 확인할 수 있다.

     
     
     
     

    경복궁 수정전(景福宮 修政殿)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서쪽에 있는 수정전은 넓은 월대(月臺) 위에 세워진 목조건축물이다.

    정면 10칸, 측면 4칸의 익공식(翼工式) 팔작 기와지붕으로

    지붕마루에는 취두(鷲頭)·용두(龍頭)·잡상(雜像)이 얹혀 있다.
    세종 때 집현전(集賢殿)으로 사용하였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867년(고종 4)에 재건하였다.

    재건 당시에는 주변에 약 200칸의 행각(行閣)과 전각(殿閣)이 있었는데,

    1910년 이후 일본인에 의해 모두 헐렸다.

    수정전은 국왕이 일상적으로 기거하는 곳, 혹은 편전 등의 용도로 쓰였던 건물이다.

    세종 때는 집현전을 설치하여 세종 28년(1446) 9월 이곳에서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되기도 한다.
    세조 때는 예문관(藝文館)으로도 쓰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고종 4년(1867) 재건된 후

    군국기무소(軍國機務所) 및 내각(內閣) 청사로 쓰이기도 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는 박람회장으로 쓰이는 수모를 겪다가,

    1966년 10월 이곳에 현 국립민속박물관의 전신인 '민속관(民俗館)'을 우리 손으로 개관하기도 했었다.

    현재 수정전은 수정전 건물과 월대만 남아있지만,

    1908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북궐도형’에 의하면 수정전 주변이 행각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수정전 건물의 좌우측으로 다시 복도를 내어 수정전 주변 행각과 바로 연결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수정전 주위 행각은 사정전 천추전 방향의 행각과 복도로 연결했음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들어와 일제는 수정전 주위의 행각을 모두 철거하고 만다.
    현재는 수정전 건물 좌우측에는 당시에 복도를 연결했던 흔적만 남아있다.

    한편 수정전은 건물의 간수(間數)로 따졌을 때,

    현존하는 경복궁 내 전각 중 규모가 큰 건물에 해당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