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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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경복궁 향원정(景福宮 香遠亭)과 향원지(香遠池)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3. 21:11
보물, 경복궁 향원정(景福宮 香遠亭)과 향원지(香遠池) 고종이 1873년 건청궁을 지을 때 옛 후원 일대를 새롭게 조성하였는데 연못 한가운데 인공의 섬을 만들고 그 위에 2층의 육각형 정자를 지어서 ‘향기가 멀리 퍼져나간다’는 뜻으로 향원정(香遠亭)이라 불렀다. 향원지(香遠池)를 건너는 구름다리는 “향기에 취한다”는 뜻의 취향교(醉香橋)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경복궁 취향교(醉香橋) 취향교는 건청궁 영역과 연못 안에 있는 향원정을 연결하기 위한 둥근 나무다리이다. 원래 향원정 북쪽에 있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자 1953년 향원정 남쪽으로 옮겨 세웠다. 2017년 발굴조사를 거쳐 취향교 원래의 위치를 확인한 후 남쪽 다리는 철거하고, 사진 등을 참고하여 2019년 복원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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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수정전(景福宮 修政殿)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3. 19:14
노둣돌 월대의 중앙계단과 동쪽 계단 사이 틈에 사각의 돌이 놓여있다. 노둣돌은 말(馬)에서 내려오기 쉽게 하기 위한 용도로 쓰였으며, 입궐하는 관리들을 위한 노둣돌은 대개 궐밖에 두었다고 한다. 현재 창덕궁 낙선재, 연경당에서도 노둣돌을 확인할 수 있다. 경복궁 수정전(景福宮 修政殿) 경복궁 근정전(勤政殿) 서쪽에 있는 수정전은 넓은 월대(月臺) 위에 세워진 목조건축물이다. 정면 10칸, 측면 4칸의 익공식(翼工式) 팔작 기와지붕으로 지붕마루에는 취두(鷲頭)·용두(龍頭)·잡상(雜像)이 얹혀 있다. 세종 때 집현전(集賢殿)으로 사용하였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867년(고종 4)에 재건하였다. 재건 당시에는 주변에 약 200칸의 행각(行閣)과 전각(殿閣)이 있었는데, 1910년 이후 일본인에 의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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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서씨(扶餘徐氏) - 대전 효월드 뿌리공원국내 나들이/공원(公園)으로 2022. 4. 3. 04:10
부여서씨 상징 조형물 작품명 : 백제(百濟)의 기상(氣象) 작가 : CH조형연구소 천종권, 구광민 백제국 시조이신 온조왕의 역사성과 6대왕제를 왕손으로 참여하여 종헌관과 후손의 소임을 다하는 부여서씨의 상징을 향로로 표상하여 백제의 기상을 표현하였으며, 전체적 세면은 삼문중의 웅비와 비상을 조형적으로 표상하였다. 부여서씨(扶餘徐氏) 유래 부여서씨는 백제국(百濟國) 건국 이후 31대 의자왕(義慈王) 때에 이르러 신라(新羅)와 중국의 당(唐) 나라 연합군의 침공을 받아 서기 660년 백제국이 망하니 의자왕은 태자인 융(隆)을 비롯 대신 등 88인이 당군에 의하여 입당하게 되었다. 의자왕은 입당 후 1년이 못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중국 북망산(北邙山)에 안장하였다. 한편 당 고종은 의자왕의 태자인 융(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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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 무안중투(務安中透)자연과 함께/나무(木) 2022. 4. 2. 22:10
동백나무, 무안중투(務安中透) 분류 : 차나무과 학명 : Camellia japonica 우리나라 자생종 식물 중 겨울에 꽃을 볼 수 있는 개체가 바로 동백이다. 그래서 선비들이 동백을 좋아하며, 동백과 같은 청빈하고 아름다운 삶을 추구했다. 동백나무 중에서 무늬종 중 최고로 손꼽히는 개체가 바로 무안중투이다. 이파리 가장자리로 녹이 꽉 차있고, 잎성도 튼튼하고, 특히 병충해에도 강한 무늬종의 동백이다. 전라남도 무안에서 발견된 자생 무늬종이라 무안중투(務安中透)라 부른다.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수목원로 136 (세종리) 국립세종수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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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청궁(乾淸宮)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2. 21:07
초양문(初陽門) 건청궁 장안당(長安堂) 동쪽에 있는 초양문(初陽門)의 현판으로 담계(覃溪) 옹방강(翁方綱, 1733~1818)의 글씨를 집자하여 만든 것이다. 옹방강은 중국 청나라의 저명한 서예가이자 고증학자이다. 그의 서법은 당시 천하제일이라 사람들이 다투어 그의 글씨를 구하였고, 궁궐에도 그의 글자를 집자하여 만든 현판이 남아있다. 현판에는 옹방강의 서재를 뜻하는 ‘복초재(復初齋)’, 그의 호 ‘담계(覃溪)’라는 인장이 새겨져 있다. 초양문은 ‘양기(陽氣)가 처음으로 생기는 문’이라는 뜻으로 양기가 처음 생긴다는 것은 입춘(立春)이나 초춘(初春)을 뜻하기도 하며, 태평성세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함광문(含光門) 곤녕합으로 들어가는 남쪽 문이다. ‘함광(含光)’은 ‘함만물이화광(含萬物而化光)’에서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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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산(萬人傘)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2. 20:08
만인산(萬人傘) 만인산은 고을 사람들이 지방 관리(官吏)의 공덕(功德)을 기리며 감사의 표시로 바친 일산(日傘)이다. 전 고을 사람의 이름을 새겨 바친 일산이라 하여 '천인산(天人傘)' 또는 '만인산(萬人傘)'이라 하며, 각자의 이름을 비단에 자수로 수(繡) 놓았다고 하여 '수산(繡傘)이라고도 한다. 일산은 원래 수령이나 감사가 외직으로 나갈 때 햇빛을 가리는 의장(儀杖)의 하나였으나, 조선 후기에는 송덕비(頌德碑)와 함께 수령의 공덕을 기리는 기념품이 되었다. 이 만인산은 1887년(고종 24)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사람들이 희천군수(熙川郡守) 김영철(金永喆, 1836-1901)에게 바친 것이다. 윗면에는 김영철의 공적을 칭송(稱頌)하는 글과 만인산의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수놓아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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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경복궁 경회루(景福宮 慶會樓)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2. 4. 2. 19:15
국보, 경복궁 경회루(景福宮 慶會樓) 경회루는 침전 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이다. 외국 사신의 접대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벌어지는 연회 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경복궁 창건 당시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태종 12년(1412)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그 후 성종 때 건물이 기울어져 다시 고쳐 지었는데 돌기둥에 용과 꽃 장식을 하여 화려하게 치장하고, 연산군 때에는 연못 안 인공섬에 만세산을 조성하고, 그 곳에 월궁을 꾸며 조화를 장식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경회루 건물은 없어졌지만, 경복궁이 중건될 때까지 연못은 나라에 가뭄이 들 때마다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이용되었다. 현재의 경회루는 고종 4년(1867)에 중건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