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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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당선생초상(阮堂先生肖像)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1. 3. 28. 20:42
완당선생초상(阮堂先生肖像) 우측내용 완당선생초상(阮堂先生肖像)이라는 전서 아래에는 행서체로 쓴 소치허련사본(小痴許鍊寫本)이 써 있어 그림을 그린 이는 소치 허련(1809-1892)이다. 완당 선생 초상/소치 허련 사본/선생께서 돌아가신지 78년 되는 갑자년(1924년) 여름에 오세창이 삼가 씀. 이 글씨를 쓴 이는 위창 오세창(1864-1953)이다. -좌측내용 발문은 오세창과 같은 시대의 학자 윤희구(1867-1926)가 쓴 것이다. 완당 어른의 초상화는 소치 허련이 그린 것인데...(중략)... 선생의 풍골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을 것이므로 초상화가 없어도 문제될 것은 없다. 초상화를 모시는 사람의 한결같은 존경심이 어찌 겉모습에 그치겠는가? 추사 김정희 완당(阮堂). 추사(秋史). 예당(禮堂). 시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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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金正喜 筆 書員嶠筆訣後) - 보물 제1982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12. 21. 19:05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金正喜 筆 書員嶠筆訣後) - 보물 제1982호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조선 후기 서예가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쓴 『서결ㆍ전편』의 자서(自序)에 해당하는 부분에 대해 비판한 글을 행서로 쓴 것이다. 김정희의 친필 원고이자 이광사의 서예 이론을 전반적으로 검토하면서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글씨를 연마하는 데 있어 금석문 고증의 필요성을 강조한 내용은 우리나라 서예이론 체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준다. 이는 김정희의 서론(書論)가운데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며, 추사체(秋史體)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행서는 조선 말기 서예를 대표할 만한 격조를 보여준다. 서첩에 수록된 3점의 수묵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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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필 침계(金正喜 筆 梣溪) - 보물 제1980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12. 18. 19:56
김정희 필 침계(金正喜 筆 梣溪) - 보물 제1980호 ‘김정희 필 침계’는 분당지에 예서(隸書)로 쓰고 비단으로 장황(粧䌙)한 횡피(橫披)의 형태이다. 화면 오른쪽으로 치우쳐 ‘침계(梣溪)’ 두 글자를 쓰고, 왼쪽에는 8행에 행마다 9~12자씩 모두 86자의 발문을 행서로 썼으며, 두 방의 백문인(白文印)을 찍는 등 격식을 완전하게 갖춘 작품이다. 침계(梣溪)는 김정희의 친구 윤정현(尹定鉉)의 호(號)이다. 화면 왼쪽에 있는 발문(跋文)의 내용에 의하면 윤정현이 김정희한테 자신의 호를 써 달라고 부탁했으나 한나라 예서에 ‘침(梣)’자가 없기 때문에 30년간 고민하다가 해서ㆍ예서를 합한 서체로 써 주었다고 한다. 해서(楷書)와 예서(隸書)의 필법을 혼합해서 쓴 ‘침계’는 김정희의 자유분방한 개성이 돋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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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필 난맹첩(金正喜 筆 蘭盟帖) - 보물 제1983호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12. 9. 19:25
김정희 필 난맹첩(金正喜 筆 蘭盟帖) - 보물 제1983호 ‘김정희 필 난맹첩’은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묵란화(墨蘭畵) 16점과 글씨 7점을 수록한 서화첩으로, 김정희의 전담 장황사(粧䌙師) 유명훈(劉命勳)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글씨 뿐 아니라 사군자(四君子)에도 능했던 김정희는 관련 작품을 여럿 남겼지만 난맹첩처럼 묵란만 모은 사례는 이 작품이 유일하다. 난의 형상을 다양한 구도와 모습으로 구현했으며 김정희가 추구한 사란법(寫蘭法)에 입각해 개성적인 필묵법(筆墨法)을 구사한 대표작으로 꼽힌다. 화면에 쓰인 제시(題詩)역시 난(蘭)에 관한 고사(故事)와 난 그림에 능했던 중국의 인물들, 난의 속성 등에 관한 것으로, 문사철(文史哲)에 해박했던 김정희의 학술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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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의 개성적인 서체, 추사체국내 나들이/문화재(文化財)를 찾아 2020. 12. 8. 19:13
김정희의 개성적인 서체, 추사체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옛 글씨를 연구하여 추사체(秋史體) 만들었습니다. 그의 글씨는 평생 변화했기에 추사체를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 핵심은 중국 서한(西漢) 시대의 글씨를 구현하는 데 있습니다. 당시 서한시대의 글씨는 100여 자 밖에 전하고 있지 않아서 그는 비석을 연구하여 서한시대 글씨의 특징을 알아냈고, 마침내 전하지 않는 글씨까지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추사체는 옛 글씨의 모방이 아니라 창조적인 글씨입니다. 처음 보는 글자체였기에 사람들은 놀랐고, 김정희가 억지로 만들어 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글씨는 명확한 근거가 있어,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실현한 고증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정희가 자신..